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정도전 "난폭한 이인임, 드라마를 위한 선택"

까칠부 2014. 1. 27. 07:28

박영규(이인임 역)의 연기는 훌륭하다. 박영규가 연기하는 이인임의 존재감 역시 탁월하다. 그러나 역사속 이인임에 비한다면 터무니없이 작다. 역량의 문제라기보다는 이인임을 악역으로 설정하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인임이라고 하는 악을 통해 그에 맞서고자 하는 이성계(유동근 분)와 최영(서인석 분), 정몽주(임호 분), 정도전(조재현 분) 등의 의도와 명분을 강조한다. 특히 정도전은 가장 적극적으로 이인임과 대립하는 숙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사실 박상충(김승욱 분)과 이첨(신용규 분)을 혹독하게 고문한 것은 지윤(방형주 분)만이 아닌 최영도 함께였었다. 우왕의 명에 따라 도당에서 정몽주 등에 대한 관용을 결정했을 때도 나중에 그것을 전해듣고는 오히려 화를 내며 끝까지 서명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사대부들이 최영이 아닌 이성계를 중심으로 모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그러나 이인임과의 대립에 이은 사직상소와 명덕태후(이덕희 분)의 눈물은 최영을 그같은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었다. 여전히 이인임과 대립하지만 왕실과 태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협력한다. 정몽주를 비롯한 신진사대부를 앞장서서 잡아들임에도 그조차 나라와 왕실을 위한 충정이었다.


이인임이 고려의 국정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그의 세력이 남들보다 더 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최영과 이성계에 의해 실각하고 임견미와 지윤 등의 측근들이 처형당하는 와중에도 이인임만큼은 최영의 배려에 의해 겨우 유배가는 것으로 그치고 있었다. 위화도회군 이후 우왕이 물러나고 최영이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정작 이성계와 함께 회군을 주도한 조민수에 의해 이인임의 복권이 추진되고 있기도 했었다. 이인임이 죽은 것을 알고 부령 공부가 그를 조롱했을 때 조카사위인 하륜(이광기 분) 외에도 이숭인, 강회백 등이 그를 옹호하고 있었다. 염흥방은 물론이거니와 이숭인과 강회백 역시 사대부의 일원이었다.


이인임에 대해 적대적인 고려사에조차 수많은 문객이 모여들고, 그 많은 문객들이 하나같이 자신이 이인임에게 가장 대우받고 있다고 여겼더라는 남다른 친화력과 용인술에 대해 기록하고 있었다. 비록 그것이 자신과 무리들의 권력을 위해 세상의 이목을 신경쓰느라 그리한 것이라 단서를 붙이고는 있었지만, 결국 그만한 정치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공민왕 사후 후계문제로 명덕태후와 경복흥 등과 대립했을 때에도 조정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자신의 뜻을 관철할 수 있었던 것이었을 터다. 이인임의 탐욕을 싫어했고 끝내 이성계 등과 그를 실각시켰음에도 그러나 최영 역시 권력을 잃은 이인임을 보호하려 하고 있었다. 최영이 죽고 난 뒤에는 조민수가 그를 다시 개경으로 불러들이려 했었다. 이인임이 실각했을 때 이인임과 함께 처벌받은 사대부 역시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일부는 조선이 건국되고 관직에 오르기도 했었다.


저렇게 적이 많아서야 아무리 세력이 크다고 권력이 오래가기는 힘든 법이다. 당장 왕실의 최고어른인 명덕태후가 이인임에게 칼이 겨누어지는 협박을 당했고 끝내 그에 굴복하는 수모를 겪었다. 고려의 충신이자 군부의 실력자인 최영 역시 이인임의 실체를 알고 그를 노리고 있다. 명덕태후의 눈물이 물러나려는 최영을 붙잡아 세운다. 사대부의 정신적 지주인 이색이 연금당하고, 지방의 군벌인 이성계는 아예 대놓고 홀대받는다. 이래서야 이인임이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물어뜯겠다 달려들 사람들만 한가득이다. 이인임이 결코 약점이 없는 인물이 아닐 텐데도 그러나 이인임의 권력은 무려 14년이나 이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우왕 12년 노환으로 물러나지 않았다면 아무리 최영과 이성계라도 임견미와 염흥방 등을 공격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차라리 드라마 초반 보여준 것처럼 웃는 얼굴 뒤에 검은 속내를 감춘 노회한 정치인 정도로 묘사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굳이 명덕태후 앞에서 칼을 뽑을 필요도 없었다. 명덕태후에게 돌아갈 이익을 말하며 설득을 시도하거나, 아니면 명덕태후의 측근을 이용해서 우회적으로 공격한다. 경복흥 역시 우왕의 즉위에는 반대했지만 우왕이 즉위한 초반에는 이인임과 함께 고려의 국정을 나누어 책임지고 있었다. 경복흥과 이인임이 갈라선 것은 이인임의 세력이 커지며 조정에서 경복흥이 소외되면서부터였다. 원과 손을 잡을 것을 최영에게 설득할 때에도 그같은 정치가의 면모가 있었다. 이색이 찾아왔을 때 이인임이 이색의 협력을 얻어내기 위해 거래를 하지나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사방에 적이 아닌 아군을 만든다.


원래 박상충과 이첨을 고문한 것이 최영과 지윤이었고, 박상충과 이첨을 처벌하려 할 때 그들의 목숨만은 살려두라 관용을 베푼 것이 바로 이인임이었다. 이인임의 입장에서 박상충이나 이첨이나 그야말로 '따위'에 불과하다. 정몽주도 아직은 젊고 미숙하다. 죽여서 얻을 것보다 살려두어서 얻는 것들이 더 크다. 사대부들에게도 빚을 지우고, 사대부의 지주인 이색의 협력을 얻어낸다. 더불어 관용은 이인임 자신이 무고하다는 가장 큰 증거가 될 것이다. 죄가 없어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진정 죄가 없기에 살려두는 것이다. 사대부의 상당수는 권문세족의 후예들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 가장 미숙한 것은 정작 이인임이었다.


이인임과 정도전이 닮았다. 충동을 이기지 못한다. 순간의 감정에 너무 쉽게 휩쓸린다. 정몽주는 정도전이 있다면 계책을 내어 이인임과 대적할 수 있었을 것이라 말하지만 정도전이 아직 개경에 있을 때에도 감정을 앞세워 무작정 부딪히고 보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기는 역사에 기록된 실제의 정도전 역시 정치적 술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기도 했다. 성미급하고 충동적인데다 과격했다. 운동가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치가는 될 수 없다. 그나마 그 속을 알 수 없는 이성계가 있어서 다행이다.


가장 속을 알 수 없다. 모두가 뻔히 그 속을 드러내 보이는데 오직 이성계만이 속내를 꽁꽁 깊이 감추고 내보이려 하지 않는다. 무엇을 보는지. 무엇을 듣는지.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러면서도 보이는 모든 것이 진심이다. 백성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정몽주와 최영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워한다. 그를 위해서는 이인임과 불편해지는 것도 기꺼이 감수한다. 노골적으로 욕심을 드러내는 경처 강씨(이일화 분)과 오로지 올곧게 그를 꾸짖는 이성계, 둘 중 누구의 속이 더 검을까. 과연 유동근. 이인임의 캐릭터가 이성계만큼만 입체적이었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그냥 누구나 알 수 있는 간신이다. 간신이라기보다는 악인이다.


여전히 미숙하다. 뜬구름잡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 백성의 삶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선비인 자신이 백성에 맞춰 생각하기보다 백성들이 자신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 전형적인 엘리트 지배층다운 사고방식이다. 어리석고 무지하다. 그래서 경멸하며 그래서 동정하고 연민한다. 바로 이끌어야겠다. 그들을 위해주어야겠다. 같은 인간이 아니다. 정도전만의 문제는 아니다. 성장할 필요조차 없다. 업동이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정도전은 어떤 선택을 할까.


다시 말하지만 결국은 선택의 문제다. 이인임을 악으로 설정하면 이해하기도 무척 쉽다. 재미도 있다. 이인임의 크기가 커질수록 시청자는 이인임에 대해 아는 것조차 버거워하기 쉽다. 어째서 충신이 간신과 가까이 지내는가. 어째서 사대부들이 이인임과 교류하고 있는가. 이성계와 지윤이 사돈관계다. 이성계와 이인임도 사돈이다. 물론 이인임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고려를 끝내야 한다. 정도전의 역할이다. 그 순간까지. 답답하다. 그래서 재미있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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