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비겁의 이유와 자연선택설 - 한국사회의 현주소...

까칠부 2014. 4. 17. 09:11

여러 개체 가운데 생존에 보다 유리한 조건을 갖춘 개체가 살아남아 유전자를 남기고, 그렇지 못한 개체는 도태되어 사라진다. 그렇게 보다 유리한 조건의 유전자가 살아남아 물려지는 것이 곧 진화다.


용기있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죽었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분노하여 일어섰던 이들이 먼저 죽어나갔다. 정의로운 사람들도 일찍 죽었다. 불의한 현실을 참지 못하고 저항하던 이들은 후손마저 비참해졌다. 반면 비겁했던 사람들은 살아남아 한국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그러나 그 대부분은 후손도 남기지 못했고, 남겼어도 그 끝이 불우했다.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이들도 마찬가지다. 민주화세대라 거들먹거리지만 살아남은 대부분은 비겁하게 방관하며 자신의 안위만 챙겼던 이들이다. 그렇게 역사의 유전자는 남아 현재를 정의한다.


"너만 살아남으라!"

"너만 살아남아 어떻게든 잘돼라!"


역시나 의로운 사람은 일찍 죽었다. 이제 겨우 22살. 불의한 이들은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아남아 여전히 뻔뻔하기만 하다. 의로운 이들은 도태되고 불의한 이들이 남는다. 용기있는 이들은 사라지고 비겁한 자들만이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이 자식을 가르친다. 손자손녀가 그들을 보고 배운다.


비겁이야 말로 한국인의 유전자다. 그래서 말하지 않는가.


"너만 잘되면 돼!"


그것이 정의다.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멋지다.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착한 사람이 일찍 죽는다. 신을 믿는 이들은 신이 너무나 사랑해서 일찍 곁으로 데려갔다 말하기도 하는데. 그렇게라도 믿고 싶어지는 것은 위로가 필요한 때문이다.


우울하다. 답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