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가득히 - 정세로의 절규, 드라마에 힘을 불어넣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무언가 단단한 것이 틀어막고서는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있는 힘껏 가슴도 두들겨보고, 목이 터져라 소리도 질러보고, 그러나 오히려 더 커진 답답함에 가슴이 아프도록 뻐근해져 온다. 눈물이 북받쳐 오는데 후련해지기는 커녕 장마처럼 눅눅해지기만 한다. 왜 그러는지. 무엇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그저 서럽고 억울하기만 하다.
원망이라도 할 수 있다면. 아니 원망하고 있다. 누구보다 분노하고 증오하고 있다. 그런데 저들은 그것을 모른다. 자신이 얼마나 아픈지. 자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자기가 얼마나 큰 것을 잃었고, 얼마나 많을 것을 희생해야 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을 누리며 사는 저들에게 닿지도 않을 원망을 혼자서만 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비루하고 비참한 일인가.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용서할수도, 그렇다고 마음껏 미워할 수도 없었다. 왜 그랬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미워해야 하는지조차 모른다. 그저 먹먹하게 눈물만 흘러내릴 뿐. 울고 있을 뿐이다.
감정을 터뜨리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꾹꾹 눌러 담아낸다. 젖은 수채화처럼 흐린 감정의 흔적들이 눈물과 함께 부옇게 번져온다. 슬픈데 슬픈 것을 모르겠다. 아픈데 아픈 것도 모르겠다. 크게 베이고 나면 차라리 화끈하고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어 버린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넋두리처럼 내뱉을 뿐. 넘치고 넘친 말을 더 이상 담지 못하고 그저 흘려내고 있을 뿐. 감정이 넘치고, 마음이 넘치고, 생각이 넘치고, 모든 것이 넘치고 넘쳐 더 이상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극단적으로 억압된 자아가 또다른 자신을 불러낼 때 그것을 신내림이라 부른다. 화병과 신병은 원래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정세로가 아니었다. 이은수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윤계상은 더욱 아니었다. 단지 그 무엇이었다. 넘쳐난 말이었고, 넘쳐흐르는 눈물이었고, 더이상 담을 수 없는 감정이고 생각이었다. 두서없이 그것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윤계상이라고 하는 배우의 끝을 알 수 없는 바닥을 보는 것 같다. 어쩌면 뻔한 줄거리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전개로 힘이 빠질 뻔했던 드라마에 단번에 긴장을 불어넣는다. 정세로의 한을, 정세로의 분노를, 정세로의 원망을, 그래서 그리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과 간절함을 이 한 장면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정세로를 말리던 박강재(조진웅 분)마저 그런 정세로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일 것이다. 정세로는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데. 여전히 잊지 못하고 분노를 곱씹고 있는데. 어떻게든 원한을 돌려주려 저렇게 필사적이 되어 있는데도. 그러나 정작 그를 그렇게 만든 한태오(김영철 분)는 그의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선명하게 각인된 그 얼굴을, 한태오는 그러나 바로 앞에서 마주하고서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린 사람은 웅크리고 자도 맞은 사람은 발뻗고 잔다. 그러나 때린 사람이 때린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면 맞은 사람만 평생 억울한 기억을 안고 살아갈 뿐이다. 그렇게 한태오에게는 사소한 일이었는데 정세로에게는 자신과 아버지와 할머니의 삶을 결정한 잊을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불공평하지 않은가.
정세로가 한영원(한지혜 분)에게 분노하는 이유다. 아버지가 죽었다. 할머니가 저리 불쌍하게 되어 버렸다. 자신은 미래를 잃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고작 사랑 때문이었다고 한다. 한원영이 사랑하던 공우진(송종호 분)의 죽음과 그와 관련한 불미스런 사건들을 일찌감치 덮고 잊어버리려 자신을 이용한 것이었다. 삶을 희롱당했다. 어째서 고작 한원영 자신의 사랑 때문에 자신과 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런 일들을 겪어야 했는가.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하던 그의 원망이 마침내 출구를 찾아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유가 생겼다. 한원영을 더 원망하고 더 증오해야 할 이유가. 냉정하려 해도 도저히 쏟아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이유들이. 하지만 아직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복수도 의미가 없다.
정세로가 굳이 어려운 길을 가려 하는 이유다. 모르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른다면 아프지 않다. 알지 못한다면 결국 깨닫지 못하게 된다. 돌려주기 위해서다. 자신이 겪은 모든 것들을 그녀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알게 해야 한다. 자신의 정체를. 자신이 겪은 모든 일들을. 그녀가 저지른 모든 행위들을. 차라리 들키기를 바란다. 그녀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켜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들이 전해지기를. 그 미묘한 줄타기가 긴장감을 더한다. 한영원이 알아야 하지만 알려져서도 또한 안된다.
오히려 첫회보다 긴장이 더욱 조여지는 느낌이다. 비로소 정세로의 원망과 증오가 그 실체를 갖는다. 그 깊이와 무게를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정세로와 한영원의, 그리고 한태오와의 만남에도 의미가 부여된다. 무슨 의도로 그리하는 것인지. 어째서 정세로는 그런 말과 행동을 보이는 것인지. 이후 어떻게 전개되어갈 것인지. 예상과 기대와 불안이 교차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더 흥미롭고 긴장된다. 지켜보게 된다.
아직 한영원은 비련의 여주인공일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아직까지 그 아픔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무엇도 알려하지 않고 무엇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녀의 죄다. 무심한 것. 무관심한 것. 그러는 사이 누군가는 손에 닿을 수 있었던 희망조차 놓아버려야 했을 것이다. 그녀는 아직 아버지 한태오의 죄에 대해서조차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예고편이 그녀의 역할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보여준다. 조금 더 중심을 가져가야 할 필요가 있다.
정세로의 오열 이전과 이후로 드라마는 나뉠 것이다. 정세로의 오열을 통해 이제까지의 내용은 의미를 가지고, 앞으로의 내용에 대해서도 기대를 가지게 된다. 비로소 드라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정세로를. 한영원을. 한태오를.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갈 이야기를. 윤계상은 좋은 배우다. 이제는 젊다고도 할 수 없다. 원숙함이 드라마에 깊이를 만들어낸다. 드라마를 살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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