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신의 선물 - 예방살인, 또 하나 물음을 던지다

까칠부 2014. 3. 12. 07:07

어쩌면 기대했던 것보다 더 무거운 주제를 다루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 어느 미술학도를 살해했다. 미술학도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 그렇다면 그는 장차 일어날 전쟁과 끔찍한 학살을 막아낸 영웅일 것인가? 


하지만 그때까지 아돌프 히틀러는 기약없는 꿈을 쫓는 흔하디 흔한 재능없는 미술학도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누구도 살해하지 않았고 세상에 어떤 해악도 끼치지 않았다. 아돌프 히틀러가 인류의 적이 되는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시 이번에는 그는 단지 살인자에 불과한 것인가?


한 마디로 압도적이었다. 빗속에 김수현(이보영 분)의 뒤를 쫓는다. 그러나 어느새 범인은 피해자를 확보하고 김수현의 뒤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핸드폰을 통해 그 사실이 기동찬(조승우 분)에게 전해진다. 범인은 목격자인 김수현을 죽이려 하고, 그러나 딸 샛별(김유빈 분)을 지켜야 하는 엄마 김수현은 필사적으로 그에 대항한다. 오히려 역공을 가한다. 


그 위태로운 상황에서 만년필로 먼저 찌르고, 몸싸움 끝에 범인을 쓰러뜨리고 상처를 발로 밟기까지 한다. 범인에 의해 다시 상황이 역전되어 칼에 찔릴 위기에 몰렸을 때 기동찬이 다시 나타난다. 멋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빗속을 아무렇게나 뒹굴며 마침내 기동찬은 범인을 물리친다. 하지만 경찰에 신고하라고 윽박질러 보낸 피해자의 앞에 나타난 것은... 반가운 표정에 이어진 절망과 공포는 꼳 시청자 자신의 표정이었을 것이다.


또 있었다. 또다른 피해자를 집으로 바래다주고 안타까운 모정과 대화를 나누다 기동찬은 주차한 차를 빼려 잠시 아파트를 비운다. 그 사이 김수현에게 범인의 전화가 걸려오고 다시 돌아온 아파트는 불이 꺼져 있다. 아니나 다를까 목욕탕에서 발견한 피해자의 시신과 미처 대비하지 못한 사이 달려드는 범인, 아파트를 모두 헤집으며 몸싸움이 이어진다. 기동찬이 압도하지만 쉽게 범인을 제압하지는 못한다. 


다양한 상황 다양한 자세에서 끈임없이 두 사람의 싸움이 이어진다. 그리고 경찰과 함께 김수현이 달려오고 있는 것을 안 범인은 그대로 창을 깨고 뛰어내려 도망친다. 범인도 기동찬도 필사적이고 절박하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이 숨가쁜 상황들이 이어진다. 한 번에 찍은 듯 빈틈없이 장면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공을 들이고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해 왔는가. 그것을 소화해낸 배우들의 역량에 감탄할 뿐이다.


범인 강성진의 정체가 그렇게 빨리 밝혀진 것은 필자로서도 의외였다. 범인을 찾아내는 것이 목표라 생각했다. 범인의 정체를 밝히고 그로 인해 벌어질 사건들을 막아낸다. 그런데 어쩌면 그럴 것이다 짐작하는 순간 붕대로 감은 상처를 보여줌으로써 확신으로 바꿔준다. 그렇다면 시청자는 벌써 아는 범인의 정체를 드라마의 인물들이 찾아내는 게임인 것인가? 


하지만 드라마의 인물들 역시 너무 쉽게 너무 빨리 강성진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설마 도망친 범인을 끝까지 쫓아가 잡는 내용은 아닐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내 김수현에게는 가혹한 선택의 순간이 주어진다. 공사중인 건물에서 떨어질 위기에 놓인 범인을 김수현이 붙잡고 있는 것이다. 김수현이 이대로 손을 놓는다면 범인은 떨어져 죽게 될 것이다.


고의로 손을 놓아 떨어뜨렸다면 그것은 살인이다. 그러나 범인이 살아나게 된다면 어쩌면 다시 자신의 딸이 위험해질 수 있다. 지금은 아니라도 언젠가 자신의 딸을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 그동안 보여줘 온 김수현의 불안한 강박이 이 순간을 위한 복선이 된다. 


살인현장을 보았으니 충분히 현행범으로써 경찰과 법원에 그 처분을 맡길 수 있을 것이다. 법에 의해 세상과 격리된다면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자신의 딸은 안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거스르기 전 딸을 납치한 범인에게 했던 그 경고처럼 그녀는 자신의 딸의 생명을 위협하는 적을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다.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드라마가 추구한 주제인가. 미래의 가능성을 막기 위해 미실현의 범죄를 응징했다. 그는 아직 무고하다.


이미 세 차례의 살인을 저지른 뒤이기에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흉악한 연쇄살인범이다. 그렇다면 충분히 딸을 보호하려는 김수현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어찌되었거나 그 세 번의 살인 가운데 김수현의 딸 샛별은 아직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도 않은 범죄로 멋대로 판단하고 판결까지 내린 것이다. 그러고보면 사형제를 옹호하는 주장 가운데 그런 것이 있다. 사형을 통해 장차 일어날 범죄까지 일정부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옳은가?


세 피해자 모두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느 것처럼 보인다. 나이도, 직업도, 사는 곳도, 만나는 사람도 모두 다르다. 그러나 어쩌면 세번째 피해자와 기동찬의 대화가 단서가 되어 줄 지 모르겠다. 범인 강성진과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자기가 낳은 아이를 고아원으로 보냈다. 보호시설의 장애아 가운데 그렇게 부모로부터 버려진 경우가 적지 않다. 


이유야 여러가지다. 생활고 때문일수도 있고, 다른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김수현을 통해 끊임없이 모정이라는 것을 강조해 오고 있었다. 드라마의 또다른 주제일까. 자식을 지키려 필사적인 모정과 그런 자식을 버려야 했던 비정한 모정. 연쇄살인범의 사정이 드라마에 두께를 더한다. 무엇하나 쉬운 것도 단순한 것도 없다.


영상미가 인상적이었다. 쏟아지는 비와 어스름 가로등, 그리고 창백하게 그 속을 뒹구는 사람들이 있다. 빛이 없는 방안에서 비쳐드는 희미한 빛에 의지해 발버둥치며 싸운다. 차라리 서글프기조차 하다. 죽이려는 자도. 살고자 하는 이도. 잡히고 잡는다. 인간은 이렇게도 슬프다. 세상은 이렇게나 어둡고 아프다. 절망으로 가득차 있다. 그것은 차라리 아름답고 잔혹하다.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바뀌는 것도 있다.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끝내 결과를 바꾸고 말았다. 도입부의 동화를 떠올린다. 카페에서 들은 경고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딸 샛별의 목숨을 구했다. 그렇다면 그를 위한 댓가는 무엇인가. 아직 시작이다. 큰 것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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