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고양이 울음소리와 조용한 사회...

까칠부 2014. 8. 15. 11:03

고양이가 살면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건 당연하다. 매미가 살면 매미가 울고, 귀뚜라미가 살면 귀뚜라미가 울고, 참새가 있으면 참새가 운다. 도로위를 자동차가 달리고, 좁은 골목길에서 자전거가 때릉거리고, 어디선가는 아이들 뛰노는 소리가 왁자하게 들린다.

 

하지만 싫다. 조용한 것이 좋다. 그런 정도를 넘어 시끄럽게 만드는 저것들을 모두 없애버려야겠다. 아무것도 없이. 어떤 소리도 들리지 못하도록. 고양이가 하나의 생명으로서 자신과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오로지 자기만이 존재한다. 자기를 위해서만 모든 것은 존재해야 한다. 그래서 자기를 거슬리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거부한다.

 

닮은 것 같지 않은가. 어차피 시끄러운 것이 세상이다. 싸우고 다투고 화해하면서 그렇게 굴러가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원리다. 하지만 시끄럽다. 조용했으면 좋겠다. 특히 내가 듣고자 하는 소리만 들리며. 그것을 흔히 파시즘이라 부른다. 인위적으로 조용할 것을 강요한다. 시끄러운 것은 단죄된다.

 

세월호 피로감이라 말한다. 시끄러운 게 싫은 것이다. 조용한 게 좋은 것이다. 죽은 사람이야 어떻든. 그 유족들 마음이야 어떻든. 어찌되었거나 시끄러우니까 잘못한 것이다. 어째서 시끄러운 것인지 전혀 알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피로하다. 항상 그래왔다. 어째서 한국인을 냄비라 하는가. 달궈지는 것을 싫어하니까.

 

그냥 동네에 사람과 함께 고양이도 산다고 여기면 그만이다. 매미도 살고, 귀뚜라미도 살고, 참새도 살고, 까치도 산다. 그로 인한 불편이 너무 심하다 싶으면 그때는 그에 알맞는 조치를 함께 논의해서 취하면 된다. 어째서 한국사회에서는 고양이들이 그리 사람을 무서워하는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깊은 산속에 혼자서 누워 있으면 세상이 그리 시끄러울 수 없다. 아무도없는 바닷가에서도 혼자 가만히 앉아 있으려면 온갖 소리가 고독을 흔들어 깨운다. 낭만이라 부른다. 도시는 왜 불가능할까? 집에서는 왜 그것이 안되는 것일까? 조금 더 자신의 세계를 넓혀보면 어떨까? 그냥 드는 생각이다. 어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