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 밝혀지는 진실, 남겨두고 온 시간들에 대해

까칠부 2014. 8. 28. 07:11

장재열(조인성 분)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차화연 분)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어쩌면 장재범(양익준 분)이 아닌 장재열을 선택한 이유도 장재범보다는 장재열이 더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여긴 때문은 아니었을까.


실제 그런 경우가 드물지 않다. 삼종지도라 했었다. 여성은 하나의 독립된 인격이 아니었다. 아버지든, 남편이든, 자식이든, 반드시 남성인 보호자가 곁에 있어야 했다. 보호자가 없는 여성은 극단적인 경우 아무라도 나서서 보호자임을 자처할 수 있었다. 여성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지금도 여성이 혼자의 힘만으로 살아가기에는 세상이 너무 힘들고 위험하다. 거의 본능처럼 스스로 자신을 지켜줄 보호자를 찾아나서게 된다.


전통사회에서 많은 어머니들이 유독 아들에 집착했던 이유였다. 특히 집안을 물려받을 장남은 남편의 뒤를 이어 자신을 지키고 보살펴 줄 주인이었다. 그렇게 여성은 사회의 구조속에 미성숙한 아이처럼 남성에 의지하도록 길들여졌다. 어쩌면 장재열의 어머니가 술과 도박에 빠져 살던 의붓아버지를 만나게 된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을 게다. 일도 안하고 벌어오는 돈이나 탕진하며 폭력까지 휘두르는 남편이지만, 그런 남편이라도 없으면 아이까지 둘이나 데리고 거친 세상을 혼자서 헤쳐나가야 한다. 그것이 너무 두렵고 무섭다.


그래서 사실 장재열 역시 당시 의붓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된 채 방치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의붓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장재열을 보호하기 위한 시도 역시 전혀 없다시피 했다. 장재범 역시 그래서 혼자서 자신을 지켜야만 했었다. 차라리 의붓아버지에게 일방적으로 맞고만 있는 장재열에게 화를 내고 마는 이유였다. 그 나약하고 무력한 모습이 답답하고 한심하다. 그러나 그 분노를 의붓아버지에게 돌리지는 못한다. 장재범과 장재열의 관계가 어긋난 이유였다. 장재범은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진심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고, 어머니는 의붓아버지가 아닌 장재범으로부터 장재열을 지킴으로써 자신의 모성을 만족시키려 했었다. 누군가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없음 만큼 약했기 때문이었다.


장재열이 의붓아버지를 찔렀다. 장재범이 의붓아버지의 피가 묻은 과도를 들고 있었다. 의붓아버지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공포에서 두려움이 사라지면 그것은 증오로 바뀌고 만다. 극복할 수 있는 공포는 더이상 공포가 아니다. 폭력은 장재범과 장재열은 물론 어머니에게도 가해졌다. 폭력으로부터 자신의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모성은 그 순간 폭발하고 만다. 그리고 선택의 순간이 온다. 다행스럽게도 장재범이 모든 죄를 대신 쓰려 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도 장재범이 아닌 장재열이 필요했다. 다만 과연 당시 장재범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그러나 어찌되었거나 마지막 순간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과거 의붓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장재범이 진정으로 증오하고 원망하는 대상은 장재열이 아닌 어머니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으니까. 그래서는 안되니까.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더 어머니에게 상처가 될 테니까. 결과적으로 장재열이 자기로부터 어머니를 빼앗아간 것이기도 하다. 카인의 질투처럼 부모의 사랑을 빼앗긴 형제의 분노가 다른 형제를 노린다. 그는 단지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싶었던 것 뿐이다. 어머니로부터 선택받고 싶었던 것 뿐이다. 장재열만 없어지면 어머니는 자신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재열은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장재열 역시 선택해야 했다. 어머니와 형, 자신을 지켜줄 보호자와 그리고 진실. 그렇다고 자기가 희생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를 선택했고 형을 배반했다. 보상처럼 어머니에게 모든 노력을 다한다. 한 편으로 어머니를 원망하고 증오한다. 형을 버려서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그같은 선택을 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로 인해 자신이 형을 버려야만 했었다. 한강우는 그런 장재열의 무의식이다. 어머니를 지켜야 했던.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던. 자신에게 벌을 주려 한다.


자신이 장재열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와 결혼하고 싶어한다는 사실 역시 인정하고 싶지 않다. 수줍음이라기에는 강박에 가깝다. 일부러 장재열이 하고자 하는 반대로만 행동하려 한다. 여전히 지해수(공효진 분)의 불안장애는 치유되지 않았다. 사랑을 믿지 않는다. 사랑을 불안해한다. 확신을 가지고 싶어 한다. 끊임없이 장재열을 시험하고 요구한다. 장재열의 말에 답이 있다. 사랑에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사랑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것만으로 만족하기에는 사랑 자체를 믿지 못한다.


조금씩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장재범도 다 알지는 못했다. 누구도 알지 못했던 장재범의 진실들마저 사실은 터무니없는 오해에 불과했다. 그 모든 중심에는 다시 없을 좋은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들의 어머니가 있다. 잊고 있었든 잊은 척 하고 있었든 그녀는 이제 자신의 진실과 마주하지 않으면 안된다. 장재범이 장재열을 찾아가려 한다. 출소일마저 속이고 먼저 장재열과 만나고자 한다. 진실은 잔인할 것이다. 그녀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녀로부터 시작된 일들이다. 그들이 고통받는다.


놓아두고 온 것들이 시간마저 멈춰세운다. 나아가지 못한 시간들이 자신을 여전히 그 시간속에 묶어 놓는다. 아내를 위해 화내야 했고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후회와 미련 속에 시간만을 견뎌왔을 뿐이다. 앞으로 계속 견디려 했을 뿐이었다. 거짓이었다. 기만이었다. 그들의 시간은 놓아두고 온 과거의 어느 곳에 있었다. 자신들도 그곳에 남겨져 있었다.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처럼.


결국 과거의 시간들이다. 지난 시간의 기억들이다. 그곳에 남겨놓은 조각들이다. 그들이 잃어버린 것들이다. 그 조각들을 찾아내 다시 하나가 되었을 때 상처는 치유된다. 영영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비로소 앞으로 한 발을 내딛는다. 그를 위한 과정이다.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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