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한국인과 소고기 - 소 좀 작작 먹으란 말이다!

까칠부 2014. 5. 24. 17:57

아마 조선 숙종때이던가? 마침 전국에 흉년이 들었는데 그와 관련해 흥미로운 기사가 눈에 띈다.

 

"흉년이 들자 백성들이 너도나도 소를 잡아먹는 바람에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하기는 원래 조선에서는 원칙적으로 소를 잡을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면 제사를 지낼 때, 혹은 소가 다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때. 소란 농사를 짓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노동력이었기 때문이었다. 농사를 나라의 근본으로 여기던 조선에서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먹고 싶은 것을 마냥 참는 것도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니다. 그래서 편법을 사용했다. 조선조 초기 기록에도 빈번히 나오는, 소를 일부러 다치게 하고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하여 도살하는 것이었다. 혹은 성균관 근처의 반촌에서는 제사를 핑계로 소를 잡을 수 있었는데 그런 이유로 반촌의 공노비들은 소고기를 팔아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백정들이 주로 가축의 도살에 종사한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천민이기에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 대신 법의 강제로부터도 자유로웠다. 세금도 내지 않았고 역도 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백정들 역시 도살을 업으로 삼으며 조선후기까지 상당한 부를 축적한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법으로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사람들은 소고기를 무척 즐겨먹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 지금이야 국물은 낸다고 하면 멸치나 다시마 기타등등 다양한 재료가 쓰이지만 예전에야 국물하면 무조건 소고기 국물이었다. 어렸을 적 국수국물을 낸다고 해도 소고기를 가지고 국물을 냈지 멸치는 쓰지도 않았다. 닭고기 국물을 베이스로 한 일본의 라면이 한국에 들어와 소고기 국물을 베이스로 한 매운맛 라면으로 발전한 것도 그런 이유다. 고기는 소고기, 국물은 소고기 국물. 그러고보면 어렸을 적 무슨 일이 있어 남의 집을 찾을 때면 한결같이 소고기를 싸들고 가기도 했었다.

 

하루 조선에서 잡는 소가 몇 마리였다더라? 참고할 자료가 바로 옆에 없으니 패쓰하고. 대신 일본과의 무역에서 중요하게 거래되었던 상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소를 잡아 나오는 소가죽이었다. 일본에서도 역시 소를 도살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본격적으로 소고기문화가 발달한 것은 더이상 소가 농사의 도구로 여겨지지 않게 된 해방 이후부터일 것이다. 아니 불과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일하던 소를 그대로 잡아 질기고 냄새나는 소고기가 적잖이 유통되고 있었다. 내가 고기를 먹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냥 생각나서. 한우가 참 비싸구나. 그런데도 참 잘도 사먹는다. 한우를 상품으로 내걸기도 한다. 나는 돼지고기를 좋아하는데. 한우의 개량에 대한 노력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축산농가를 보면 사실 답답함이 앞서는 때가 많다. 그런 이유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