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개과천선 - 김명민의 새법정드라마, 순조로운 출발

까칠부 2014. 5. 1. 07:14

법은 스스로 사고하지 못한다. 판단하지도 행동하지도 못한다. 법이란 단지 문장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다. 단지 인간에 의해 권위가 부여된다. 인간과 사회를 강제하는 원리이며 법칙이 된다. 결국 모든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결정될 뿐이다. 


근대법치주의가 가지는 근본적 모순이며 한계일 것이다. 정확히는 인간이 가지는 가장 흔한 착각 가운데 하나다. 법은 정의롭다. 법이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법치주의는 법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여기도록 만들었다. 법이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지키는 것이 곧 정의다. 처음 법을 만든 의도와는 상관없이 오롯한 문장 그 자체가 모든 가치를 정의하는 기준이 된다. 어떻게든 법을 어기지만 않으면 그것으로 문제는 없다.


사실 법정드라마는 보기에 그리 편한 장르는 아닐 것이다. 법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전문적인 기술들을 오히려 보편적인 정의와는 반대편에 선 이들을 위해 사용한다. 더 많은 댓가를 지불할 수 있는 누군가를 위해 범죄를 은폐하고 죄악을 가리는 수단으로써 법을 이용하려고 한다. 강간상해를 저지른 범죄자를 변호사가 법정에서 무죄로 만든다. 많은 이들을 절망에 빠뜨리고 죽음으로까지 내몬 사회적 저명인사가 변호사의 도움으로 면죄부를 받고 유유히 법정을 빠져나온다. 법이 정의라 믿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기망이며 배반이다. 심지어 그런 사람들이 승리를 거둔다. 마지막 승리하는 순간을 기대하더라도 그때까지가 너무 고통스럽다.


아예 노골적이다. 법을 다루는 전문가집단인 로펌에서 불법을 저지른다. 차명계좌를 만들고 비자금을 빼돌린다. 그 사실을 들키자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한다. 그들의 법에 대한 지식과 기술들은 그를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강간상해를 저지른 범죄자를 구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모습은 추악함 그 자체다. 법이란 그런 것인가. 그래서 드라마의 제목도 '개과천선'이다. 법의 정의를 아직까지 믿고 있는 지방대출신의 순진한 신참변호사 이지윤(박민영 분)은 그런 보통사람의 믿음을 위한 구원일 것이다. 그래도 법이 힘없는 사람들의 정의를 위해 존재한다는 환상을 지켜주기 위한 대상인 것이다.


하기는 김석주(김명민 분) 자신도 인간적으로 그다지 악인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사촌누이를 위해 굳이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누이 남편의 내연녀를 찾아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단지 변호사라고 하는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더 많은 의뢰비를 지불하는 고객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거기에는 선도 악도 없고, 호도 불호도 없다. 할 수 있는가, 할 수 없는가의 판단만이 있을 뿐이다. 아니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석주는 법과 닮았다. 그를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쓰는가가 문제이지, 그에게 역할이 주어진다면 그는 단지 그에 충실할 뿐이다. 강간범을 위해서도.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는 일본기업을 위해서도.


아쉽다면 김명민의 연기가 너무 낯익다. 목소리 톤이 늘 들어온 것처럼 익숙하다. 표정도 몸짓도 말투 하나도 전혀 새로운 느낌을 주지 못한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장점이다. 김명민이기에 기대하는 것들이 있다. 그런 역할이기도 하다. 김명민만이 살릴 수 있는 그런 느낌들이 있다. 여주인공인 이지윤 역시 항상 김명민의 곁을 지키던 여러 여자캐릭터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순수하지만 무모하다. 여리지만 올곧고 당차다. 어리숙하고 서툰 모습이 잘 벼려진 칼날같은 김명민의 선명한 날카로움과 대비된다. 결국 남성을 구원하는 것은 여성이다. 모성이다.


하필 첫사건이 파렴치하기 이를 데 없는 강간치상이다. 연예인 스폰서문제도 다룬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건을 김석주는 무죄로 이끌어내야 한다. 증거도 있고 증인도 확보되었다. 드라마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어설프지 않게 법의 치열함과 냉정함으로 잘 묘사해내야 한다. 시청자 자신조차 납득할 수 있는 논리와 구성이어야 한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문제나 편의점 불공정계약 등의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묘사도 기대해 본다. 단지 겉만 핥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이해와 묘사를 기대한다.


어쩌면 전형적인 첫회였을 것이다. 기업화된 첨단의 사무실에서 부속품처럼 움직이는 변호사들이 있다. 그들의 위에 탐욕을 위해 양심을 저버린 변호사들이 근엄한 얼굴로 세상을 조롱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완고한 세상에 작은 균열이 존재한다. 어쩌면 작은 양심들. 사소한 연민과 죄책감들이다. 그다지 정교하지 않은 헤프닝이 마음을 가볍게 한다. 부담을 줄인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법정드라마로 시청률에서 성공을 거둔 예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거의 멜로다. 아니면 인정에 호소한다. 어디까지 본격적으로 재판을 다룰 수 있을런지. 냉철한 논리와 논리가 부딪히는 지적인 게임이다. 기대는 아직 성급하다.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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