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빅맨 - 작은 혁명, 약자들의 도전이 승리를 눈앞에 두다

까칠부 2014. 6. 3. 09:17

인간이 단지 도구로 전락하는 현실을 본다. 수십년 회사를 위해 일해온 임원이었다. 어찌되었거나 회사를 위해 기여한 것이 있었기에 임원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일 터였다. 그런데 그 죽음조차 지켜주지 않는다. 죽은 이의 명예마저 자신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오히려 모멸감을 느낀다. 소미라(이다희 분)가 한 일을 알면서도, 더구나 그것을 모두의 앞에서 공개했음에도, 그러나 너희들과는 다르다. 바로 직전까지 동료였는데 전혀 다른 존재로서 받들어보셔야 할 대상으로 간주된다. 무엇도 아닌 단지 강동석(최다니엘 분) 자신의 말 한 마디로 인해. 그런 일방적인 특별취급에 감격하기에는 소미라의 자존감이 너무 높다.


결국 알았다. 아버지의 죄에 대해. 아버지가 저질렀다던 부정에 대해. 같았다. 강성욱(엄효섭 분) 회장 개인의 실책을 감추기 위해 아버지의 죽음을 이용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삶을 더럽혔다. 자신이 사랑한 아버지의 존재를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더럽히고 말았다. 그것은 한 편으로 자신을 위한 분노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단 한 번도 그녀는 강동석과 동등한 인격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것을 깨닫게 해 준 것이 바로 김지혁(강지환 분)이었다.


알고 있었다. 모르지 않았다. 자신은 저들과 다르다. 저들은 자신과 다르다. 그래서 체념하고 있었다. 체념한 채 순응하고 있었다. 유일한 꿈은 강동석과 결혼하여 저들과 같은 위치에 오르는 것. 하지만 아니었다. 비로소 알았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설사 강동석과 결혼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저들과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강동석을 위한 조금 더 나은 장난감이 되어 줄 뿐이다. 진정으로 저들과 같아지는 방법은 싸워서 이기는 것 뿐이다. 자신의 힘으로 저들과 같은 위치로 오르는 것 뿐이다. 현성그룹과 싸우려는 김지혁을 말리는 사이 그녀도 깨닫게 된다. 불안하고 위태하지만, 그래서 도저히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그러나 기대하는 자신이 있었다.


김지혁이 이기기를 바란다. 김지혁의 뒤에 있는 그들 - 시장사람들과 현성유통의 노동자들, 힘없고 가난한 그들이 마침내 현성이라는 괴물을 이기고 자신들의 행복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 바로 계급이다. 계급의 자각이다. 강동석은 단지 꿈이었다. 현성그룹은 단지 자신의 동경이고 바람일 뿐이었다. 시장사람들이야 말로 현실이었다. 자신이나 어머니, 어쩌면 돌아간 아버지처럼 땀흘려 일하며 그런 가운데 작은 행복을 찾으려는 현성그룹의 노동자들이 곧 자신의 현실인 것이다. 무엇을 위해 일하고 누구를 위해 싸워야 하는가. 작은 혁명을 꿈꾼다.


말 그대로다. 혁명이다. 아무것도 아닌 노동자들이 모여 자신들의 사장을 고른다. 그 노동자들에 의해 선택된 김지혁이 나서서 강동석이라고 하는 현실의 괴물과 싸운다. 현성유통은 부도처리됐지만 현성유통의 법정관리자는 여전히 전임관리자였던 강동석이 계속해서 맡고 있었다. 관행이 그렇다. 그리고 강동석은 자신과 현성그룹의 이익을 위해 마지막 남은 현성유통의 여력까지 쥐어짜려 한다. 지금까지 그것에 대항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무력하게 당하고 있어야만 했었다. 김지혁이 처음 노조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노조원들이 보인 체념이 그런 현실의 벽을 보여준다. 그 벽을 무너뜨리려 한다. 노동자 자신과 그로 인해 억울하게 희생될 시장사람들을 위해서. 


더 역설적인 것은 그럼에도 그것이 정작 현성유통이라는 기업 자신을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는 점일 것이다. 기업의 이익과 기업 오너의 이익, 단지 그것은 강성욱과 강동석, 현성그룹 오너 일가의 이익에만 배치될 뿐이다. 채권단에게도 이익이 된다. 조화수(장항선 분)는 현성유통의 대주주이기도 했었다. 그런 조화수의 이익마저 강동석은 개인의 감정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다. 개인의 욕심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무시한다. 강동석에 저항하는 노조원들의 행동이 결국 주주와 채권단 모두를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혁명이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역사드라마에서나 찾아 볼 수 있던 혁명이 작지만 현성유통이라고 하는 작은 세계에서 일어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노동자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선택과 자신의 힘에 의해. 그것을 돕는 것도 소미라라고 하는 또 한 사람의 노동자다. 그녀는 스스로 노동자가 되려 한다. 현성그룹의 일가가 아닌 노동자의 딸, 그리고 노동자 소미라이기도 한다. 강동석과의 사이에 선이 그어진다. 도저히 합칠 수 없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다. 그것은 그들의 전쟁이기도 하다.


아버지로서 단지 딸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이기를 바랐다. 딸로써 아버지가 단지 자신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이기를 바랐었다. 소미라와 강진아(정소민 분)의 현실이 엇갈린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은 같다. 소미라는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찾으려 하고, 강진아는 자랑스럽지 못한 아버지를 외면한다. 강진아가 평소 아버지를 생각해 온 진심이 느껴진다. 기대가 없다면 실망도 없다. 딸의 기대를 저버린 자신이 부끄러워 강성욱은 차마 강진아를 붙잡지 못한다. 아버지를 대신해 김지혁에게 갚으려 한다. 사심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이 자신의 의무다. 의외로 올곧다. 사랑받고 자라온 것을 느끼게 한다. 강동석과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는 아직도 내일이 불안하다.


아버지와 아버지, 딸과 딸, 어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늦은 결혼에 고맙기만 한 사랑을 위해 동료를 저버려야 했던 슬픔이 있다. 그마저도 이해해 줄 줄 아는 인정도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힘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김지혁에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힘이다. 자본이 지배하는 시대에도, 심지어 그 정점에 있음에도 현성그룹의 일가 역시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김지혁의 반격이 성공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김지혁을 앞세운 현성유통 노조원들의 반란이 비로소 결실을 맺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쉽지는 않다. 현성그룹은 여전히 크고 강동석에게는 여전히 더 많은 것들이 주어져 있다. 어떻게 다시 김지혁과 현성유통을 위기로 내몰 것인가. 그래도 승리한다. 그래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다지 큰 액션이나 트릭이 없음에도 긴장하며 볼 수 있다. 걸린 것이 다르다. 김지혁의 어깨에 걸린 것들이 다르다. 자신을 이입하게 된다. 어느날 갑자기 회사는 부도나고 자신은 비정규직으로 전락한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로 인해 삶이 휘둘리고 만다. 공포가 현실이다. 드라마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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