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정도전 - 요동정벌과 최영의 오판, 역사에서 배우다

까칠부 2014. 3. 24. 07:12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다.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전력은 확보해야 한다. 침략을 위해서가 아니다. 침략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과연 침략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전력이란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일까? 침략자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전력일까? 그런데 침략자와 싸워서 물리칠 수 있다면 선제공격은 불가능한 것일까?


구일본제국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이유였다. 구일본제국의 군부와 정부 역시 모르지 않았다. 당시 구일본제국의 역량으로 미국과 전쟁을 일으킨다면 필패일 뿐이다. 인구와 영토, 경제, 자원, 생산, 기술 어느것하나 일본이 앞서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방어를 목적으로 일으킨 전쟁이었다. 생존을 위해 일본은 만주와 중국을 확보하려 했던 것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압력을 물리쳐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러일전쟁의 교훈을 떠올렸다. 러시아처럼 미국 역시 결정적인 한 방만 먹일 수 있다면 협상테이블에 나서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많은 침략전쟁을 치르며 일본군은 단련되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일본에게는 미국과 견줄 수 있던 단하나 일본을 열강으로 만들어준 막강한 해군도 있었다. 모든 자원을 동원해 싸우는 장기전이라면 몰라도 당장 보유한 전력만을 투사하는 단기전이라면 어쩌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불리한 예상은 철저히 무시한다. 가장 유리한 가정들로만 작전계획을 세운다. 아마 작전계획대로라면 아시아는 이미 오래전에 일본의 지배아래 놓이게 되었을 것이다. 미국은 당연히 일본의 계획대로 따라줄 생각이 없었다.


모든 전쟁의 시작은 자신이 가진 역량에 대한 낙관적 확신에서 비롯된다. 힘이 약하다고 해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정예와 묘책과 기적을 믿는다. 한 사람이 두 명 씩만 상대할 수 있으면 2배의 병력도 문제가 없다. 신묘한 계책으로 몇 배의 적도 어렵지 않게 농락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의 뜻이 자신들에게 있다. 지금의 전쟁은 정의를 관철하기 위한 자신들의 당위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신앙이다. 그러나 정예와 묘책과 기적은 적에게도 있다. 많은 경우 흔히 착각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다. 마치 늪에 빠져들 듯 그렇게 낙관론에 휩쓸리며 어느새 전쟁은 결정되고 만다. 승리하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그러기는 정말 쉽지 않다.


물론 최영(서인석 분)이 그런 무모한 낙관론만으로 요동정벌을 추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름대로 타당한 명분과 이유가 있었기에 그처럼 많은 반대를 무릅써가며 강경한 태도로 일관할 수 있었던 것일 터다. 이것은 반드시 옳다. 요동정벌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당시 것은 고려에 있어 가장 우선해서 해결해야 할 사명이며 과제였다. 드라마 '정도전'에서 우왕(박진우 분)이 최영의 주장을 받아들여 오히려 주도적으로 요동정벌을 추진하는 모습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출생마저 의심받고 있던 우왕에게 있어 요동정벌은 선왕인 공민왕의 아들임을 인정받고, 고려의 정통성있는 국왕임을 확인하는 계기였던 것이다.


이인임(박영규 분)이 실각하고 고려의 권력에는 커다란 공백이 생겼다. 혼란스럽던 고려의 국정을 이인임의 권세와 탁월한 정치력이 겨우 봉합하며 지금까지 끌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인임이 제거되고 이인임을 대신해 최고권력자의 자리에 오른 최영에게는 이인임과 같은 정치력이 없었다. 이인임이 제거되었어도 권문세족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인임을 제거하는데 앞장섰던 군부 역시 나름의 계산과 욕심이 있었다. 사대부는 사대부대로 그동안 이인임에 의해 억울려 있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며 시끄럽다. 그렇지 않아도 생모의 천한 신분 때문에 즉위과정도 순탄치 않았던 우왕이었다. 왕권을 바로세우고 혼란스런 국정도 안정시키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정치적으로 미숙한 최영에게 그것은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전쟁을 선포한다. 국정을 전시체제로 전환한다. 어떤 반대도 용납지 않는다. 군부 가운데서도 반항하거나 도전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 최영이 이인임을 대신할 수 있었던 아주 짧은 기간이었다. 그리고 우왕 역시 이인임이 제거되고도 최영과 밀월을 이루며 안정된 왕권을 누리고 있었다. 다만 이후가 문제였다. 억지로 고려의 모든 군사를 압록강 건너 요동으로 보냈다가 거기에서 명나라 군대에 패하면? 명나라 군대가 요동정벌군을 이기고 압록강을 건너 개경으로 쳐들어온다면 어떻게 하는가? 


하지만 바로 그것이 최영의 한계였다. 경험에 갇히고 말았다. 아니 요동을 정벌해야 한다는 당위가 그의 판단을 흐렸다. 목적이 과정을 가린다. 요동을 정벌해야 하기에 그로 인한 모든 불길한 가정들은 일부러 배제한다. 낙관적인 기대만을 남긴다. 모두가 보고 있는 그것을 외면한 채 혼자서만 보고 싶은 것만을 보며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려 한다. 그 괴리를 메우는 것이 폭력이다. 이인임은 어째서 자신과 반대편에 선 이들을 도방과 조정에 남겨두고 있었는가. 최영 자신을 망치고 마침내 우왕마저 망치고 만다.


도덕적인 독재의 최후이기도 할 것이다.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다는 것은 완벽을 말한다. 완벽이란 순결이다. 순백은 타협을 용납지 않는다. 조그만 티끌로도 순백은 더럽혀진다. 자코뱅의 이상은 단두대의 피로써 채워져갔다. 신념에 의해 행해진다. 도덕적으로 한 점 부끄럼없이 살았기에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한 의심 역시 없다. 그 자체로 옳다. 그 자체로 바르며 정의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의 죄마저 자신이 모두 짊어지고 가려 한다. 순교자가 된다. 목적이 과정을 정당화한다. 목적을 위한 당위가 그 과정에서의 수단마저 정당화하고 만다. 희생자를 밟고 간다. 원하지 않은 희생임에도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이다. 거룩하고 숭고한 것이다.


정치란 다수의 주체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의로운 한 사람이 아니다. 도덕적인 한 사람의 신념이나 당위가 아니다. 여러 사람의 여러 정의와 여러 신념들이 다수의 관계 속에서 조율되고 조정된다. 모두가 합의한 공감할 수 있는 공유한 결론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다. 개인으로서는 얼마든지 존경할만한 훌륭한 인물일 수 있다. 그러나 정치가 개입되고 권력이 주어졌을 때 그 의미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다른 이를 무시하고, 다른 가치와 가능성을 배제한다. 억압하고 심지어 탄압까지 한다. 그럼에도 정의다. 그럼에도 옳다. 독재다. 최영의 권력이 그보다 더 컸다면 어쩌면 더 끔찍한 결과를 맞았을지 모른다.


그에 반해 항상 고민한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 그렇다고 우유부단한 것은 아니다. 지금 자신이 생각한 가장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결심으로 삼는다. 일단 결심하고 나면 뒤를 돌아보는 법이 없다. 우직하게 밀고 나가려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충분히 보고 듣고 배우며 고민하고 생각한다. 작가가 이성계(유동근 분)를 통해 최영과 대비하여 보여주고자 하는 정치인의 이상이기도 할 것이다. 다른 이를 억압하지 않고 다른 주장을 배척하지 않는다. 대업을 위해서는 고려가 곤란에 빠질수록 좋다. 아들 이방원(안재모 분)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일 것이다. 조선의 태종이 된 이방원의 치세는 누구보다 난폭했고 잔인했다.


모두가 강자가 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될 수도 없다. 약자인데 강자처럼 살려 해서는 안된다. 가난한데 부자가 되려고만 하는 것도 어리석은 것이다. 약하면 약한대로 살 수 있다. 가난하면 가난한대로도 얼마든지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이 지혜다. 그렇게 인간은 문명을 이루고 살아왔다. 약자인 것을 부끄러워하고 가난한 것을 경멸하고 혐오한다. 그래서 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인간의 모든 어리석음은 그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약자는 약자대로. 강자는 강자대로. 그것이 사대의 질서다. 유교에서 말하는 존존(尊尊)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인다. 무리하게 욕심내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최선을 다한다. 고려가 명과 전쟁한다면 반드시 패할 것이다. 그리고 끝내는 망할 것이다. 그렇다고 영토를 양보할 수는 없다. 그것이 바로 정치이고 외교일 테지만. 감정적으로는 시원할지 몰라도 결국은 어리석은 것이다. 어렵더라도 때로 한 발 물러서며 멀리 돌아가는 지혜까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때로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아니 거의 대부분 감정이 이성을 우선한다. 세상은 그래서 언제나 시끄럽고 혼란스럽다. 지금 당장도 역시. 전쟁은 끊이지 않는다.


우왕이 요동정벌의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는 부분이 아주 탁월하다. 최영을 통해 강한 군주를 꿈꾸며 한편으로 이성계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이인임은 우왕의 보호자이며 또한 그를 억압하는 존재였다. 불안한 우왕의 위치를 한 마디로 요약해 버린다. 열등감과 좌절감, 그리고 왕으로서 드러나는 자의식까지. 그 혼란과 복잡한 이면을 박진우는 훌륭히 연기해낸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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