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맨 - 강동석의 폭주, 역린을 건드리다!
원래 미친 놈과는 상종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로 튈 지 모른다. 보통사람의 상식이나 감정으로는 그 행동을 도저히 예측할 수 없다. 예측할 수 없으니 대비도 할 수 없다.
감정에 휘둘리면 다루기 편해진다. 감정이란 에너지다. 그것도 매우 강렬한 지향성을 가지는 에너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휩쓸려 버린다.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기 전에 먼저 감정이 결론부터 내리고 만다. 감정의 방향만 조절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 생각이나 행동을 자기가 의도한 대로 조종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다. 방향은 맞는데 그 세기나 속도가 다르다. 거리도 다르다. 오히려 자신마저 그 감정에 휩쓸리고 만다. 미쳤다는 것은 개인의 특정한 정신적 질환이나 다른 정신적인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상에서 벗어난 상태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설마 이렇게까지 막나갈 줄은 몰랐다. 대개는 열등감이다. 혹은 공포이고, 혹은 증오다. 자신이 이성으로 감당할 수 없는 어떤 극단의 감정상태일 것이다. 바로 강동석(최다니엘 분)이 그러했다.
남들과 다르다. 현성그룹의 후계자다. 현성그룹을 물려받아 지키고 더 크게 키워야 할 책임이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그에게는 지워져 있었다. 그런데 심장이 남들만 못하다. 벌써 한 차례 수술을 받았다. 자기 심장이 아닌 남의 심장에 의지해 연명하고 있는 처지다. 더구나 사고를 당하면서 한 차례 더 멈춰버린 심장을 남의 심장으로 바꿔달아야만 했었다. 그를 위해 자신의 부모는 드러낼 수 없는 불법과 편법들을 동원했어야 했는데, 그러나 여전히 그의 심장은 언제 멈출 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그런 자신이 과연 현성그룹을 물려받을 자격이 있는가.
과도한 중압감과 그로 인해 증폭된 열등감이 안좋게 결합한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차 현성그룹을 물려받을 후계자라고 하는 중압감은 자신의 신분에 대한 지나친 자의식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그를 위한 충분한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열등감은 자신을 막아서는 모든 것에 대한 증오로 표출된다. 그럼에도 자신은 당당한 현성그룹의 후계자여야 하고, 무엇도 그런 자신을 방해하거나 막아서서는 안된다. 그런 자신의 것을 탐내거나 욕심내서도 안된다. 자신이 인지하는 있어서는 안되는 흠결들이 완전무결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대기업 후계자라는 거창한 타이틀에 비해 강동석에게는 여유라는 것이 없다.
항상 쫓긴다. 항상 초조해한다. 그래서 행동 역시 항상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아버지 강성욱(엄효섭 분)조차 김지혁(강지환 분)에 대해 굳이 죽이려는 마음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그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들의 일상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했었다. 강동석이 소미라(이다희 분)를 결혼할 상대라며 소개했을 때도 최윤정(차화연 분)은 잠시의 고민 끝에 허락하자고 강성욱에게 말하고 있었다. 나중이야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다 싫증나면 헤어져 버리면 그만이다. 강동석의 마음만 소미라에게서 떠나면 그녀를 떼어놓을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다.
김지혁이 아무리 복수를 하겠다 날뛰어도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눌러버릴 힘이 현성그룹에는 있었다. 굳이 죽이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완전히 무력화시켜 매장해 버릴 수 있는 힘이 현성그룹과 강성욱 일가에는 있었다. 소미라가 아무리 이혼을 못하겠다 거부해도 최윤정이라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소미라를 강동석의 곁에서 떼어놓을 것이다. 그래서 최윤정은 강동석과 소미라의 결혼에 찬성할 수 있었다. 강성욱도 김지혁에 대해 나름의 연민과 죄책감을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강동석은 어떨까?
소미라가 항상 자신의 곁에 있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 소미라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문제다. 언제 심장이 문제를 일으킬지 모른다. 언제 어떻게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자신을 과연 소미라가 끝까지 사랑해 줄 것인가 자신이 없다. 그런데 그런 소미라의 눈이 자신이 아닌 김지혁을 향하려 하고 있었다. 사랑이라기보다는 집착이다. 자신의 것을 빼앗기는데 대한 공포다. 심지어 아버지 강성욱조차 자신보다 김지혁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강동석에게도 여유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아직 소미라의 김지혁에 대한 감정을 깨닫기 전. 그때는 마음껏 농락하고 버릴 상대에 대한 연민도 조금은 있었다.
그는 강자가 아니다. 단지 강한 힘을 가진 약자에 불과하다. 그래서 쉽게 동요한다. 쉽게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고 만다. 질투심이다. 열등감이다. 증오고 공포다. 안타깝게도 사랑은 아니다. 그는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한다. 오히려 경멸하고 혐오한다. 그것을 인정하기 싫을 뿐이다. 그것을 건드렸다. 단순히 현성유통의 담합에 대한 자료들만으로 강동석을 협박했다면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강동석 역시 사업가인 때문이다.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경영자로서 필요하다면 약간의 손해나 굴욕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그런데 하필 거기에 소미라가 엮여 있었다.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사람이.
김지혁에 대한 증오를 드러내면서도 그것을 굳이 대삼과의 거래를 성사시키는 방향으로 돌릴 줄 알았던 강동석이었다. 김지혁도 죽일 수 있으면서 현성유통을 매각해서 현성그룹에도 이익이 될 수 있다. 충분히 이성적이고 냉정한 판단이 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소미라는 아니었다. 그녀는 강동석이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아직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확신이었다. 다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고 기대였다. 심장이 언제 멈출 지 모르는 자신은 아무 쓸모도 없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소미라를 잡으려 한 것인데, 그런 소미라가 자신이 아닌 김지혁을 위해 심지어 회사의 기밀까지 빼돌리고 있었다. 용서할 수 없다.
어떻게 될 것인가? 현성유통을 팔아야 했다. 어떻게 해서든 팔아서 현성그룹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기회로 삼아야 했다. 그런데 현성유통을 부도내 버렸다. 그만큼 소미라에 대한 배신감이 크다. 김지혁에 대한 증오도 크다. 그것이 결국 김지혁의 편에 선 소미라에 대한 증오로까지 이어질 것인가. 소미라까지 잃고 막다른 궁지에 몰린 강동석의 발악과도 같은 폭주도 기대해 본다. 결국은 자신은 물론 자신의 가족과 현성그룹까지 위험으로 내몰지 모른다. 시한폭탄과도 같다. 강동석의 광기는 그가 치러야 할 댓가에 대한 예고다.
광기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순간순간 바뀌는 표정과 극단의 감정들이, 그러나 누구보다 침착하고 냉정해 보여는 평소의 모습과 정확히 대비된다. 침착하게 미쳤다. 어느 소설에서 읽었던 인상적인 문구다. 강자라서가 아니다. 힘에 휘둘리는 어설픈 강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약자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가련해 보인다. 그는 어째서 그렇게밖에는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것일까. 웅크린 채 울먹이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비단 필자의 착각일까? 악이란 어째서 이토록 슬픈 것일까? 최다니엘의 연기에 찬사를 보낸다.
반전이었다. 최유재(김지훈 분) 팀장의 합류는 대놓고 신파조였다. 동화였다. 판타지였다. 그러나 그렇게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김지혁과 구덕규(권해효 분) 두 사람의 힘만으로 어떻게 하기에는 현성그룹의 가지인 현성유통은 너무 강한 상대였다. 그런 우연이라도 일어나야 한다. 그런 기적에라도 기대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겨우 강동석의 항복을 이끌어냈다고 여기는 순간 도상호(한상진 분)의 보고가 모든 상황을 뒤집어 놓는다. 차라리 같이 죽겠다. 극단의 선택이 강동석이 가지고 있는 절박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미묘한 느낌을 준다. 다시 김지혁의 인간미가 승리를 거두지만, 강동석의 광기가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린다.
강진아(정소민 분)가 바란 것이 바로 그런 따뜻함이었다. 아무 이유도 조건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걱정해주고 위해준다.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소미라는 강동석을 사랑하려 한다. 김지혁이 말한 그대로다. 그들은 단지 현성그룹의 사람들만을 지키려 할 뿐이다. 강진아가 김지혁의 무조건적인 걱정과 염려에서 스스로 인간임을 느끼게 된다면, 아버지대부터 현성그룹에 고용되어 일했던 소미라 입장에서 인간이란 현성그룹의 사람을 뜻하는 것이었다. 서로 원하는 것이 다르고 절박함이 다르다. 하지만 소미라 역시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자각이다. 인간이라는 존엄에 대한 인정이다. 그녀가 흔들리는 이유다. 그녀는 인간이라 하고 있었다. 강진아도 해맑에 웃을 줄 안다.
소미라의 아버지가 써야 했던 오며에 대한 진실이 흘러나오고 있다. 예상한 그대로다. 아무리 일개 운전기사가 횡령을 해봐야 얼마나 했었겠는가. 현실에서도 흔히 보고 듣게 되는 이야기다. 다만 대상이 죽은 사람이었다. 살아있는 자신과 딸들을 위해 어머니가 그에 동의하고 있었다. 철저히 도구로서 이용되었던 운전기사의 딸이 이번에는 회장의 아들인 강동석과 결혼하려 하고 있었다. 미묘한 대비다. 어머니의 고민이 깊어간다.
예고편이 없다는 사실이 무척 아쉽다. 벌써 분량이 이렇게 되었다. 도저히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답답할 지경인데, 그러나 이제부터는 완성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예고편이 사라지면 그때부터 드라마가 산으로 가는 경우도 적잖이 보아왔다. 어떤 또다른 반전이 준비되었는가. 강동석의 역습에 김지혁은 어떻게 반격을 하게 될 것인가. 그리고 싸움의 끝은 무엇일까. 증오가 아님을 안다. 단순한 복수가 아님도 안다.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남을 미워하며 살기에도 너무 피곤한 요즘이다. 행복해졌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았다. 아무것도 없이 맨몸 하나로 어떻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억지도 써보지만 역시 만만치 않다. 긴장과 함께 기대도 커진다. 도저히 예상이 안되는 광기와도 맞서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조화수(장항선 분)는 양날의 칼이다. 재미있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