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말고 결혼 - 낯섦이 어색한, 비로소 한 발 내딛다
낯섦이 어색하다. 그런데 어쩐지 흐뭇하다. 그런 자신을 상상조차 한 적 없었다.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머리채를 잡고서 바닥을 뒹굴며 싸우다니. 하지만 통쾌하다. 자기 아래 깔려 엉망이 된 상대를 떠올리는 순간 절로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런 순간을 기다려왔었다.
가족이 한 집에 있다. 서로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 살고 있었다. 서로 다른 일상 속에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그런데 같은 시간 같은 집에서 비록 방은 따로지만 같이 잠들려 한다. 같은 상에서 아침을 먹고 사위라고 일부러 공기태(연우진 분)의 반찬까지 챙긴다. 흐뭇한데 불편하다. 어쩌면 새로 맞춘 안경과 같은 것일까? 더 맑고 더 또렷한데 낯설어서 불편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들이 그동안 진심으로 바라왔던 것일 게다. 단지 누르고 있었을 뿐이다. 현실을 핑계삼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들에 책임을 돌리며. 가질 수 없기에 내 것이 아니라 생각해 왔었다. 내 것이 아니기에 감히 탐내서도 안된다 여겼었다. 욕심이 생겼다. 주장미(한그루 분)를 탐내고 공기태에게 진심이 된다. 행복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너무 오랫동안 그것을 잊고 있었다. 역시 인간은 이기보다는 이타가 더 쉬운 모양이다.
자기를 위해서는 억눌러왔던 감정이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는 거침없이 터져나오고 만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애써 모른 척 외면해왔던 감정들이 다른 누군가를 위해 봇물터지듯 쏟아진다. 공기태의 어머니 신봉향(김해숙 분)이 남편의 애인과 머리채를 붙잡고 싸운 이유도, 주장미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누군가를 위해서였다. 자기를 위해 화내주는 누군가가 있다.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 상처입는 누군가가 있다. 핑계다. 핑계가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 솔직하게 만들고 진실로 이끈다.
마지막 함정이다. 할머니(김영옥 분)는 그냥 넘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도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다면 나이를 헛먹었다 할 것이다. 진심으로 서로를 위하고 있다. 진심으로 서로를 염려하고 있다. 단지 자신들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들을 주저케 만드는 이유다. 거짓으로 시작된 관계가 자신을, 그리고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든다. 그 거짓이 밝혀졌을 때 마지막 위기가 찾아온다. 비로소 진심으로 주장미를 돌아보게 된 신봉향이 한여름(정진운 분)과 서로 끌어안고 있는 주장미를 본다. 어머니의 마지막 희망이 부서진다. 하필 공기태가 주장미를 위한 프로포즈를 준비하고, 주장미가 한여름에게 작별을 고하던 그 순간에.
버리지 못했다. 자신의 과거를. 자신의 현재를. 자신의 기억과 감정들을. 상처와 아픔들을. 거짓으로 시작된 관계마저. 한여름과 사랑에 빠진 이유다. 한여름 또한 그녀가 풀어야 할 족쇄다. 아무것도 없었다. 가지지 않았다. 가지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으로 가지고 싶은 것이 생겼다. 그 낯섦에 혼란스러워하고 그런 어색함이 뿌듯하기도 하다. 비로소 버리고, 비로소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해피엔드일까?
그래도 부부다. 같은 침대에서 한이불을 덮고 잠들려는 순간 그들은 다시 부부로 돌아온다. 사랑보다 깊은 건 정이라 했던가. 미운 정도 정이다. 애써 끌어안으려는 남편의 손길을 아내는 거부하지 않는다. 차라리 싸움조차 없었기에 매몰차게 쏘아붙이는 아내의 모습이 어색하다. 더이상 일방적으로 참고만 살지는 않겠다. 침묵하며 살지만은 않겠다. 잊고 있던 자신을 일깨운다. 신봉향의 변화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그 전에 주장미와 관련한 오해부터 풀어야 할 것이다. 거의 다 왔다. 이제는 정말 결혼만 남았다.
설정이나 연기가 디테일하다. 감정이 살아있는 것 같다. 연기도 연기지만 대본과 연출이 정말 깨알같이 인물들의 감정을 살려낸다. 어딘가 일그러진 것 같으면서도 바르다. 허투루 보여지는 것이 없다. 남현희(윤소희 분)의 임신도 버려야 할 것과 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숙제를 보여주고 있었다. 버릴 수 없으니 버려야 한다. 주장미와 공기태를 위한 이야기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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