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누구에게 보라는 프로그램인가?

까칠부 2011. 1. 30. 18:31

내가 프로그램이든 뭐든 평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가운데 하나가 타겟팅이다. 누구를 타겟으로 누구에게 보라고 쓰라고 만드는 것인가? 당연히 모든 인위적으로 존재하는 것에는 그 목적이 있을 테니까. 그 목적에 부합했을 때 그것은 어쨌든 좋은 작품이다.

 

아마 재미없었을 것이다. 아직 한참 젊거나 혹은 여성이거나. 그러나 솔직히 나도 냉장고에 다른 건 다 비어 있어도 술은 비어 있으면 안 되거든. 소주 먹다가 아주 죽을 지경까지 간 적이 있어서 지금은 아예 소주를 입에도 대지 못한다. 먹으면 몸이 바로 반응한다.

 

"먹지마!"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혹시나...

 

그런데 또 문제가 남자들이 이런 건강정보프로그램들을 잘 안 본다. 어디서 입소문으로 듣고 건강보조제나 찾아먹지 이런 전문적인 내용들에 대해서는 잘 알려 하지 않는다. 아주머니들이 아마 생로병사의 비밀을 보고 남편을 챙겨줄까. 그래서 의사선생님도 말하지.

 

"결혼 안 한 남자들이 더 위험하다."

 

어쩌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아도 남자의 자격이 타겟으로 삼고 있는 중년남성에게 이미 현실의 위협으로 다가온 암과 그리고 그런 중년남성들이 잘 보지 않는 건강정보에 대해서, 웃음기는 빠져 있지만 그러나 검사를 받으며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며 괜히 후회하고 하는 모습들이 남자들의 모습 그대로가 아닌가. 검사 받으면서도 배를 내보이지 않으려 숨을 참는 모습이나. 간염 항체가 있다고 하니 쓸데없이 기뻐하고, 간에 이상이 없다 하니 마음이 놓이는 것들도.

 

지난번 폐암 때도 폐기종 사진을 보며 "헉!"하던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내 주위에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고 피워물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더라는 것이다. 아니 고등학생 아이들과 상담해 줄 때도 바로 그 아버지의 담배로 인해 고민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빠와 함께 보라.

 

아마 시청율은 좀 떨어지겠지만 그러나 어차피 남자의 자격이 20% 30% 노리고 시작한 프로그램은 아니었을 것이다. 5%도 준수했고 10% 넘었을 때는 환호했고 그러나 그 이후로도 꾸준히 자기만의 스탠스를 지키며 이제까지 끌어 온 프로그램이었다. 아마 사람들이 남자의 자격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도 웃음도 웃음이지만 그런 진정성 있는 그 또래만의 일상의 이야기들에 공감해서가 아닐까. 공익이라기보다는 바로 이런 것이 남자의 삶이다. 남자들이 직면한 일상의 위협에 대해서까지. 남자의 자격이 아니면 누가 해줄까?

 

술을 줄여야 할까... 다행히 술 마시고 크게 데인 이후로 그렇게 많이는 안 마신다. 술을 취하도록 마셔본 것이 도대체 몇 년 전인지 모르겠다. 적당히 술기운 오를 정도로면. 맥주로 마시면 큐팩 하나? 많이 마시면 그렇다는 것이고 두 잔 에서 세 잔 정도. 더 줄여야겠다. 어차피 기름진 음식은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까. 간염백신은 어려서 맞아둔 것이 있고. 밥하기 귀찮다고 맥주로 끼니 때우는 일만 줄어도...

 

무어니무어니 해도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좋은 거다. 오래 사는 것도 좋지만 일단 건강해야 한다. 나이 먹어 몸 상하면 자기만이 아니라 프로그램에서도 나왔듯 주위가 같이 죽는다. 더구나 남자 아닌가. 남자란 누구를 지키는 존재이지 보호받는 존재는 아니다. 건강이 곧 남자다.

 

어쨌거나 의사선생님도 말씀하셨듯,

 

"외래진료를 하다 보면 이런 자세한 이야기들을 못 해줘요. 그래서 예능에서 촬영 나온다고 해서..."

 

그래서 일부러 그렇게 준비한 것이다. 딱 예능에 맞게 지루하지 않게 너무 전문적이지 않도록 고심해 준비한 흔적이 역력하다. 저작권의 문제가 걸리기는 하지만 그건 제작진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일 테고. 

 

어쩌면 가장 남자의 자격에 어울리는 미션이 아니었을까. 어디서 이런 걸 할까? 1박 2일에서? 무한도전에서? 런닝맨에서? 남자의 자격이니까 한다. 그리고 남자의 자격이니까 이런 웃음기 없는 예능도 아닌 다큐멘터리가 가능한 것이다. 신원호PD도 간검사 받아봐야 할 듯. 간 부은 예능프로그램이니까. 남자의 자격이 이 시간에 방송되는 이유일 것이다.

 

의미있었다. 그리고 재미도 있었다. 의사선생님도 프로그램의 성격을 감안한 듯 유머가 넘쳤고. 어느새 그다지 넘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일상의 리액션들도 공감이 갔고. 무엇보다 내 이야기였고. 냉장고에 쌓아 놓은 맥주들의 이야기였고. 안주들과. 오래 살아야겠다. 아주 오래오래 건강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