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그대 - 고독, 서로의 존재에 길들여지며
인간이란 존재이며, 존재란 곧 관계다. 타인과의 관계가 곧 자신의 존재를 정의한다. 누구와도 아무 관계도 가지지 않는다면 그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누가 자신을 인간이라 인정해주고 증명해줄까? 이제 비로소 도민준(김수현 분)에게도 관계가 생겨난다. 하필 지구를 떠나려 할 때 그를 지구와 얽매는 관계가 자라나기 시작한다.
연예인이란 공인인가. 정확히 공적대상일 것이다. 자기 안의 욕망을 투사한다.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다. 자기가 이루지 못한 것들이다. 자기는 차마 꿈조차 꾸어보지 못한 것들이다. 그런 모든 것들이 연예인을 통해 가능해진다. 그들과 사랑하고, 그들처럼 살아가며, 그들 자신이 되어 본다. 그로부터 만족을 얻게 되었을 때 그들은 대중의 스타가 된다. 아이돌이라 부르고 우상이라 부른다. 때로 그것은 연예인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이 대중의 욕구와 요구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대중의 필요가 연예인이라고 하는 대상을 정의한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모두의 스타에서 모두가 증오하는 파렴치한 악녀로 전락하고 만다. 전혀 천송이(전지현 분)이라고 하는 개인과는 상관없이 대중의 목적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루어진다. 실체가 없다. 허상이다. 달리 이미지라 불리기도 한다. 어제는 모두의 우상이 필요했고, 오늘은 모두가 증오할 대상이 필요했다. 내일은 또다른 이유로 그에 맞는 대상을 찾아낼 것이다. 누구도 천송이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천송이에 대해 진심으로 알려 하지 않는다. 그저 단정짓고 낙인찍을 뿐이다. 단죄하려 할 뿐이다.
과연 연예인만일까. 바로 유세미(유인나 분)의 앞에 천송이가 앉아 있다. 그러나 유세미가 보는 천송이는 그와는 다른 천송이다. 유세미 안의 질투와 시기와 원망과 증오가 한 데 뒤엉켜 만들어진 자기만의 천송이인 것이다. 자신마저 속아넘어가고 만다. 천송이를 진정 친구로 여기는가 물음에 답하기도 전에 자기 안의 천송이를 바라보는 유세미 자산이 먼저 결론을 내리고 만다. 한 번도 천송이를 친구로 생각한 적이 없다.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입으로는 독설이 쏟아진다. 어느쪽이 진짜 유세미 자신일까? 어느쪽이 진정한 자기자신일까?
그래서 인간은 외롭다. 어디에도 자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의 안에조차 어쩌면 진짜 자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의식이 관념을 만든다. 관계가 존재를 정의한다. 사람 수 만큼 무수한 자신이 존재한다. 때로 수많은 다른 자신들이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무엇이 실제의 자신인 것일까? 대중이 생각하는 천송이와 천송이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천송이 가운데 무엇이 실제의 모습에 더 가까운가? 천송이 자신이라고 해서 천송이에 대해 더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거울을 통하지 않고는 자기 자신을 볼 수 없다. 사람이 사람을 필요로 하는 이유다. 누군가 자신의 실제 모습을 비춰보여줄 한 사람을 찾게 된다.
하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포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너무나 달라진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쉽게 바뀌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적당히 타협하여 자신을 내놓는다. 적당히 이휘경(박해진 분)의 눈에 비친대로 맞춰 살아가자. 모두가 보는 그대로. 모두가 바라는 그대로. 그래서 자기도 적당히 꾸며가면서. 유세미가 자신을 향해 비난을 퍼부을 때 천송이는 차라리 분노조차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체념이었다. 사람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너무 고독에 익숙해져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조차 낯설다.
확실히 닮아 있다. 400년이라는 시간에 마모되어버린 도민준과 수많은 관계속에 지칠대로 지친 천송이의 모습이.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언제라도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다. 항상 손을 뻗으면 도민준은 그 자리에 있었다. 아니 굳이 손을 내밀지 않더라도 그는 항상 자신의 가장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항상 그녀의 빈자리가 신경쓰였다. 있으면 성가시지만 없으면 자꾸 그 자리가 거슬린다. 누군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 사실에 익숙해진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다. 외로운 것이다. 그래서 간절히 서로를 원하게 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비워져 있던 서로의 빈자리가 목이 마른 듯 더욱 절실하게 서로를 끌어당기고 만다.
허상이다. 어디에도 없다. 어느곳에나 있다. 잘못보았다 말한다. 그것은 자기가 아니라 말한다. 거짓말이다. 이미 자신은 진실을 보았다. 자기가 본 것은 실제였고 현실이었다. 어디에도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내가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도 자기는 존재한다. 실체를 본다. 거짓에 가려진 진실을 본다.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천송이는 도민준을 보았고, 도민준은 천송이에게 거짓말을 한다. 두 사람의 진실이 만나는 순간이 온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도,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도, 어느 하나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 좋아하지 않으려 해도 좋아지고, 좋아하려 애써도 좋아지지 않는다. 미워하려 해도 미워지지 않고, 미워하지 않으려 해도 미워하게 된다. 미워해서가 아니라 미워하기 때문이다.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이다. 미묘한 역설을 말한다. 이휘경과의 엇갈림이 신경쓰인다. 유세미가 도민준의 정체를 어렴풋이나마 눈치챈듯하다. 변수가 되어줄까?
나름대로 필사적이다. 약해지기 싫어서. 고독에 치인 자신을 보고 싶지 않아서. 전지현도 이제 관록이라는 말이 어울릴 때가 되었다. 수만마디의 말보다 잠시의 표정에서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하게 된다. 도민준이 무심한 것도 결코 무심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름다운 것은 굴복하지 않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김수현은 좋은 배우다. 항상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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