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주의 사회와 책임론...
한국 사람들의 특성 가운데 하나다. 아니 관료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흔히 발견하는 모습이다.
"책임질 수 있어?"
"결과를 먼저 생각해!"
"결과를 먼저 생각하고 나서 말을 하든 행동하든 해!"
그런데 결과를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단지 가능성에 불과하다. 여러 가능성 가운데 보다 나은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책임지기 싫다. 기대하는 것도 싫고 실망하는 것도 싫다. 확실한 것만을 요구한다. 아무 부담없이 그저 지켜보기만 할 수 있는 것을 바란다. 그래서 말한다.
"책임져!"
심지어 아이디어 회의에서조차 그런다. 좋은 아이디어를 모아보자며 가장 먼저 묻는 것은 그에 따른 책임. 비용과 시간과 노력과 실망할 것들에 대비해서. 확실한 것만 하겠다. 그런 건 이미 다 했다.
틀릴 수 있다. 실수할 수 있다. 하고 보니 그다지 기대와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가능성들이 모여야 다른 가능성이 생긴다. 어째서 한국사회는 지금처럼 경직되어 있는가.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이런 궁리도 해보고, 저런 궁리도 해보고, 때로는 뻘짓도 해보고, 서양문명이 위대한 것은 바로 뻘짓에 있다. 오만짓을 다하며 지금의 문명을 일구었다.
벌써부터 책임론이 나온다. 선의를 보지 않는다. 시도를 보지 않는다. 결과만을 본다.
그래서 관료사회는 복지부동이다. 하라고 해야만 한다. 확실한 것만 한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정답만을 찾을 것이면 고민은 필요없다. 그냥 하던대로 하면 된다. 법은 함부로 바꾸는 게 아니다.
답답하다. 조금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