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감격시대 - 어색한 멋과 폼, 드라마가 낯설어지다

까칠부 2014. 2. 20. 09:19

갑자기 재미가 없어졌다. 지금까지 드라마 '감격시대'의 재미라고 하면 역시 땀냄새와 흙냄새가 진동하던 격렬한 싸움장면이었을 것이다. 멋도 없고 폼도 잡지 않는다. 있는대로 싸우고 어떻게 해서든 이기고 살아남는다. 살기가 있었고 절박함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멋있어졌다. 폼도 잡는다.


상하이의 지배권을 둘러싼 일국회와 황방의 머리싸움이 지나치게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한 몫 했다. 정작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절박함이 보이지 않는다. 어째서 그들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고, 어떤 이유로 그들은 그렇게밖에는 살아갈 수 없었는지. 도꾸의 눈물이 그립다. 풍차의 외침이 듣고 싶다. 삼류무협드라마에서나 들을 수 있는 진부한 대사들이 넘쳐난다.


차라리 처음부터 이랬으면 좋았겠다 하는 생각도 든다. 기대가 컸었다. 협객을 자처하던 주먹이 등장하는 그런 흔한 드라마가 아니었다. 고단한 삶이 있었고, 신산한 사연들이 있었다. 그래도 필사적으로 살아가려 했기에 그들은 맨몸으로 현실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인력거꾼을 등치던 도꾸와 싸우고, 자신을 사기친 사기꾼을 찾아 도비패의 풍차와 맞붙는다. 가야(임수향 분)의 운명을 희롱하려는 신이치(조동혁 분)에게 덤비다 피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고작 밀수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신정태(김현중 분)가 살아갈 수 있는 몇 안되는 선택 가운데 하나였다. 풍차도 그래서 도비패에 몸담고 돈을 벌고 있었다. 심지어 악역으로 여겨지던 불곰조차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그가 가진 절박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드라마이겠구나.


그러나 드라마가 달라졌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일국회와 황방이 대립하는 서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신정태의 아버지 상하이 매 신영출(최재성 분)의 죽음을 매개로 일국회와 황방이라는 일본과 중국을 대표하는 범죄조직이 음모를 꾸미고 서로 충돌한다. 그 사이에 마치 한 마리 새우처럼 조선인의 방삼통거리가 있다. 방삼통 거리의 조선인의 삶은 더 이상 자세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그들의 고단함이나, 그들의 억울함이나 절박함 같은 것들은 슬로우모션과 현란한 카메라워크에 묻혀 사라진다. 어느 무협드라마에서 본 듯한 표정과 몸짓과 말투와 액션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야마모토의 '네 몸을 칼집으로 삼겠다'는 대사는 얼마나 경악스러웠는가. 


하지만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감격시대'라는 제목과 기획의도를 듣고 처음 떠올린 이미지가 바로 지금의 드라마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오락드라마로서 오히려 더 훌륭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액션이다. 배우와 캐릭터의 멋과 매력이다. 한 마디로 폼이다. 무협이라면 어찌되었거나 폼이 나야 한다. 각각 중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황방과 일국회의 대립은 거대한 역사서사를 보는 듯한 재미마저 준다. 상하이는 천하고 황방과 일국회는 각각 설두성(최일화 분)과 데구치 덴카이(김갑수 분)가 지배하는 왕국이다. 그 사이에 정신적 지주를 잃은 약소한 방삼통이 있다. 죽은 왕의 자식인 신정태가 귀환한다. 정재화의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드라마의 성격이 바뀌며 정재화(김성오 분)의 역할도 조금은 달라지게 될 듯하다. 이전까지 드라마의 중심은 신정태였다. 신정태가 일국회가 보낸 실력자들과 싸우며 가야의 부모가 죽은 진실과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찾아내는 이야기였다. 잃어버린 청아도 찾아야 했다. 그러나 황방과 일국회의 대립이 전면에 부각되면서 황방은 더 이상 신정태의 조력자로만 남지 않게 되었다. 황방의 비중이 커지는 만큼 황방주 설두성의 의도 또한 보다 구체화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신정태를 이용하고, 신정태의 아버지 신영출의 죽음마저 이용하고, 이를 기회로 방삼통마저 완전히 자신의 손아귀에 쥐려 한다. 이제 신정태는 그런 설두성의 음모에도 맞서지 않으면 안된다. 정재화가 설두성과 대립하는 이유는 설두성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는 나름대로의 의지 때문이었다.


일국회와도 싸워야 하고, 황방과도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방삼통은 그의 근거가 되어준다. 그가 지켜야 할 아버지의 왕국인 동시에, 그를 지켜줄 든든한 근거지가 되어준다. 김옥련(진세연 분)의 비중 역시 이전과 달라진다. 솔직하게 고백한다. 김옥련은 원래 신정태가 돌아가야 할 곳이었다. 원래 의도이기도 했을 것이다. 가야와의 긴긴 모험을 끝내고 마침내 김옥련에게로 돌아가 머문다. 더구나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김옥련에게 화려한 스타로서의 삶이 삭제되었다. 김옥련이 누리는 평범한 일상은 지친 신정태에게 돌아가 쉴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의 둥지가 되어 줄 것이다. 가야는 더 멋있어진 만큼 아무래도 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길을 가버린 듯한 느낌이다.


액션에서는 멋을 조금 덜어주었으면 하는 느낌이다. 힘이 너무 들어가 있다. 어떤 강박마저 느껴지는 듯하다. 배우의 매력은 충분하다. 지금까지 배우들은 지나칠 정도로 많은 것들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신정태가 싸움을 않고 있다. 신정태가 싸워야 한다. 그것도 충분한 개연성과 명분을 갖춘 싸움이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처럼 절박하고 절실해야 한다. 피와 땀과 눈물과 흙이 범벅이 되어 있어야 한다. 더럽혀졌어도 김현중은 여전히 잘생겼다. 진세연도, 임수향도 배우로서 넘치도록 매력이 충분하다. 더 화려하게 덧칠하지 않아도 이미 화려하다.


평범한 것이 나쁘지는 않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전개라는 것이 꼭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또 안심하고 누릴 수 있는 재미라는 것도 있는 것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그 또한 하나의 선택일 수 있는 것이다. 인상이거나, 잠시의 변화거나, 아예 노선을 달리했거나. 낯설다. 많이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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