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와 대중음악의 발전...
사실 90년대 이전 이른바 명곡이라 일컬어지는 노래를 지금 다시 들어보면 영 아니다 싶은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멜로디나 가사는 당연히 명곡이라 부를 만 하니까 그대로 인정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사운드는... 더구나 녹음상태까지.
하기는 미국과 유럽이 그나마 나았던 것은 그들에게는 연주곡을 즐기는 문화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60년대 전까지 그들 역시 그렇게 사운드가 충실한 편은 아니었다. 그들 역시 대중음악이란 노래였고, 가수의 목소리와 가사만 알아들을 수 있으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으니까. 그러던 것이 밴드가 대중음악의 전면에 나서면서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밴드란 아무래도 사운드다. 각 파트의 연주가 또렷하게, 그러면서도 조화를 이루며 들릴 때 비로소 밴드음악을 들었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보컬 하나만, 혹은 악기 하나만, 그도 아니고 그저 뭉뚱그려서. 그러고 보면 80년대말, 90년대 초반 열악한 환경에서 녹음된 밴드들의 음반을 듣고 있으면 눈물이 앞을 가리려 한다. 밴드의 음악을 최소한의 손실로 최대한 대중에 들려주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당시의 밴드음악인들, 혹은 프로듀서들은 엔지니어를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떻게 하면 라이브의 그것에 최대한 근접한 소리를 대중들에 들려줄 수 있는가.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정작 사운드의 기술적 발전을 촉발한 것이 넥스트의 리더였던 신해철이었다. 그의 사운드에 대한 집요함은 거의 전설적일 정도다.
녹음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반주에 쓰이는 각각의 악기와 연주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게 되었다. 밴드와 경쟁하듯 다른 장르에서도 사운드의 질 또한 향상되고 있었다. 한국 대중음악의 80년대와 90년대가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지점일 것이다. 80년대 말 밴드의 융성기는 많은 예비음악인들을 밴드로 흡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밴드를 경험한 음악인들으 다시 밴드의 몰락과 함께 대중음악으로 돌려놓고 있었다. 물론 그들 이전에도 조용필과 윤수일, 김창훈, 신중현 등의 밴드를 경험한 음악인들이 사운드의 발전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것이 대중음악 전반으로 확산된 것이 90년대였던 것 뿐이다. 서태지도 큰 역할을 했다. 한국대중음악은 비약적인 성장과 발전을 보여주고 있었다. 90년대의 한국대중음악의 르네상스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래서 80년대 음악과 90년대 음악은 그냥 듣기만 해도 거의 구분이 된다 해도 좋을 정도로 그 차이가 크다. 사운드의 질과 양의 차이다. 멜로디와 가사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다. 가수와 연주자의 실력 역시 이전과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90년대 한국대중음악의 전성기를 가져왔다.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한국음악을 듣지 않은 이유로 사운드의 빈약함을 드는 이들이 많았다. 당시 일본의 대중음악에 이끌리던 사람들 역시 차원이 다른 녹음기술과 사운드에 매료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말하자면 이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한국 대중음악은 해외의 대중음악들과 경쟁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었다. 지금의 한류란 바로 그러한 발전에 빚을 지고 있다. 연주자들은 정작 소외되어 있지만.
많은 밴드음악인들이 자신의 음반을 스스로 프로듀스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연주자들이 많았다. 자기의 연주는 물론 다른 파트의 연주 또한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비로소 밴드음악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 기술적인 부분까지 음악인 자신이 해결하는 경우가 또한 적지 않았다. 음악에 대한 이해가 남달랐다. 새로운 세대의 출현이었다. 유럽이나, 미국이나, 그리고 한국에서나. 한국 대중음악은 일본을 따라가는 경향이 강했다. 물론 지금은 굳이 밴드의 영향 없이도 발전한 사운드의 세례를 입고 음악에 대한 이해를 키운 음악인들이 적지 않다. 다만 그 시작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것 뿐이다.
아쉽다면 사운드의 발달과 별개로 연주자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한국이 밴드음악의 불모지라 일컬어지는 이유일 것이다. 밴드의 중심은 연주자인데 연주자 자신이 소외되어 있다. 연주자가 대중의 인정을 받으려면 노래도 함께 부르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튼 문득 80년대의 히트곡을 주워듣다가. 녹음기술도 기술이려니와 왜 이리 사운드가 휑한가. 그래도 좋다 했다. 노래만 들리면 되니까. 가수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으면 충분하니까. 그럼에도 사운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음악인들의 고집이 지금에 이어졌다. 새삼 그 시간을 확인한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