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그대 "사랑이라는 시린 이름, 운명을 위해"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다. 나름대로 천송이(전지현 분)는 유세미(유인나 분)에 대해서만큼은 진심이다. 사소한 것까지 살피고 그녀를 위해 화도 내 준다. 그러나 상황은 갈수록 유세미를 천송이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인터뷰를 하면서 유세미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 천송이에 대해 더 묻는다. 유세미가 좋아하는 이휘경(박해진 분) 역시 천송이에게 일편단심이다.
가족을 위하는 마음에 애써 번 돈을 집으로 보냈다. 그러나 지금 돌아오는 것은 엄마 양미연(나영희 분)에 대한 증오와 동생 천윤재(안재현 분)의 원망 뿐이다. 아버지는 병원에도 들어오지 못하고 추운 겨울에 밖에서 헤매고 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상황이다. 가장인 아버지보다 돈 잘 버는 딸, 그리고 갑작스럽게 늘어난 수입, 그동안에도 그로 인한 문제들이 적지 않았다. 돈이 곧 행복을 결정해 주는 것은 아니다. 돈과 가족을 바꾼다. 천윤재가 천송이를 마냥 싫어해서 저리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가족이라 여겼다. 한 번 얼굴도 못 본 서방이지만 어머니라 불렀고 아버지라 불렀다. 그런데 집안의 명예를 위해 자기를 죽이려 한다. 친정아버지라고 달랐을까? 결혼이란 집안 사이의 일이다. 상대 집안과의 관계를 고려해 딸을 출가시켰다. 열녀가 되어 죽은 딸이 살아돌아왔다면 친정이라고 해서 그저 좋게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정황과 사정이 가족의 관계마저 정의한다. 그렇게 고립된다. 지구라는 낯선 별에 홀로 떨어진 도민준(김수현 분)처럼 오래전 그녀 또한 단절 속에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차이는 있다. 아마 너무 긴 세월을 살았던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구인이 아니었다. 철저히 타자로서 지구인을 본다. 인간의 사랑도, 욕망도, 선의도, 악의마저도 철저히 타자로서 객관화하여 본다. 결론은 항상 부정적이다. 그에 비하면 천송이는 지구인이다. 지구에서 나고 자랐다. 한정된 시간은 그녀를 더욱 자신을 위한 시간에 충실하도록 만든다. 그래도 낙관한다. 그래도 긍정하려 한다. 그녀의 이른바 '지랄맞은' 성격은 그런 치열함의 산물일 것이다. 도민준은 쿨하다. 천송이는 결코 쿨해질 수 없다.
새벽에 맹장염으로 복통을 호소하면서도 마땅히 연락할 사람조차 없다. 수술을 받게 되고서도 외부의 눈을 더 신경쓰지 않으면 안된다. 먹고 싶은 것도 알아서 자제하고, 대외적인 이미지를 위해 자기를 연기해야 한다. 자기 사생활이라고는 없다. 그런데도 그것을 놓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무엇을 위해 그녀는 그토록 자기를 희생해야 하는가. 역설이다. 그 순간 도민준은 강의를 통해 사랑의 실체를 이야기한다. 고독한 그들이 만난다. 스스로 고독하려 하고, 고독을 두려워하는 그들이 전혀 타인이 되어 만나고 얽힌다.
그래서 운명 아닐까. 먼 다른 별의 사람들이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그들이 우연처럼 만나 서로 사랑을 하게 된다. 서로 다투고 오해하고 그래서 미워하면서도 어느새 서로 이끌리고 마는 것을 운명이 아니면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 할 바를 다 했다 말하면서도 도민준은 천송이의 위험을 그냥 보아넘기지 못한다. 일부러 구두까지 훔쳐 숨겨놓았다. 신데렐라의 구두다. 인연의 자락이 그들을 이어준다.
고독과 단절에 짓눌리지 않는 천송이가 인상적이다. 고독과 단절로부터 도민준은 필사적으로 자신을 지키고 있다. 관계를 만들지 않고 인연을 남겨두지 않는다. 어쩌면 이휘경의 형 이재경(신성록 분)은 도민준과 닮았는지 모른다. 원래 자기의 것이 아닌 자리에서, 다신의 세계가 아닌 세계에서, 그는 현실감없이 자기마저 객관화하고 만다. 이휘경은 그냥 생각이 없다. 그는 어느곳에도 진정으로 속하지 않는다.
밝음과 어둠을 넘나드는 전지현의 연기가 천송이를 보다 구체화시킨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김수현은 마모된 무기질의 표정이 어울린다. 인간은 원래 외로운 것, 그래서 사랑을 한다. 그들에게 사랑이란 그래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운명이며 필연인 것이다. 모두가 같다. 흔한 사랑 이야기를 절대 흔하지 않게 연출하고 연기해낸다.
시릴 정도로 어둡다. 아무도 없는 한겨울의 밤거리같다. 우연히 사람과 만나면 얼마나 반가울까? 혹시라도 사람의 온기에 기댈 수 있다면 얼마나 따뜻할까? 부연 가로등불빛이 더 외롭고, 그나마 먼 집의 창들이 서럽기조차 하다. 관계가 얽힐수록 외로운 것은 무슨 까닭일까. 천송이는 꿋꿋하게 자기만의 자리를 찾아 걸어간다. 그 길에서 도민준을 만난다. 기대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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