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네거티브가 네거티브인 이유...

까칠부 2014. 5. 29. 07:28

이를테면 서울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무상급식에서 농약이 기준치 이상 검출된 식재료가 급식에 쓰인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해 무얼 어떻게 하겠는가?

 

무상급식을 하지 말자는 건 어차피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친환경농산물을 그다지 따져가며 먹지 않는다. 친환경이라 할지라도 결국 추가적인 검사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정부기관에서 적발하면 그제야 그런 게 있었구나 분개할 뿐이다. 그나마 서울시에서는 급식에 쓰이는 농산물에 대해 추가적 검사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서울시에서 지금 시행하고 있는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검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더 촘촘하게 부정한 농산물을 걸러낼 수 있도록 다듬느냐의 문제인데. 그런데 정작 그에 대한 어떤 논의도 주장도 없다. 자기라면 어떻게 하겠다. 자기라면 어떻게 학생들이 마음놓고 급식을 먹을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

 

그게 바로 네거티브와 정책선거의 경계인 것이다. 상대후보를 공격한다고 다 네거티브가 아니다. 공격의 뒤에는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공격한 이유가 명확히 제시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다르다. 나는 다르게 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를 선택해야 한다. 상대가 못나서가 아니라, 그보다 더 내가 낫기 때문이다.

 

그런 정도도 구분 못하는 주제들이라니. 서울시가 모두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검사도 100% 완벽할 수는 없다. 완벽을 추구할 수 있을 뿐이다. 완벽하지 못하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런 노력들은 인정한다. 더 잘하도록 채찍질한다. 대책과 대안을 제시한다.

 

어차피 서울시가 문제가 된 것도 농산물을 추가로 검사하고 걸러내는 시스템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조차 없는 지자체가 아예 거의 전부다. 시험을 보지 않았으니 아예 틀린 문제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일도 없다. 국민수준이 곧 정치의 수준이다. 설마 이런 것도 구분 못할까?

 

저런 네거티브가 존재하고, 또 용인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경악할 뿐. 그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 역시. 단순한 사실인데. 항상 실망해왔기에 더이상의 실망도 없다. 설마하면서도... 어이없어 그저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