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과천선 - 차영우 로펌과 김석주의 대리전쟁이 시작되다!
기업화된 로펌에서 변호사란 일개 부속에 불과하다. 변호사 한 명이 나가면 다른 변호사를 스카웃해서 그 자리를 채운다. 김석주(김명민 분)만한 에이스조차 그 공백을 느낄 새도 없이 전지원(진이한 분)이라는 판사 출신의 새로운 변호사가 대신한다. 재판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변호사 개인이 아닌 로펌이라는 조직이다.
김석주 자신도 인정한다. 키코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인들 앞에서 이런 고도로 복잡하고 전문적인 사건은 사무실도 없는 자기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엄선된 최고의 변호사들이 각자 전문분야를 가지고 역할을 나누고 서로 협력한다. 개인으로서는 볼 수 없는 것까지 보고,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닿게 된다. 보다 빨리 보다 정확하게 구체적인 사실에 접근하고 그에 대한 대응논리를 개발한다. 방대한 사례와 판례를 수집해서 자신의 무기로 삼는다.
차영우(김상중 분)가 김석주를 두려워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누구보다 잘 효과적으로 사용한 사람이 바로 김석주 자신이었을 것이다. 차영우 로펌에서 차영우 로펌의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하여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냈다. 그 경험과 지식이 어디로 가지는 않는다. 차영우 로펌을 나와서도 로펌 밖의 세상을 마치 자신의 로펌처럼 역할을 나누고 협력을 이끌어낸다. 중수부장 출신의 변호사를 전면에 내세워 검찰의 협력을 이끌어내고, 박상태(오정세 분)를 통해 확보한 은행관계자에게서 키코의 리스크를 계산해 자료로 삼는다. 검찰의 압수수색영장이 기각되자 이번에는 담당검사인 이선희(김서형 분)에게 전화를 건다.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어 사건은 진행된다. 차영우가 스카웃한 신인변호사 전지원은 판사출신이었다. 검찰 중수부장 출신의 변호사를 내세워 공격을 가하려는 김석주의 의도에 대해 전지원은 판사시절의 인맥을 동원해 압수수색영장을 방어해낸다. 차영우 로펌에서 사건을 독점적으로 수임하려는 그 순간 김석주 또한 사건을 맡아줄 가장 적합한 로펌을 찾아 중소기업인들에게 추천해주고 있었다. 차영우 로펌의 변호사들이 각자 자기의 역할을 나누어 이미 밝혀진 문제들에 대한 대응논리와 전략들을 찾아내고 있을 때도 김석주는 자신을 대신해 키코의 문제점을 밝혀내 줄 전문가를 찾아내고 있었다. 김석주가 전면에 나서고 있지 않음에도 어느새 차영우 로펌과 김석주 사이에 대리전을 치르는 듯한 모양새다.
차영우 로펌을 통해 현대의 첨단의 재판을, 그리고 김석주를 통해서는 그를 활용하는 새로운 타입의 영웅을 보여준다. 말 그대로 컨트롤타워다. 지휘관이다. 김석주가 특별한 이유다. 개인으로서도 탁월하지만 그의 탁월함은 주어진 조건과 요소들을 최대한 그 이상으로 활용할 줄 아는 능력에 있을 것이다. 법은 물론 이 사회의 정의까지 마음대로 하려는 법조계의 괴물을 상대로 김석주라는 개인이 맞서싸울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유일한 친구라 할 수 있는 박상태와 아직 풋내기에 불과한 이지윤(박민영 분)이 있다. 이제 검사인 이선희도 추가된다. 아버지 김신일(최일화 분)의 인맥도 있다.
물론 일개 부속품은 아니다. 그래서 차영우는 떠난 뒤에도 김석주를 아쉬워한다. 김석주의 빈자리는 크다. 아직도 많은 의뢰인들이 김석주만을 찾는다. 전지원이 어디까지 김석주를 대신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불확실한 가능성에 불과하다. 그것을 가능케 만드는 것이 차영우 로펌의 힘이다. 어쩌면 차영우 로펌이라는 자본화된 조직과 김석주 개인의 싸움이 되기도 할 것이다. 과연 슈퍼히어로는 가능한가. 차영우로펌이라는 괴물을 상대로 김석주는 영웅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드라마로서는 당연히 약자일 수밖에 없는 김석주가 승리하는 편이 몇 배 더 재미있다. 인간이 승리하는 드라마를 바란다.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와 기억상실로 벌써 기억을 잃은 아들,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한 장치일 것이다. 아들은 기억을 잃음으로써 아버지에 대한 원망마저 잊어버렸다. 기억을 잃어감에 따라 아들에 대한 실망과 서운함도 함께 잊어가게 될까? 먼 기억속에서 아들을 사랑하던 기억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뒤를 잇는다. 아버지와 같아진다. 같은 의미다. 아버지는 사무실을 닫고 아들은 아직 사무실이 없다.
법이란 정의를 위해 봉사한다는 환상에 대해서. 법을 이용할 줄 안다면 죄를 짓고도 처벌을 면할 수 있다. 이미 지은 죄조차 없었던 것처럼 지워지기도 한다. 바로 얼마전까지 법에 따라 엄정한 판결을 내리던 판사 전지원이 불법을 돕고 범죄를 은폐하는 파렴치한 변호사가 되어 있다. 법을 공부하며 쌓은 법에 대한 지식과 판사로서의 경험과 인맥들이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한 불의한 가해자의 편에 서는데 쓰이고 있다. 어쩌면 그가 승리할지 모른다. 그와 간접적으로 겨루고 있는 김석주 역시 정의가 아닌 지식이고 기술이다. 경험이다. 법은 능력이다.
어설픈 로맨스를 배제한 채 실제의 사실에 근거한 치밀하고 치열한 전문적 내용으로만 오로지 채워넣고 있다. 약혼녀인 유정선(채정안 분)이나 약간의 섬싱이 있던 이지윤(박민영 분)조차 이후의 전개를 위한 단지 도구로서만 쓰일 뿐이다. 유림이 있었고, 존속살해범이 있었다. 김석주의 과거를 반추하는 거울이며 중요한 사건의 매개체였다. 유정선을 통해서는 자신이 믿고 있던 바에 대한 회의를 보여준다. 시청률이 아쉬운 이유일 것이다. 피곤한 저녁시간에 이처럼 메마를 정도로 전문적인 내용을 즐길 사람은 그다지 없다. 감정선도 너무 복잡하다. 쉬운 길을 굳이 마다한다는 것이 드라마의 가장 큰 장점이지만 그래서 더 아쉽다.
명품 법정드라마일 것이다. 감정적인 정의가 아니다. 개인의 인정에도 이끌리지 않는다. 사람이 좋아졌어도 김석주는 김석주다. 법은 논리다. 법이란 이성이다. 차영우는 어쩌면 선도 악도 아닐 것이다. 단지 변호사다. 의뢰인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는 변호사. 그 대상이 남다를 뿐이다. 그는 차영우로펌이라는 거대로펌을 이끄는 책임자이기도 하다. 그는 그래서 때로 선한 얼굴과 악한 얼굴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마치 법과 같다. 그는 변호사다.
벌써 싸움은 시작되었다. 차영우로펌과 김석주, 김석주를 대신할 전지원과 김석주 자신이.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고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정의롭고 누가 죄를 지었는가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누가 어떻게 상대의 논리를 꺾고 마지막 승리를 거두는가. 첨예한 이성이 겨루는 치열한 전장이다. 아직 시간이 남았음을 다행스러워한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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