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자들 - 오이디푸스를 위해, 소년 어른이 되다
하기는 그러니까 신데렐라일 것이다. 신데렐라의 원작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왕자와 결혼까지 하고 나서 신데렐라가 어떻게 살았으며 무엇을 했는지 전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그저 왕자와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그것이 전근대사회에서 여성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돈이 있는가? 아니면 권력이 있는가? 그도 아니면 대단한 명예나 지위라도 가지고 있는가? 남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 현실을 헤쳐나가는 여전사 타입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사랑을 한다. 순수하게 올곧게 사랑을 한다. 그래서 그 사랑이 이루어졌다. 그러면 남은 것은 무엇일까? 모든 장애물을 넘고 나니 남는 것은 유치한 사랑이야기다. 달달하지만 뻔하고 진부하다. 여성의 권리가 인정되지 않던 시대 왕자의 비까지 되었던 한 여성 역시 그렇게 자신을 내세우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주어진 행복을 지키기조차 버겁기만 하다.
시작은 가진 것 없는 차은상(박신혜 분)의 찰나와도 같은 한여름밤의 꿈이었다. 그리고 짧은 꿈에서 깨어난 순간 차은상은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의 벽과 마주하게 된다.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김탄이건만 김탄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도 많다. 차라리 체념하고 도망친다. 절망하며 숨어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는 과정에서 차은상과 자신의 사이에 놓인 현실의 거리를 좁히고자 발버둥치는 김탄에게로 조금씩 드라마의 중심이 옮겨간다. 김탄의 아버지 김남윤(정동환 분)이 아직 어리기만 한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는 현실이 되어주고 있었다. 김탄의 진심어린 노력에 차은상 역시 현실과 싸울 용기를 내게 된다. 그 싸움이 바로 계급간의 갈등이고 세대간의 갈등인 것이다. 드라마가 '그리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않은 이유인 것이다. 끝을 보아야 한다.
아들은 누구나 아버지를 이기고자 한다. 아버지란 아들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세상의 권력이다. 억압이고 폭력이다. 권위이며 실력이다. 아버지를 이김으로써 마침내 아들은 혼자서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독립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를 이기고 그로부터 벗어나려 할 때 아들은 자기보다 한참 작아지고 약해진 아버지를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의 피부양자에서 아버지를 책임져야 할 부양자로 역할이 바뀌게 된다. 아버지를 대신하며 어른이 되어간다. 아버지를 이기고 이내 검찰조사를 받으며 더욱 작아지고 초라해진 아버지를 발견하게 된 최영도(김우빈 분)의 경우처럼. 하필 아버지를 이기고 올아섰을 때 어머니의 명함까지 받게 된다. 김탄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 한기애(김성령 분)에게 명령을 내린다. 너무나 노골적인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다.
세대간의 갈등은 결국 그 갈등을 딛고 어른이 되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버지를 유도로 쓰러뜨리고, 아버지가 병으로 정신을 잃고, 아들들은 비로소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세상과 싸우게 된다. 차은상의 남자가 되고, 어머니 한기애마저 집을 나와 자신의 책임 아래 놓이고, 결국은 김남윤까지 쓰러지며 그들 모두를 지킬 책임이 김탄에게 주어진다. 큰형 김원(최진혁 분)이 있지만 아버지와 싸워서 이긴 것은 결국 김탄 자신일 것이다.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억압하는 모성과 싸운다. 모성을 극복함으로써 비로소 남자는 가장이 된다. 최영도 역시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헤어지러 가는 것이다.
차은상이 할 일이란 없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더 이상 아무것도 없으므로. 사랑만 하면 되었다. 사랑밖에 사실 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김탄은 다르다. 돈도 있다. 제국그룹의 차남이라는 현실의 위치도 있다. 더구나 남자다. 차은상과 사랑할 수 있게 되었기에 더욱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차은상이 없는 곳에서 김탄은 남자가 된다. 가장이 되고 어른이 된다. 사랑이야기의 나머지는 살아가는 이야기다. 앞으로 살아가게 될 이야기다.
사랑을 하고, 현실을 알고, 현실과 싸우고, 마침내 아버지와도 싸운다. 아버지를 이기고 어른이 된다. 기나긴 자궁의 터널을 빠져나오듯 소년에서 남자가 되어간다. 어린날의 풋사랑이 아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동화를 현실로 만든다. 흥미롭다. 마지막 한 회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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