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상속자들 - 그들이 지금을 만들고 룰을 만들다!

까칠부 2013. 12. 5. 06:54

노인은 자부심에 산다. 젊은이는 기대에 설레인다. 세대간에 갈등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노인이 지금을 만들었다. 젊은이가 누리는 지금이 바로 노인의 피와 땀이다. 젊은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노인은 자부심을 가진다. 젊은이가 어리석고 우스워 보인다. 어떻게든 젊은이를 가르치고 바르게 이끌려 한다.


젊은이는 내일을 살려 한다. 내일이란 자신의 피와 땀이다. 그러나 자신이 살고 있는 지금을 만든 것은 노인이다. 모든 것이 이미 노인에 의해 완성되어 있다. 아니 정확히 완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피와 땀은 경험과 지혜가 되고, 경험과 지혜는 보편의 원리와 법칙이 된다. 노인에 의해 만들어진 지금에 있어 권력이란 곧 노인 자신인 것이다. 그것을 극복해야만 한다.

 

제국그룹이란 곧 김남윤(정동환 분) 자신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어려웠던 순간들이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위기도 겪어왔을 것이다. 중대한 결정의 순간들도 있었다. 피를 나눈 형제들마저 쳐내고 제국그룹을 손에 쥐던 순간 역시 그 하나였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노력을 기울여 지금의 제국그룹을 일구어냈다. 그런 김남윤의 눈에 고작 자기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제국그룹을 넘보는 김원(최진혁 분)이 어떻게 보이고 있을까?


오로지 야망 하나로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제국그룹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자. 그 제국그룹을 다시 지금의 위치까지 키워내고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해서는 안되는 행동들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이루어낸 제국그룹이고 제국그룹 대표의 자리다. 그런데 출신도 변변치 않은 여자아이 하나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두 아들 김원과 김탄(이민호 분)을 보고 있는 김남윤의 마음은 또한 어떠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외가도 변변찮은데 처가마저 그리 한심해서야 제국그룹의 대표자리를 물려받은들 그것을 제대로 지킬수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적도 많고 경쟁자도 많다. 결혼마저 그를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여자를 사귀더라도 그에 어울리는 여자를 사귀어야 한다.


그래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이다. 마뜩잖아서. 못마땅해서. 그보다는 걱정스러워서. 과연 김원이 젊었을 적의 자기만큼 할 수 있을까? 과연 김탄이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 힘으로 지금의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을까? 최소한 가진 것은 잃지 말아야 한다. 가지고 있는 것은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대신해서 계획을 세워준다. 대신해서 실천도 해준다. 나름의 부정이다.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마저 냉정하게 가르쳐준다. 자신이 검찰조사를 받는 와중에도 기업을 물려줄 걱정만 하고 있는 최영도(김우빈 분)의 아버지 최동욱(최진호 분)의 모습이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이것도 부정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김원은 김원이었다. 김원에게는 김원 나름의 방식이 있다. 그나마 어렸을 적 아버지가 제국그룹을 손에 쥐기까지의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김원에 비해 김탄은 더 아버지 김남윤으로부터 자유롭다. 형제마저 적으로 여긴다. 잠재적인 경쟁자로 여기고 벌써부터 전쟁을 준비한다. 그러면서도 끝끝내 형제의 정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김원이 아버지 김남윤과 다른 점이라 할 것이다. 철이 들면서 이미 제국그룹의 2세였던 김원에게 제국그룹의 대표란 김남윤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손에 넣어야 하는 절실한 목표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물며 김탄에게는 제국그룹보다 더 절실한 것이 있었다. 가족. 자신의 어머니이지만 어머니가 아니었던 어머니 한기애(김성령 분)에 대한 기억이 그를 가족에 집착케 했다. 어쩌면 가장 큰 꿈이다. 남들처럼 정상적인 가족을 가져보고 싶다.


그래서 김원은 아버지와 전쟁을 벌인다. 김탄 역시 그 전쟁에 동참한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 결국은 패배한다. 아직 제국그룹은 아버지 김남윤의 소유였다. 현실의 권력은 아버지 김남윤에게 있었다. 그나마 김원은 다시 전쟁을 준비한다. 역시 아버지의 전쟁을 오래 지켜본 보람이 있었다. 그에 반해 아버지와 너무 달랐던 김탄은 상실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져내리기 시작한다. 김탄은 김남윤이 될 수 없다. 김남윤처럼 살아갈 수 없다. 그런데 김남윤처럼 살기를 바란다. 김탄이 지워진다. 김원은 그토록 증오하면서도 아버지와 닮았다. 젊은이들은 그렇게 닮아가거나 혹은 부서지며 세상에 적응해간다.


사랑하는 이를 억지로 상처주어 쫓아보내야 한다. 사랑하는 이를 앞에 두고서도 힘없이 돌아서야 한다. 서로 사랑하는데도 함께 있지 못한다. 함께 있는 것이 상처가 되고 고통이 된다. 그렇다고 떨어져 있으면 행복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심지어 한바탕 싸우고 나서 최영도에게 씹어뱉듯 말한다. 너 가지라. 절망의 깊이가 사랑이 거추장스러운 지경에 이르고 만다. 처음 차은상이 김탄을 사랑하기를 거부했던 그것처럼. 차라리 최영도가 차은상과 사귄다면 자신 역시 편해질 것이다. 고통스러울지언정 편해질 수 있을 것이다.


어른과 아이가 싸운다. 계급과 계급 사이의 갈등에서 세대 사이의 갈등으로 주제가 전환된다. 아니 같다. 결국은 기성세대란 가진자다. 그래서 기성세대다. 그들은 모든 것을 이루었다. 그 댓가로 모든 것을 가졌다. 그들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고 정의된다. 젊은이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무산계급이다. 너무나 쉽게 차은상과 김탄의 경계가 무너진다. 그들은 같았다. 계급이라고 하는 벽 앞에 절망하던 차은상이나, 세대라고 하는 벽 앞에서 절망하는 김탄이나. 둘 다 무력하다. 사랑조차 할 수 없다. 사랑 하나 하는데도 현실에는 무슨 장애가 이리 많은가.


의외라면 아들의 사랑을 쿨하게 인정하던 최동호의 모습일 것이다. 하기는 아들과 도복을 입고 유도로 당당히 겨루고 있었다. 일방적이었지만 최소한 아들에게 반항할 기회는 주고 있었다. 빠져나갈 틈도 허락했다. 그러니 최영도도 그동안 그토록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일 게다. 후계자라는 사실만 중요하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최영도가 느끼는 절망의 실체일까? 무엇을 해도 관심이 없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회사만 물려받으면 된다.


아무튼 차은상을 좋아하면서도 김탄 역시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있기에 최영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차은상과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만, 그러나 김탄을 이대로 망가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벌써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비틀거리면서 거리를 헤매고 있는 김탄에게 달려가 주먹을 날린다. 안타깝게도 앞머리를 내리기 시작한 이후 최영도는 너무 착해빠진 캐릭터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도 나쁜 척은 혼자 다 한다. 귀엽다.


망가지기 시작한 김탄을 배경으로 김남윤이 자신의 성과를 이야기한다. 정확히 자신의 것인 제국그룹의 성과들이다. 그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상징적이었을 것이다. 김남윤의 영광과 김탄의 절망이라는. 그것은 역설적으로 김남윤의 절망이기도 했다. 김탄은 결코 김남윤이 원하는 김탄이 될 수 없었다. 과거의 영광의 현재의 희망이 되지는 않는다. 의미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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