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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선조 vs 왕 이순신...

까칠부 2014. 9. 10. 14:29

가정을 해보자.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왕이고 선조가 전라좌수사였다.

 

아니다. 선조였다면 전라좌수사에 머물고 있지 않았다. 도원수 김명원의 자리가 선조의 자리였는지 모른다.

 

바로 그것이 정치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왕으로서 선조가 뛰어난 점이다.

 

솔직하게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그래서 공신을 우대하고, 공이 많은 세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 전에 모두가 말하는 것처럼 한양에서 목숨을 걸고 진격하는 일본군에 맞서려 하고 있다.

 

과연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왕이 져야 할 가장 큰 책임은 다름아닌 왕위를 지키는 것이다.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서 쫓겨남으로써 조선수군이 어떤 처지로 내몰려 있었던가.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면.

 

그를 위해 꼬투리 잡힐 일도 하지 않고, 설사 그런 일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감추고,

 

그를 위해서라도 조정에 자기 세력을 만들어둔다.

 

오해할까 말하지만 류성룡은 이순신의 지지자가 아니었다. 선조가 이순신을 죽이려 할 때 스스로 이순신을 천거한 죄를 뒤집어써가며 이순신과의 관계에 선을 그은 것이 바로 류성룡이었다.

 

그래서 선조는 그토록 양위소동을 벌인 것이다. 세자를 의심하고, 공신들을 견제하고, 대신들을 시험하고, 그럼으로써 임진왜란이 끝나는 순간까지 조선의 명령체계는 일원화될 수 있었다. 아니 임진왜란이 끝나고서도 신속하게 전후복구에 들어설 수 있었다.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책임을 지고, 나아가 공이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들을 우대하고, 그러다 자칫 또다른 권력이 성장하게 되면 조정은 혼란에 빠진다. 당장 최전선에서 누구의 명령을 우선할 것인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지 모른다. 전쟁이 끝나고도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를 가지고 혼란이 벌어지고, 자칫 내전이라도 벌어지면 전후복구는 물건너가는 것이다.

 

그래서 선조의 잘못으로 광해군이 아닌 영창대군을 세자로 삼으려 했던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광해군의 왕으로서의 권위가 실추되고, 결국 광해군 자신이 부족한 정통성을 회복하기 위해 무리하게 되는 빌미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차피 적장자인 영창대군이 존재하는 한 광해군의 정통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것을 선조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광해군이 왕으로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영창대군을 죽여야 했다.

 

인간적으로 훌륭한 것과 왕으로서 훌륭한 것은 전혀 별개인 것이다. 군왕은 무치라 한다. 부끄러움이 없다. 부끄러울 일도 부끄러운 일도 없다.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천거해서 올린 것은 선조 자신이었건만 류성룡이 그 책임을 뒤집어쓴다. 그것이 왕이라는 존재이므로.

 

광해군을 키워주다가 광해군에게 권력의 욕심이 생기고, 공신들을 우대하다가 권신들이 새로운 권력이 되어 왕권을 위협하고, 평화시라면 상관없지만 전란도중이라면 그것은 크나큰 위협이 된다. 이순신을 죽이려 한 것 때문에 - 더구나 그 결과가 좋지 않아 그런 위기대처능력까지 폄하당하고 있지만.

 

이순신은 이순신이기에 나라를 지켰다. 전라좌수사였기에. 삼도수군통제사였기에. 선조는 역시 선조였기에 난세의 와중에도 조정을 굳건히 하고 왕권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켜냈다. 광해군이 아닌 선조에 의해 이미 대부분의 전후복구도 시작되고 있었다. 이순신만 보아서는 당시의 역사가 보이지 않는다.

 

참고로 이건 전적으로 조선이라고 하는 전제왕조의 경우다. 전제왕조에서 왕의 교체는 혁명이라 불리울 정도로 큰 사건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의 교체는 당연한 일상이다. 경우가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같게 보는 사람들이 있으니 또 문제.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려 한다.

 

그냥. 이순신이 왕이 되었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 이성계의 말로를 보면 안다. 정치감각 없는 무장출신의 왕이란 말로가 그리 허망하다. 왕에게 필요한 것은 군사적 재능이 아닌 정치적 역량이다. 이순신에게는 출중한 군사적 재능과 도덕적인 완고함 만큼 정치적 역량이 부족했었다.

 

이순신이 못났다는 게 아니다. 역할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순신은 나라를 지켰다.

 

그냥 생각났다. 이순신 이야기가 나오길래.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