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감격시대 - 문화속지주의, 대륙에 잡아먹히다

까칠부 2014. 3. 7. 06:52

따지고 보면 황방도 - 중국인들도 제국주의 침략의 피해자들일 것이다. 상하이는 원래 중국의 영토였다. 그러나 아편전쟁에서 청이 패하면서 영국은 난징조약을 통해 상하이를 강제로 열고 열강들과 함께 조차하기 시작했다. 사실상의 침략이었다. 중국의 법과 제도가 미치지 않는, 열강에 의한 배타적인 지배가 인정되는 땅이었다.


중국의 영토인데 영국인의, 프랑스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심지어 중국인들은 그들 외국인들로부터 차별까지 받고 있었다. 방삼통의 비루하고 가난한 모습은 비단 조선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중국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조계지의 외국인들로부터 낮은 임금을 받으며 온갖 차별을 받고 있었고, 남루하고 비참한 환경에서 가난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래서 황방과 같은 방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방회(幇會)란 곧 조합이었다. 힘없는 자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은밀한 결사였다. 황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황방이 근거한 지역의 대부분의 주민들이 황방의 방원이며 협력자였다. 모일화(송재림 분)가 이끌고 온 식솔들 역시 다르지 않을 터였다. 단동에서 자신에 협력하며 자신으로부터 보호를 받던 말 그대로 '식구'들을 끝까지 책임지려 대륙까지 함께 데리고 온 것일 터였다. 청이 건재할 때는 상하이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조정을 대신해서, 청이 무너진 뒤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중국인의 정부를 대신해서, 황방 - 아니 역사상의 청방은 중국인의 권리를 위한 창구가 되어주고 있었다. 수많은 불법과 범죄를 자행하고는 있었지만 그나마 중국인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실체를 가진 힘이었다.


일본인들이 대륙을 노린다. 일본에 의해 만주국이 세워지고 관동군이 주둔하며 군벌이 난립하고 있던 중국을 침략할 기회와 명분만을 노리고 있었다. 도야마 아오키(윤현민 분)의 대사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 민주는 원래 군벌 장작림의 영역이었다. 장작림이 국민당의 북벌군에게 패하고 만주로 후퇴하던 도중 봉천에서 폭사하며 그 공백을 노려 일본군에 의해 세워진 것이 바로 만주국이었다. 장작림의 아들 장학량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싶어했지만 이미 주도권을 쥔 장개석은 만주의 일본군보다는 공산당을 최우선으로 공격하도록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장개석의 군대와 전쟁이 벌어졌다면 그것은 1937년 노구교사건을 계기로 중일전쟁이 본격화된 뒤일 것이다. 이때의 전장은 만주가 아닌 중국대륙이었다.


아무튼 일본제국주의의 첨병으로써 일국회가 상하이를 노리고 있다. 황방의 입장에서 신경이 곤두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일본이 상하이를 침략하려 하는데 상하이의 뒷세계마저 일국회에 무너지고 나면 중국인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황방이 건재하다면 점령군을 상대로도 협상을 시도해 볼 수 있을 터였다. 물론 황방 자신의 생존과 이익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국회가 클럽상하이와 방삼통을 노리고 있다. 어쩌면 황방의 방주 설두성(최일화 분)이 자신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는 상하이매 신영출을 죽이려 한 이유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설두성이 신정태(김현중 분)에 대해 항상 강조하는 것도 일국회와 적대하며 자신에 협력하는 것이었다.


아마 처음 황방과 설두성을 신정태의 협력자로 설정했던 것도 그같은 배경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국회를 앞세운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에 서로 입장도 이해도 다르지만 황방과 방삼통의 조선인들이 힘을 모아 대항한다. 그 과정에서 조선인과 중국인의 변절자도 필수적으로 등장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열강의 하나인 구일본제국의 막강한 지원을 등에 업고 상하이를 위협하는 일국회에 맞서 상하이의 뒷세계를 지배하는 황방과 방삼통의 조선인들이 힘을 모아 대항한다. 그것이 틀어진 이유는 결국 대륙인 때문일 것이다.


대륙에 먹히고 말았다. 중국대륙은 상상한 것보다 더 거대하다. 상하이는 예나지금이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국제무역도시다. 아직 대부분의 지역이 전근대의 전통사회에 머물러 있던 중국대륙에서 근대의 문명이 현실로 존재하던 몇 안 되는 지역이기도 했다. 황방은 그 상하이의 뒷세계를 지배하는 실질적인 지배자다. 일본은 차라리 작다. 저 미국을 상대로 아시아를 모조리 집어삼키겠다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제국이지만 중국대륙에 비하면 차라리 작아 보인다. 일국회마저 황방과 비교하면 그저 초라해 보일 정도다. 처음부터 무리였다. 처음 드라마가 설정한 일국회의 힘과 크기는 역사속 청방에 비하면 아직 한참 못미친다.


그래서 대상이 바뀌었다. 쉽지 않은 적을 앞에 두고 일국회가 지지부진한 행보를 보이는 사이 황방의 의도는 직접적으로 방삼통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상하이매 신영출을 죽이고 정재화를 곤경에 빠뜨린다. 황방이 만들어놓은 판 위에서 신정태나 일국회나 분주해지고 있을 뿐이다. 황방이 주인이다. 비록 열강에 조차되어 있기는 하지만 상하이는 여전히 중국인의 영토다. 일국회조차 우습게 여기는 그 힘이 위기를 느끼고 내부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그 여파가 단지 방삼통의 조선인들에게까지 미치는 것 뿐이다. 말하자면 엑스트라다. 황방과 일국회, 아니 일국회의 뒤에 있는 일본제국주의와의 본편을 위한 예고편이다.


황방이 적으로 등장한 이유다. 일국회가 사라진 이유이기도 하다. 황방이 적이 되며 일본제국주의 침략의 첨병인 도야마 아오키조차 황방의 방주 설두성을 곤란에 빠뜨리는 우군처럼 여겨진다. 그런 일본제국주의의 의도된 이간질로 인해 많은 조선인과 중국인들이 서로를 증오하고 혐오했다. 중국인들은 조선인들을 일본인에 부역하는 앞잡이로, 조선인들은 텃세를 부리며 자신들을 위협하는 열등한 존재로써. 그래도 일본제국주의 아래 조선인은 중국인보다 나은 2등국민으로 대우받았다. 많은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중국인에 의해 오해, 혹은 의도되어 제거되고 있기도 했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곳은 중국이다.


그 증거가 신정태가 어느새 몸에 익히고 있는 중국무술일 것이다. 토종의 싸움꾼이었다. 시장바닥에서 몸으로 구르며 익힌 싸움실력이었다. 모일화도 신정태에게 직접적인 가르침을 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모일화와 함께하며 모일화로부터 무술을 배우고, 이번에는 파리노인(박철민 분)으로부터 모일화가 익히고 있는 소림권에 대해 듣는다. 몸을 단련하고 기술을 수련한다. 이것은 조선 뒷세계의 싸움법이 아니다. 중국 강호의 싸움법이다. 모일화도 말한다. 여기는 강호라고. 사람이 머무는 곳이 곧 강호라 했던가? 중국인의 강호가 신정태와 방삼통마저 집어삼켰다. 뒷세계의 싸움꾼 신정태는 강호의 협객이 되고 있다.


차라리 정재화의 패거리와 서열을 정한다며 투닥거리는 모습이 더 정감이 간다. 일단 무작정 붙는다. 붙고 나서 누가 형님인가를 가린다. 인덕이 있다면 자신과 싸운 모든 사람들로부터 형님으로 떠받들려질 것이다. 자신이 싸움에서 진 상대로부터도 형제로써 존중을 받을 것이다. 힘을 길러 황방에 복수를 하겠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혼자 싸움실력을 길러 황방의 모두를 쓰러뜨릴 수 있게 된다면 복수를 하겠다는 뜻일까? 아니면 황방처럼 클럽 상하이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 힘으로써 황방을 눌러 꺾겠다는 계획인 것일까? 


정재화(김성오 분)의 중얼거림은 그것을 뜻하고 있을 것이다. 복수를 말하지만 실체가 없다. 혼자 싸움을 잘하게 된다고 황방만한 거대조직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클럽 상하이가 아무리 노른자위라도 황방에게는 상하이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대세계가 있다. 방삼통의 조선인과 상하이의 중국인은 그 규모부터가 다르다. 더구나 설두성은 벌써부터 신정태의 의도를 눈치채고 그를 견제하기 시작하고 있다. 모일화가 경고한다. 바람에 실려 냄새를 맡으면 사냥은 실패한다. 당당하지도 그렇다고 치밀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그같은 어설픔이 정재화의 위기감만 자극할 뿐이다.


중국대륙의 주인은 중국인이다. 상하이는 중국대륙에 속한 도시다. 상하이의 대부분의 구성원 역시 중국인들이다. 황방은 중국인의 조직이다. 일국회가 존재감을 드러내기 어려운 이유다. 방삼통에서 신정태가 가장 먼저 황방을 의식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적 비극이기도 하다. 도꾸(엄태구 분)처럼 둘 사이를 오가며 이간질을 일삼던 이들이 있었다. 도야마 아오끼가 도꾸와 아는 체를 한다. 일국회보다 앞서 신정태는 황방과 싸우려 한다. 황방과 싸우기에 앞서 같은 일국회에 떠밀려 상하이까지 흘러온 모일화와 싸우려 한다.


정재화는 왕이 아니다. 누구보다 정재화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은 왕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왕처럼 될 수는 있다. 왕이란 스스로 되는 것이지만 왕처럼 되려 한다면 주위의 눈치만 잘 살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는 항상 기회만을 노린다. 아쉬운 부분이다. 신정태가 정재화를 닮아간다. 모일화의 조언이 신정태를 일깨울 수 있다면. 홀로 실력을 키우려는 모습은 더없이 어울린다. 고독하되 그로 인해 모두의 추앙을 받는 것이 곧 왕이다. 정재화는 벌써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신정태에게 또다른 위기와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 정재화의 그릇은 신정태를 품을수 없다. 불이 아래 있으면 모든 것을 태우려 부수고 뒤집는다. 화산이다.


가야에게도 선택의 순간은 온다. 명령을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죽음을 말한다. 목적을 달성하는 성취감과 포상이 아닌 실패의 징벌만을 말한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목적을 이루려 한다. 인간은 단지 수단에 불과하다. 자신마저 수단으로 여기고 만다. 복수를 위해서. 원수를 알기 위해서. 신정태가 있는 방삼통을 차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야는 비상하게 당시의 일본인과 닮았다. 일본제국주의의 가장 큰 지지자이고 협력자였음에도 끝내 도구에 지나지 않았었다. 일국회가 전부라고 했지만 일국회에게 가야는 단지 하나에 불과했다.


귤이 회수를 거너가면 탱자가 된다. 만두를 처음 만든 것은 중국인이지만 명절에 빚어 먹는 만두는 한국인의 것이다. 문화의 속지주의다. 조선에 있을 때와는 다르다. 조선에 있을 때 조선인들과 가장 많이 부딪힌 것은 일본인들이었다. 이제 상하이에서 조선인들과 가장 많이 부대끼은 것은 중국인이다. 조선인들이 살고 있는 그곳이 중국인의 땅이다. 중국의 옷과 중국의 음식에도 어느새 익숙해진다. 중국어가 흔히 쓰이기 시작한다. 조선인의 드라마가 중국인의 드라마가 되어간다. 무협드라마의 전형을 충실하게 닮는다. 아무래도 이쪽이 더 익숙하고 재미도 있다. 그렇게 판단한 모양이다. 중국문화의 승리다.


김옥련(진세연 분)의 존재가 도아마 아끼오에게 노출된다. 김옥련이 클럽 상하이의 무대에 오르려는 순간이다. 신정태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신정태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간다. 신정태를 노리는 자들이 많다. 시련이 찾아온다. 일본군이 상하이에 발을 딛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황방에도 방삼통에도 시간이 없다. 절박하다. 싸워야 한다. 운명에 쫓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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