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격시대 - 지쳐버린 젊음이 마도 상하이로 모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참 피곤한 일이다. 몰라도 되는 일들을 알아야 하고, 해서는 안되는 일도 때로는 해야만 한다. 어린 시절 가졌던 순수는 그렇게 세상과 부딪히며 마모되어 간다.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많은 것들이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 역시 조금씩 소모되어 간다. 자신이란 어째서 이리도 한심하고 무력하기만 한가.
무엇도 지키지 못했다. 자신의 힘으로는 누구도 지킬 수 없었다. 불의가 세상을 지배한다. 거짓이 진실마저 바꾼다. 모두가 자기를 속이려 하고 있었다. 목숨을 바쳐 충성하겠다던 신이치(조동혁 분)조차, 어쩌면 자신의 외할아버지일 도야마 덴카이(김갑수 분) 역시도. 신정태(김현중 분)의 아버지 신영출(최재성 분)마저 그러고 싶지 않은데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라 말한다. 사랑하는 신정태의 아버지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한다. 거부할 수도 없다. 일국회의 조직원들이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돌아갈 곳이 사라졌다. 정신을 잃고 있는 사이 도비패는 와해되고 형처럼 따르던 풍차(조달환 분)마저 자신을 구하려다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가야(임수향 분)도 구하지 못했고, 김옥련(진세연 분)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조차 모른다. 모달화(송재림 분)에게 이끌려 머나면 대련까지 와서 좌충우돌 혼자서 세상과 부딪히고 있다. 무엇을 하려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무엇을 해야 하고, 자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조차 전혀 알지 못한다. 휩쓸리는대로 그렇게 떠내려 간다. 지쳐간다.
아이들은 청년기를 지나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 본 세상은 어려서 꿈꾸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설마 밀수조직의 일원이 되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게 되리라고 아직 어리던 시절에 감히 상상이나 했었겠는가. 그나마 도비패에 들어가고 나서는 형님들처럼 자기몫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꿈꾸었었다. 동생 청아를 찾아 병도 치료해주고, 자기 뜻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가야도 구해주고, 김옥련에게도 마음의 빚을 갚아주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소박하다면 소박한 그의 바람마저 한순간에 휩쓸어가 버렸다. 그토록 든든하던 도비패의 형제들조차,
가야가 꿈꾸었던 미래도 이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을 때 신정태를 만났다. 신정태와 함께하던 순간들은 행복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짐이 지워졌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짐도 지워졌다. 그것이 족쇄가 되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신이치의 존재가 그녀를 구속한다. 신정태와도 적이 되어야 했고, 마침내 신정태의 아버지 신영출마저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만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자식에서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되어 버렸다. 그녀가 원한 것도 아닌데 운명이라는 가면을 쓴 현실이 그녀를 힘껏 그리로 떠밀어 버렸다. 무엇이 옳은지, 과연 진실은 무엇인지, 자신은 제대로 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아직 그녀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상하이로 그들이 모이고 있다. 마도(魔都)라 부른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땅이다. 상하이를 조차한 열강들은 단지 권리만을 누리려 할 뿐 어떤 책임도 지려 하지 않는다. 이방인 지배자들의 묵인과 방치 속에 온갖 욕망들이 상하이를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최고의 환락과 그를 노리는 음습한 악의가 상하이의 밤을 지배했다. 바로 세상이다. 욕망이 지배하고 폭력이 지배하는 현실의 축소판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다양한 군상들과 만난다. 수많은 욕망과 헤아릴 수 없는 폭력들과 부딪히게 된다. 그곳에서 그들은 어떻게 자신들을 지켜갈지. 어떻게 세상과 싸우고 타협하며 자신을 지켜낼지. 사랑은 어른들이 하는 것이다.
어른으로서 아직 어린 자신들의 아이에게 교훈을 주려 한다. 나처럼 사지 말라. 자신처럼은 살지 말라. 자신들에게서 비롯된 운명은 자신들에게서 끝내야 한다. 그 짐은 어린 자식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다. 그러나 무책임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손으로 사랑하는 이의 아버지를 죽여야 했던 가야의 입장은 어떻게 되는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버지를 죽이고 원수가 되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믿지 않으려 했다. 신영출을 믿고자 했다. 신영출을 믿어서가 아니라 신정태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은 짐을 지워주고 만다. 그러려 하지 않아도 부모의 빚은 유산처럼 자식에게까지 물려진다. 그 빚까지 짊어지고 가야는 신정태와 만나려 한다.
성장하는 이야기다. 소년과 소녀가 각각 어른이 되어간다. 어른이 되어 불합리한 세상과 만난다. 아름답지 않다. 때로 잔혹하기까지 하다. 아이들의 순수가 갈가리 찢겨 흩어진다. 그럼에도 끝까지 놓지 않고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다. 가장 소중했던 순간, 가장 행복했을 때의 기억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모두는 그곳으로 돌아가려 한다. 너무 멀다. 너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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