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분노 - 어느 웹툰을 보고...
그러니까 내 앞에 그 인간 만화 갖다 놓지 말라고. 짜증나니까.
과연 불행해서 분노하는가. 자기도 그리고 있지 않은가. 불행하면 체념한다고.
기대가 있어 분노한다. 아직 힘이 남아 있어 분노할 수 있다.
분노란 아직 여유가 있는 자들의 사치다.
당장 일제강점기 식민지조선의 백성들을 떠올려보면 되겠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일본제국주의에 굴복해 그들에 부역했었다.
이길 수 없다. 도저히 일본제국주의를 물리치고 독립을 쟁취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차라리 자치운동을 벌였다. 내선일체는 조선인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들은 분노했는가?
하기는 좋은 집안에서 자랐다 하니 진짜 절망이 무언지 겪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불행이라는 것이 주는 좌절이 무언가 한 번 몸으로 겪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불행해서 분노하는가?
아직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에 분노한다.
혼자서만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도. 모두가 행복하면 나와 내 가족도 행복하다.
어떻게 보면 그 또한 절망이고 좌절이다.
우리에 갇힌 돼지와 같다. 그저 밥 잘 주고 울타리로 지켜주니 행복하다.
그것은 과연 행복일까?
오늘 바로 옆에 있던 같은 날 태어난 형제가 삼겹살이 되어 구워졌다.
하지만 나는 아직 괜찮으니까. 체념이다. 최면이다.
쿨한 게 멋있는 것이라 착각하는 것들이 있다.
남들 다 하는 소리 거꾸로 하면 뭐라도 되는 것 같다.
그럴싸한 교훈이라도 남기면 사람들이 우러러보지 않을까.
아니 욕하고 비난하면 그것이 나의 뛰어난 점이다.
어째 요즘은 그런 가짜들이 더 득세를 하는 것인지.
나는 요즘 잘 분노하지 않는다.
피곤하다. 지쳐 있다. 체념하고 있다. 좌절이 깊다.
분노하던 때가 있었다. 아직 열정이 남아 있을 때. 낙관과 희망이 내게 남아있던 그때.
하루왠종일 10여개의 글을 쓰면서도 아직 남아있는 분노가 있었다.
아직 어렸다. 젊었기도 했다.
하여튼 아침부터 웃고 만다.
공해다. 지지다.
눈이 썩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