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격시대 - 폭력미학, 폭력이 일상을 지배할 때
느슨하던 전근대, 빈틈없이 짜여진 현대, 그 사이 어느 지점에 낭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사람들이 모인다. 욕망이 생겨난다. 이전투구가 벌어진다. 공권력은 저 멀리에 있다. 정의도 도덕도 한구석에 치워두었다. 개인의 인정이 인간을 지배한다.
70년대 이전과 이후의 주먹세계에 대한 인식이 다른 이유다. 어차피 그 전에는 개인을 보호하는 공권력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공권력이란 권력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그를 위해 개인을 억압하려는 것이다. 세금은 단지 약탈이고 착취였다. 차라리 개인의 폭력에 의지한다. 때로 그것이 자신을 물어뜯더라도 그에 의지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폭력이란 그같은 기층민중의 삶과 함께 자라나고 있었다. 마피아든, 아니면 중국의 수많은 비밀결사들이든.
경찰이 등장하지 않는다. 설사 등장하더라도 그것은 일본제국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불령하고 불순한 무리들을 색출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어린 여자아이조차 남장을 하고 손에 돌을 들어야 한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사내아이들이 폭력에 길들여져 손에 수건을 감고 있다. 그리고도 악착같이 살아간다. 때로 웃기도 한다. 희망도 가져본다. 하기는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다. 지금도 경찰을 찾아갈 수 없는 일에 떠밀린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 다만 그것이 보편에서 벗어난 일탈로 그려지는가, 아니면 그 자체가 일상으로 그려지는가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범죄와는 거리를 둔다. 단지 폭력에 의지할 뿐이다. 폭력에 의지해 살아갈 뿐이다. 때로 잔인하고 때로 난폭하더라도 선은 넘지 않는다. 그것이 낭만이다. 법에 구속되지 않고, 권력에 구애되지 않으며, 세상의 질서로부터 벗어나 마음내키는대로 살아간다. 그래서 처절하다. 그래서 치열하다.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모습이 멋지고 아름답다. 그래서 제목도 '감격시대'인 것일까? 아직은 사소한 일로도 사람들은 쉽게 감격하고는 했었다. 예정되지 않은, 그러나 이미 지나버린 시간들의 이야기다.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 내러티브 자체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다. 큰 뜻을 품고 가족을 저버린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를 잃고 병든 동생을 돌보는 가장이 된 아들, 그리고 그 아들과 얽히는 수많은 인연들. 어린 시절 친구가 있었고, 첫사랑이 있었고, 누군가의 첫사랑이기도 했었다. 귀얇은 친구가 있어 곤란에 빠지기도 한다. 무작정 밀수조직인 도비패를 찾아간다. 한 번의 좌절을 겪는다. 이후의 전개는 상당히 그린 듯하다. 다만 거지조차 망태를 짊어지기 위해서는 폭력에 노출되어야 하는 부조리가 적나라하다. 폭력은 낭만이 아니다. 삶은 낭만이 아니다. 기억이 낭만을 만들 뿐이다. 어린 신정태(아역 곽동연)의 현실은 가혹하기만 하다.
영상이 빼어나다. 무엇보다 폭력의 난폭함과 잔인함이 잘 묘사되어 있다. 흥분으로 끓어오르던 피가 섬뜩하게 식어버린다. 아직은 끓어오를 때다. 어린 신정태의 치열함이 함께 들끓어 오르도록 만든다. 김현중(신정태 역)의 짐이 무겁다. 배우로서 많은 것들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가 보여줄 폭력의 세계란 무엇일까. 폭력의 미학이란. 역설이다. 폭력이 아름다울 리 없다.
출발은 좋다. 첫영상이 충격적이다. 적당한 비밀과 여운을 간직한 채 시간을 거스른다. 어린 시절의 풋풋함과, 그럼에도 현실과 싸워야 하는 치열함과, 그를 강제하는 운명이 있다. 인연을 만난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 무언가 큰 일이 벌어지려는 것 같다. 아직은 어리다.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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