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세월호 침몰, 선장과 선원들만을 비난해야 하는 이유...

까칠부 2014. 5. 2. 14:28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선장과 선원들이 배의 안전을 문제삼으며 회사에 개선을 요구한다. 어떻게 될까?

 

나아가 회사가 행동에 나서도록 압력을 가하려 한다. 그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하기는 배를 이용하는 승객 가운데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선장 따위가..."

"배나 모는 선원 주제에..."

 

선장이나 선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희한하게 한국사람들은 모든 직업을 경멸하고 조롱하는데 익숙하다. 존경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것은 돈, 혹은 명예, 아니면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다. 그 밖에 돈받고 일하는 모든 것은 가치가 없고 의미가 없다. 하물며 내가 돈을 지불하는 입장이라면.

 

배에 대한 선장과 선원들의 전문성을 우습게 무시한다. 그보다는 내가 그들에게 지불하는 돈만을 생각한다. 내 돈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돈받고 일하는 주제에. 회사의 경영에 대한 것은 사주의 고유한 권한이고 그것을 침범하려는 것은 겉넘는다. 회사가 잘되어야 고용인도 잘된다.

 

아마 그리 점잖게 타이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법 규정 다 지켜가며 어떻게 돈을 버는데?"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배가 불러서 그런다."

 

그리고 결론은,

 

"더 힘들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자기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전문가로서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일하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배의 안전에 대해 인식하고 있던 이전의 선원들 가운데 개선을 요구하기보다 차라리 퇴사하기를 선택한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을까. 그런 사실이 외부로 알려져도 욕먹는 건 선원들이다. 그동안 여러 파업들에서 증명되었다. 아마 내부고발자가 되어 외부에 사실을 알렸어도 배신자라며 사회적으로 왕따당하기 쉬웠을 것이다.

 

타이타닉의 선장과 비교한다. 타이타닉의 선장은 선장으로서의 자기 일에 대해 충분히 존중받고 있었다. 선장으로서의 배에서의 자신의 역할과 권위에 대해 모두로부터 인정받고 심지어 존경받고 있었다. 책임은 존엄으로부터 나온다. 존엄은 명예다. 명예란 존경이다. 고작 반토막 월급에 언제 잘릴지 모르는, 배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고용선장에게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어째서 우리사회에서는 프로페셔널리즘이 결여되어 있는가. 경멸하니까. 혐오하니까. 단지 직업은 수단이다. 가치있는 것은 일이 아니다. 자신도 그렇고 주위에서도 그리 판단하고 행동한다. 말하고 대한다.

 

배가 출항하기 전에 안전문제를 이유로 출항을 지연시킨다. 혹은 취소한다. 그러면 어떻게 반응할까?

 

"안전문제가 중요하지?"

 

아니면,

 

"아니 뭐 그런 것 가지고 사람들에 불편을 끼쳐?"

 

그러니까 이런 일도 가능한 것이다. 값싸게 쓰며 회사가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라. 평소에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것이 미덕이었다. 이제 와서 문제가 된다. 오로지 선장과 선원들만의 탓이다.

 

충분한 예우가 이루어졌다면야 온전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비정규직이라고 모두 하찮게 여겨지는 것은 아니다. 하찮은 대상에게 가치있는 일을 요구한다. 어쩌면 착취란 우리사회의 구조인지도 모른다. 저비용고효율. 기계도 들이는 것 없이 뽑아먹으려 하면 고장난다.

 

시키는대로 일해왔다. 안전따위. 혹시 모를 위험에 대한 대비따위. 오로지 돈을 위해서면. 그것이 또한 이 사회가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아무도 승객을 어떻게 해야 한다 말하지 않았었다.

 

그들만을 비난한다. 나는 전혀 문제없다. 언제나. 아무때든.

 

아, 그럼에도 스스로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는 선장과 선원들이 많다. 한결같이 이번 사고에 분개하며, 선장과 선원들의 행동에 스스로 자괴감마저 느낀다. 자존심이다. 존엄이다. 그것이 필요했다. 그것이 없었다.

 

총체적 부실의 결과다. 세월호는 때로 대한민국과 오버랩된다.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