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가득히 - 사기꾼의 아들과 딸, 지독히 닮아 슬픈 그들
지독할 정도로 닮아 있다. 범죄자의 딸이다.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자의 딸이다. 그것을 알고 있다. 알고 있음에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미워할 수도 싫어할 수도 없다. 그런 그들이 피해자와 피해자로 다시 만난다. 용서할 수도 없고 용서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마냥 원망하거나 증오할 수만은 없다. 어쩌면 그들은 너무 일찍 용서하는 법을 배웠는지 모른다. 타협하는 법을 배웠다.
"이은수씨의 말대로 내가! 내가... 사기꾼의 딸이니까!"
원래는 정세로(윤계상 분)에게 했던 말이었다. 범죄자의 자식이니 범죄자가 된 것이다. 그 말을 다시 자신에게로 되돌린다. 자식이 부모를 신고할 수도, 부모의 죄를 응징할 수도 없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한영원(한지혜 분)은 아버지 한태오(김영철 분)를 그럼에도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한태오 역시 자신의 치부를 알고 있던 공우진(송종호 분)의 존재를 용납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뒤늦게 후회하고 있었다. 딸이 아파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기가 너무 괴롭다.
그래서 모른 척 한다. 애써 고개돌려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보지 않겠다. 듣지 않겠다. 의붓어머니 백난주(전미선 분)와 안비서(이상훈 분)의 관계를 벌써부터 눈치채고 있었음에도 가족이기에 눈감고 못본 척 모르는 척 흘려보내고 있었다. 정세로 역시 경찰들이 아버지를 잡으러 오면 호루라기를 불어 아버지가 도망치도록 돕고 있었다. 그것이 가족이니까. 범죄자를 돕는 것도 또한 죄일 테지만 그러나 아버지이기에 정세로는 아버지가 경찰에 잡히도록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모르는 것도, 모른 척 하는 것도, 모르고 싶은 것도 전부! 가끔씩은 죄에요!"
하지만 역시 그 또한 정세로 자신을 향한 말이 되고 말았다. 정세로가 혼란스러워하는 이유다. 한영원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려고 하지 않는데도 자꾸만 한영원을 이해하게 된다. 한영원이 할머니(김영옥 분)를 찾아갔을 때도, 할머니에게 물을 맞았을 때도, 그리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자신을 위로하며 울고 있을 때도. 그리고 아버지를 의심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아버지를 믿으려 하는 그 순간에조차. 한영원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상한 것이다. 그런 한영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래서 어느새 용서하게 될 것만 같은 자신이 이상한 것이다.
그래서 차마 한영원에게 아버지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의기양양하게 한영원에게 상처를 주고자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알려주려 그녀를 찾았음에도 차마 울고 있는 그녀의 앞에서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이유를 찾으려 했었다. 그녀를 용서해야 하는 이유를. 그녀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를. 그러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기 안의 원망과 분노를 그대로 두어도 좋은 이유를. 끝없는 절망 속에서 오로지 그것만이 그를 숨쉴 수 있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그것을 위해 그는 그토록 걱정스러운 할머니마저 찾아보지 않고 있었다. 드디어 찾아냈다. 자신이 원망해야 할 대상은 한영원이 아닌 한태오였다. 한영원이 아닌 한태오에게 복수하면 될 것이었다.
그러나 함정이었다. 한태오는 한영원의 아버지였다. 한영원은 아버지를 그럼에도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가족이었다. 아버지이고 딸이었다. 한태오를 향한 복수는 한영원을 향한 복수이기도 했다. 한태오의 진실이 밝혀졌을 때 가장 크게 상처입는 것 역시 한태오를 사랑하는 딸 한영원이 될 것이었다. 한영원이 가장 아파하고 슬퍼하게 될 것이다. 눈물흘리게 될 것이다.
진정 복수를 원한다면 사실 그렇게 했어야 했다. 한영원이 진실을 알고 고통스러워한다면 한태오 역시 그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한영원과 한태오의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면 그 또한 훌륭한 복수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정세로가 한태오가 저지른 일들에 알아낸 것은 그를 위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한태오로 인해 한영원이 고통받는 것은 그가 바란 것이 아니었다. 한영원의 앞에서 망설이고 머뭇거리는 모습이 그의 진심이다. 한영원은 아니었다. 한영원에게 필요한 것은 연민과 그리고 위로였다. 그는 멈춰선다.
만일 누군가 정세로의 아버지에게 피해입은 당사자나 가족이 정세로 앞에 나타나 책임을 물으려 한다면. 아니 당장 공우진이 죽지 않았고 그래서 정세로에게 아버지가 훔쳐간 다이아몬드를 내놓으라 한다면. 정세로도 그 공범이라고. 정세로의 주머니에서 아버지가 훔친 다이아몬드가 나온 이유일 것이다. 아버지의 죄가 다이아몬드를 통해 정세로에게 유전되었듯, 한태오의 죄 역시 벨라페어를 통해 한영원에게로 유전된다. 정세로의 복수심에 한영원이 고통받는다.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누가 무엇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그녀는 여전히 알지 못하고 있다.
복수라는 것이 마음먹은대로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자신을 다스리기가 너무 힘들다. 원수를 눈앞에 두고서도 냉정을 유지하며 계획한대로 행동하는 주인공들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그러나 끓어오르는 분노가 자신마저 정해진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원수의 정체가 대단하다면 말할 것도 없다.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돈과 권력을 가진 한태오에게 정세로와 그의 동료들은 그저 보잘 것 없는 사기꾼 무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한태오가 모르는 사이 정세로의 할머니에게 접근해서 그 집마저 뒤지고 있었다. 할머니를 지키기에는 그들의 손이 너무 부족하다.
어쩌면 한심하다. 답답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보통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인 것이다. 냉정하지도 못하고, 철저하지도 못하고, 당연히 압도적인 힘따위 처음부터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휘둘리고 휩쓸리고 그렇게 제멋대로 흔들리고 만다. 한이 깊을수록. 그 분노가 클수록. 증오가 자신마저 잡아먹고 만다. 그나마 아직까지 증오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있는 것은 정세로의 주인공다운 타고난 선량함이라 할 것이다. 약한 것이 아니라 그 정도로 그는 강한 것이다.
어째서 할머니는 가난한가? 많은 의미를 내포한 물음일 것이다. 가난은 단절이다. 가난해서 배우지 못하고, 가난하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도 소외당한다. 세상의 질서로부터 거부당한다. 남들과 같은 최소한의 부가 인간의 질서 속에 거부감없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해준다. 남들처럼 살기 위해서. 남부럽지 않게 보란듯이 살 수 있도록. 한태오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한태오 모르게 백난주가 안비서를 매수하여 속셈을 부리는 것도 결국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인 것이다. 떳떳하지 않은 관계로 시작했기에 최소한 아들에게만큼은 무시당하지 않도록 많은 것들을 쥐어주겠다.
어찌 그 구구한 사연들을 말로 다 전할 수 있을까? 차라리 노래 한 가락으로 대신하려 한다.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이유다. 말로 다 하지 못할 사연들을 노래에 실어 들려준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들이 노래를 통해 불려지고 들려진다. 한영원은 정세로의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다. 할머니의 삶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한다. 다만 그녀의 손에는 할머니의 싸구려 반지가 들려져 있다. 그녀는 벨라페어의 대표다. 오직 하나 그 반지만이 그녀가 알 수 잇는 무언가를 전한다.
한영원이 그랬는가? 자신이 그랬다고 말한다. 그녀의 무의식이다. 어쩌면 정세로에게는 죄가 없을지 모른다. 죄가 있더라도 어떤 다른 사정이 있었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도 가해자일 수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깨닫는다. 자신이 한 것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책임도 없지는 않으리라. 굳이 변명하지 않는 자체가 그녀의 순수함이고 선량함이지 않을까.
차라리 그들이 착하지 않았다면. 선량함을 지킬 만큼 강하지 않았더라면. 주위가 시키는대로 휩쓸린다. 원망하라면 원망하고, 증오하라면 증오하고, 그것을 배설하라면 배설한다. 그러나 의심한다. 그리고 고민한다. 답을 찾기 위해 고난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고통스럽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낮은 시청률은 그래서 이해할 수 있다. 편치 않은 감정이다. 흔하지 않은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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