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맨 - 강동석의 비극, 마지막 발악이 시작되다
어쩌면 원죄와도 같을 것이다. 아버지가 지은 죄를 자식이 받는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소미라(이다희 분)를 향한 강동석(최다니엘 분)의 마음은 진심이다. 그것이 단지 집착이 되었든, 소유욕이 되었든, 아니면 사랑이든. 소미라 역시 한때는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 진심은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 김지혁(강지환 분) 때문이 아닌 아버지 강성욱(엄효섭 분)이 지은 죄 때문이다.
빼앗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짓밟고 올라가는 것이야 말로 정의라 생각했었다. 불법과 탈법, 협잡과 권모술수, 그렇게 아버지 강성욱도 지금의 현성그룹을 일구었다. 정상정인 기업경영이 아닌 편법을 통해 부를 쌓고 영향력을 키워왔다. 하기는 강동석만이 아니다. 그를 형이라 부르던 문명호(이해우 분) 역시 그같은 방식에 동의하고 있다. 단, 차이가 있다면 냉정을 잃은 강동석에 비해 끝까지 냉정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필요하다면 김지혁과도 손을 잡는다.
너무 고귀한 신분이 되어 있었다. 저들과는 다른 인간이어야 했다. 당연한 상식조차 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된다. 어째서 소미라가 자기 아버지 일로 분노하는지. 어째서 그런 사소한 일로 자신을 거부하는 것인지. 하지만 그런 신성에 흠결이 생겼다. 그를 무너지게 만든 이유다. 누구보다 고귀한 이가 평범한 이들만도 못한 심장을 가졌다. 자존심과 자격지심이 그를 한계까지 내몬다. 증명을 위한 싸움이었다. 나는 저들과는 다르다는 확인을 위한 싸움이었다.
어쩌면 죽음에서 겨우 살아온 자신 앞에 누구보다 건강한 - 자신과 같은 심장을 지닌 김지혁이 또다른 아들로써 나타나 있었다는 것이 이 모든 일들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김지혁과 가까운 소미라를 질투하고, 김지혁과 자신을 비교하는 아버지 강성욱에게 분노하고, 자신이 아닌 김지혁의 편을 드는 동생 강진아(정소민 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보여주어야 한다. 김지혁은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그럼으로써 자신은 여전히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소미라가 사랑하던 남자이며, 아버지가 기대하던 아들이고, 동생의 오빠다. 그것이 그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잃었다. 현성유통은 김지혁의 것이 되었고, 경영자로서 현성그룹과 아버지의 신뢰도 잃었다. 동생은 여전히 김지혁에게 가서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다 좋다. 다 감당할 수 있다. 자신을 속여서라도. 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억지를 부려서라도. 그리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소미라는 아니다. 소미라는 그의 남성성이다. 그가 아직 우월하다는 증거다. 소미라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애써 모른척 한 이유였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소미라만 자신의 곁에 남아있어준다면, 여전히 자신을 사랑해 준다면, 그러면 자신은 진 것이 아니다. 여전히 자신은 가치있는 존재다. 인간은 결국 사랑받기 위해 사는 존재인 때문이다.
누구도 곁에 남아 있지 않은 가운데 강동석에게 남아있는 것은 그와 공범관계인 도상호(한상진 분) 실장 뿐이다. 그만은 자신의 편이 되어야 한다. 같은 죄를 지은 자로써. 그 죄를 공유한 자로써. 마지막까지 그만은 자신과 같이 해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죄에 대한 자책은 때로 무모함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여기까지 왔으면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부정할 자신이 도상호에게는 없다. 어차피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살았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양아치로서 자신보다 한참 깜냥도 안되는 강동석(최다니엘 분)의 뜻대로 휘둘리지 않겠다. 강동석에게 했던 그대로 돌려받은 만큼 강동석이 했던 그대로 다시 돌려준다. 현성유통을 최종부도처리한 강동석의 한수를 자수라는 과격한 수단으로 돌려주려 한다. 조화수(장항선 분)의 꿈이었다. 저들과 같은 높이에 서는 것. 더 이상 비참하고 비루한 뒷세계가 아닌 밝은 곳에서 저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며 세상을 굽어볼 수 있는 것. 여기서 물러난다면 그 꿈은 한낱 물거품이 되고 만다. 꿈은 현실보다 강하다. 스스로 죄수복을 입는 것도 마다치 않는다.
당연한 것이다. 김지혁과 현성유통에 지켜야 할 의리가 있는 것은 구덕규(권해효 분) 팀장 한 사람 뿐이다. 그 가족에게는 그럴 의리가 전혀 없다. 김지혁과 얼굴 한 번 마주친 적이 없었다. 조화수는 더더욱이다. 의리가 가지는 한계다. 어차피 그다지 지켜야만 하는 의리도 아니었다. 불법장부였다. 탈세의 증거였다. 인정에 이끌리는 관계의 한계다. 인정이란 직접적인 관계에만 한정된다.
어떻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김지혁의 아이디어로 현성유통은 다시 살아났다. 강동석의 마지막 꼼수는 조화수의 몽니로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소미라가 당당히 강동석에 선언하고 김지혁에게로 돌아왔다. 해피엔딩. 아니 그러기에는 강동석이 입은 상처가 너무 크다. 어쩌면 자신이 스스로에게 입힌 상처였다. 마지막 위기가 시작된다. 모든 것의 끝이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면 누군가 멈춰주어야 한다. 반드시 파열음이 들리고 만다.
강동석이 아니더라도 강진아가 있다. 강동석의 비극적 결말을 예감한다. 의외로 강하다. 성실하기도 하다.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지금도 하고 있다. 시야가 넓고 자신에게 솔직하다. 그를 위한 준비일 것이라 생각한다. 단순한 복수가 아니었다. 소미라는 어떤지 몰라도 김지혁은 단지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모두가 행복해진다. 최선의 결말이다. 마지막 고비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