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 마침내 금기를 깬 지해수, 그러나 멀다

까칠부 2014. 8. 15. 07:22

소설이 잘 쓰이지 않는다는 말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소설이란 그의 억눌린 자아였다. 유일한 소통의 창구였다. 비명이고 아우성이었다.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을 털어놓는다. 아무도 듣지 않는 말들을 모두에게 들려준다. 속에 있는 말들을 다 토해냈거나. 아니면 더 이상 그같은 말들이 필요없게 되었거나. 장재열(조인성 분)의 또다른 자신인 한강우(디오 분)가 무언가 불길한 앞날을 암시하고 있다. 떨리는 팔과 기침, 그리고 지해수(공효진 분)가 말한 루게릭병.


가난해도 행복하다는 말처럼 공허한 것이 어디 있을까. 행복할 수 없기에 가난한 것이다. 가난한데도 행복할 수 있다면 이미 가난하지 않은 것이다. 몸과 마음이 지치면 여유마저 사라진다.정신은 마모되고 양심마저 마비되어 버린다. 그깟 밥따위. 밥이야 얼마든지 다시 지으면 된다. 하지만 그런 당연한 생각조차 당장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어째서 어린 장재범은 집으로 돌아오며 손에 석유를 들고 있었는가. 한참 시간이 지나 조금 여유가 생기니 그 이유가 어렴풋 떠오르려 한다. 푸념처럼 가해지는 폭력과 그것을 견디며 쏟아내는 폭언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상처주고 스스로 상처입는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위로하고 변명하며 어느새 스스로 일그러져간다. 자식들의 자신을 향한 원망과 증오를 어머니(차화연 분) 자신도 이미 알고 있다.


어쩌면 한강우란 장재열이 진심을 담아 마지막으로 쓰고 있는 작품일 것이다. 글이 아닌 실제로써 쓰여지는 소설이다. 실재하는 현실처럼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고 느껴진다. 심지어 대화까지 나눈다. 장재열에게 그것은 이미 실존하는 실제의 인물이고 사건들일 것이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들일 것이다. 그가 진정으로 들려주고 싶었던 말들이었을 것이다. 지해수가 그것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어린아이처럼 떼를 쓴다. 마치 지금이 아니면 안되는 것처럼. 한강우의 상황도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무엇일까? 작가의 인터뷰가 오히려 혼란을 더한다. 지해수를 향한 장재열의 집착은 자못 절박하기까지 하다.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그의 마지막 작품을 위해서였을까? 자신이 아닌 누구도 읽을 수 없고,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을 마지막을 위해서.


불안이 집착케 한다. 불신이 끊임없이 확인하도록 만든다. 지해수에게 사랑이란 부정한 것이다. 욕망도 쾌락도 부정한 것이다. 귀찮도록 장재열에게 기대며 사랑을 보채는 지해수야 말로 그녀 자신의 본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끊임없이 장재열과 자신이 이전에 사귄 상대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시험하려 하는 것은 그런 자신들에 대한 억압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여해을 위해서 그렇게 많은 비용을 들여서는 안된다. 이처럼 호화스럽고, 이와 같이 사치스럽고, 그래서 편안하고 즐겁고, 수상스키를 즐기는 장재열조차 지해수는 용납하지 못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 굳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꺼낸다.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어쩌면 어머니(김미경 분)가 그녀에게 남긴 진짜 상처였을 것이다. 믿을 수 없다는 것. 섹스가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 섹스를 믿을 수 없다. 사람을 믿을 수 없다. 무엇보다 지해수 자신을 믿을 수 없다. 섹스에 대한 거부감을 혼자가 된 불안과 두려움으로 극복한다. 그것은 사랑도 욕망도 아닌 모호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어두운 바다로 장재열을 찾아나서는 지해수의 모습은 로맨틱하다기보다 애처롭고 스산하다.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과연 지해수는 장재열을 사랑하기는 하는 것일까? 그럼에도 그녀는 장재열을 찾아가 스스로 그동안 닫아두고 있던 자신의 문을 열어젖힌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일까?


사랑은 병이었을까? 이미 오래전에 이혼한 두 사람이다. 한 사람은 이미 새로운 사랑을 찾아 가정을 꾸리고 자식까지 두고 있다. 그런데 서로를 필요로 한다. 정상일까? 괜찮아, 사랑이야! 하지만 사랑이라서 괜찮을까? 그로 인해 혼란스러워하고, 그로 인해 고민하고 갈등하고, 그리고 결국 부딪히고 부서진다. 그럼에도 놓치 못한다. 조동민(성동일 분)과 이영진(진경 분)의 관계는 역설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사랑을 할까? 그래도 사랑을 한다. 정상에서 벗어난 사랑을.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사랑을. 박수광(이광수 분)의 사랑도 끝나려 한다.


비로소 지해수도 한 꺼풀 벗었다. 장재열을 만나기 전, 장재열을 만나고 난 뒤, 장재열을 사랑하게 된 뒤, 이제는 장재열과 사랑을 나누고 난 뒤. 지해수 자신도 알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들이 그렇게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듯한 장재열과도 그래서 닮아 있다. 거친 파열음이 극단을 향해 치닫는다. 그들이 감추고 있는 진실과 그들을 옭죄고 있는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답을 찾아서. 쉽지 않다.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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