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사랑이야 - 장재열과 화장실, 안전한 숨을 곳을 찾아
이쯤 되면 거의 확실할 것이다. 장재열(조인성 분)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한강우(디오 분)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한 것인지, 보이지 않은 것인지. 더구나 하필 장재열의 어린 시절과 너무 닮아 있다. 미련이 망령이 된다. 이루지 못한 바람이 실체를 가질 때 그것을 망령이라 부른다. 그때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고 들려주고 싶었던 모든 것들이 또다른 자신을 만든다.
어쩌면 지금의 자신이란 스스로가 만든 또다른 화장실인지도 모른다. 의붓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숨어들었던 재래식 화장실 분뇨통처럼 자신만의 화장실을 만들어 그 안에 숨은 채 세상과 단절한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다. 사람과의 관계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을 모른다. 선수라기에는 아무리 관심없는 상대라 할지라도 이성인데 듣기 좋으라고 말을 꾸미는 최소한의 스킬조차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때 그 순간! 지금 이 순간 말고."
설렌다 고백해 놓고서 갑자기 이리 태도를 바꾸면 그야말로 싸우자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이성을 상대로 제발 화내 달라고 간절히 비는 말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유독 지해수(공효진 분)에게만 서툰 것일까? 지나치게 착하다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 주위에서 부탁하는 것을 단호히 거절하지 못한다. 연인과 오랜 친구의 배신에도 너무 쉽게 용서하고 만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지 모른다. 장재열 자신이 필사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또다른 자신이 지금 그의 안에 숨겨져 있다. 그 숨겨진 자신이 어떤 계기로 모습을 드러낸다.
지해수가 윤쳘과 혜진부부를 통해 자신이 가진 문제의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보편적인 가치와 규범에 도전하는 잔혹한 복수극은 자신을 위한 변명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갑작스런 발작으로 스스로 물에 뛰어든 혜진을 구하고 사람을 살린 것에 환호한 것은 자신을 위한 속죄였을 것이다. 자신은 잘못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자신의 죄가 아니었다. 이율배반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죄를 어떻게든 씻고자 한다. 자신을 칭찬하고 상줌으로써. 하지만 여전히 자신은 깊은 곳에 들키지 않게 꼭꼭 숨어 있다.
아무도 그를 믿어주지 않았다. 누구도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마저 자신을 외면했다. 그래도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 믿었던 어머니마저 자신이 아닌 동생의 편을 들고 말았다. 장재범(양익준 분)이 진정 분노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이 장재열의 죄를 대신 뒤집어썼다는 사실이 아니었을 것이다. 장재범의 것이었어야 할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마저 장재열이 모두 가져가 버렸다. 아벨을 질투하여 죽였던 카인처럼. 모두가 불신하고 외면하는 자신과 달리 동생인 장재열은 모두의 믿음과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그를 죽이려 한다. 그러면 혹시 동생은, 어머니는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을까? 단지 들어주고 믿어주는 것만으로 장재범은 너무 쉽게 조동진(성동일 분)에게 마음을 열고 만다.
"고통과 원망과 아픔과 슬픔과 절망과 불행도 주겠지. 그리고 그것들을 이겨낼 힘도 더불어 주겠지."
사랑에 대한 장재열의 이 대사는 또한 그의 어머니에 대한 그의 숨겨진 속마음일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그에게 구원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품은 그가 마음놓고 쉴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다. 남성에게 이성이란 어머니의 대신이다. 여성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하필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혜진의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은 남편인 윤철이었다. 장재열은 지해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인정받고 싶은 것일까? 그녀만은 자신을 이해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앞이 안보이거나, 귀가 안들리거나, 말을 못하거나, 혹은 팔다리가 아예 없거나, 차라리 동정한다. 차라리 위로부터 한다. 물론 혐오나 경멸의 감정부터 내보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위선에 불과할지라도 상대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려 많은 노력들을 한다. 그에 비하면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시각은 어떠한가. 남들처럼 평범하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려 한다. 남들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지해수와 장재열처럼. 그들 역시 불편없이 세상속에 녹아들고 있다.
자기의 팔인데도 그것이 끔찍히 싫어 스스로 잘라낸 환자가 있었다. 같은 시간 장재열은 한강우와 함께 병원을 찾고 있었다. 어쩌면 어떤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자기의 기억에서 도려내고 싶은 자신의 일부였을 것이다. 마치 자기가 아닌 것처럼. 자기의 것이 아닌 것처럼. 남의 일처럼. 전혀 남인 것처럼. 그렇다면 지금 그가 자기라 믿고 있는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의 곁에 있는 그는 - 혹은 그들은 또한 어떤 의미일까? 화장실에서 잠든다. 악몽을 꾼다. 지해수와 함께 자궁에서 키스를 나눈다. 부활인 것일까? 태어남일 것이다.
막 세상에 나온 아이들 같다. 초등학생 아이마냥 서툰 질투를 보여주는 지해수나, 화려한 여성편력과는 달리 지해수 앞에서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반복하는 장재열이나, 박수광(이광수 분) 역시 그만큼 세상이 낯설 것이다. 전과자라는 말에 애써 구한 직장을 그만두려는 어느 소년범출신과 같이. 사나운 것은 겁먹었다는 뜻이다. 그들을 위한 이야기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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