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탈이념과 중도라는 환상...

까칠부 2014. 1. 21. 06:33

1과 2의 중간은 무엇일까? 1.5?

 

그렇다면 과연 1.5는 1과 2 사이의 모두를 아우르는 것일까?

 

1과 1.5 사이에도 1.25가 있고, 1.5와 2 사이에도 1.75가 있다.

 

중간이란 또 하나의 선택이다.

 

하나의 선 위에 존재하는 수많은 지점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생각한다. 극단에 있지 않으니 이것이 객관이고 합리일 것이다.

 

실제 중도라는 말과 합리라는 말은 함께 쓰인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선택이기에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은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쪽과 저쪽이 나의 입장을 결정하고 나의 판단을 정의한다.

 

불합리한 양자가 나의 합리를 증명한다.

 

얼핏 옳은 것 같지만 그렇다면 나는 누가 증명해줄까?

 

조금 더 실제적인 예로,

 

강간은 범죄다. 강간은 범죄가 아니다.

 

이 두 주장 가운데 중간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설사 중간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과연 합리라 정의할 수 있는 것인가?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정의가 전제되지 않은 합리란 궤변일 뿐이다.

 

자기로써 자기를 증명해야 한다.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

 

그보다는 남들과 그저 다르겠다.

 

이념도 뭣도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지지받는다.

 

이념이란 치우치는 것이며, 치우친다는 것은 결국 악이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또 국가와 국민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

 

그런데 어떻게? 무엇을? 방법이 있고 대상이 있고 목적이 있다.

 

그러나 뭉뚱그려 국민. 그리고 국가.

 

차라리 이념이 사라진 자리에는 전체주의가 자라고 만다.


거기다 정의롭기까지 하다.

 

나 이외에는 모두가 악이다.

 

혹은 어떤 악도 모두가 포용되어야 한다.

 

불관용과 불관용에 대한 관용은 같은 뜻이다.

 

아무튼 한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해서 더 흥미로운 현상일 것이다.

 

아무것도 보여준 것이 없는데 그것이 지지의 이유가 된다.

 

야구방망이의 중심은 한가운데에 있지 않다.

 

망치가 수평이 되게 하려면 조금 더 중심에서 이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그렇다고 그것이 합리가 되지는 않는다. 단지 중간일 뿐이다.

 

재미있다. 언제부턴가 구경꾼이 되어 있다. 한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