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월드컵과 카리스마의 몰락...
카리스마란 신뢰다. 정확히 보상에 대한 신뢰다. 이 사람을 따르는 것이 궁극적으로 자기에게 이익이 되겠다. 물질적 욕망이든, 아니면 다른 자존감이든, 그를 통해 충족될 자신의 욕구를 기대한다. 그리고 대부분 그러한 신뢰는 개인 대 개인으로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중적인 정치인이더라도 마찬가지다. 기대는 개인 대 개인이다. 그분이 다 해주실 거야. 그분만 당선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야. 자기를 향한 직접적인 보상을 기대하는 심리다. 그로 인해 자기에게 직접적으로 이익이 돌아올 것이다. 그래서 카리스마를 다른 말로 보스라 정의할 수 있다. 보스는 사적 관계에서의 우두머리다.
국가대표 감독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올림픽대표시절 인연을 맺은 선수들에게 보스다. 그들의 신뢰에 보답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대표 감독이라는 책임을 우선한다. 아마 선수시절에도 그런 식으로 다른 선수들로부터 신뢰를 한 몸에 모았을 것이다. 선수시절에는 통했지만 이것은 국가대항전이다.
물론 다른 선택도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16강에 진출하고 8강에 진출해서 명감독으로 이름을 날린 다음 자신과 함께했던 선수들의 명예와 자존감도 함께 끌어올리는 것이다. 벤치에 앉았더라도 함께 월드컵에 참가했다는 만족감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선수시절에 갇혀 있었고 보스의 족쇄를 스스로 풀려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빠진 것만으로 이렇게 경기력에 차이가 난다. 가장 애착을 가지고 고집스럽게 중용하던 두 사람의 부재가 경기력을 오히려 끌어올리고 있었다. 논란이 있었던 출전선수의 대안으로 K리그에는 훌륭한 가능성을 지닌 선수들이 적잖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것을 무시한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공적 관계와 사적관계를 혼동했다.카리스마의 개념에 대해서도 전혀 오해하고 있었다. 사적인 관계와 만족에 집착했고 그것은 결국 모두에게 독이 되고 말았다. 그런 감독에게 대표팀을 맡긴 섣부른 결정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터다. 검증이 충분치 않았다. 성급했고 조급했다.
열심히 한 건 인정한다. 그리고 선수들이 열심히 한 만큼 열심히 응원하지 않은 사실도 인정한다. 그래서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잘했다.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다만 한 사람만을 비판한다. 모두의 비판에도 자기의 고집만을 밀고 나갔던 한 사람. 사실상 모든 책임을 지워야 할 사람이다. 한심하다. 한숨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