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이순신과 명량 - 리얼과 리얼리티
까칠부
2014. 8. 11. 06:43
한 척의 배로 수십 척의 배를 몇 시간이나 혼자서 막아낸다.
사실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사실이다.
13척의 배만으로 130척의 배를 무찔렀다.
역시 사실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사실이다.
전투 도중 일본군이 대장선에 좌선에 올라 백병전이 벌어졌다.
사실적이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한 척의 배로 수십척의 배를,
13척의 배로 130척의 배를,
그래도 바다에서 싸우는데 선상전투가 있어야...
그게 리얼리티.
그러나 그런 싸움이 실제 있었다는 것이 리얼.
감독의 선택이다. 때로 현실은 허구보다 사실적이지 못하다.
이를테면 아서 클라크의 소설 스페이스 오딧세이에는 소련이 그래도 등장한다.
소련은 아다시피 1990년대가 시작되며 해체되고 있었다.
아서 클라크가 자신의 소설에서 소련이 사라진 근미래를 그렸다면 어땠을까?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에서도 휴대용 컴퓨터 시스템이 나온다.
노트북이 아니다. 당시 한창 유행하던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소형 데스크탑이다.
얼마전 읽은 '노인의 전쟁'에서는 PDA가 등장한다.
사람의 사고는 현재에 기반한다.
사람의 인지나 인식 역시 현재를 전제한다.
리얼과 리얼리티의 관계다.
리얼이 반드시 리얼리티인 것은 아니고,
리얼리티가 곧 리얼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일 테지만,
예전에 썼을까?
사람들이 많이 착각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상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