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사랑이야 - 괜찮니, 나?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조차 어딘가 아프거나 불편한 곳이 있어도 드러내지 않으려 필사적이다. 괜찮다. 아프지 않다. 혹시라도 다른 경쟁자나 포식자가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게 될까봐. 그로 인해 야생의 경쟁으로부터 도태되지는 않을까. 그것은 생존이다.
강해야 한다. 약해져서는 안된다. 살아남아야 한다. 뒤쳐지거나 버려지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억지로 버틴다. 억지로 견딘다. 그렇게 믿는다. 난 괜찮아. 난 아무렇지도 않아. 난 강하니까. 난 약하지 않으니까. 어쩌면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자신은 아직 어리다. 아직 충분히 자라지 않았고 따라서 약할 수밖에 없다. 맞는 것이 무섭다면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 도저히 견딜 수 없다면 도망쳐 숨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머니조차. 정작 어머니가 되어 자식을 지키지 못하고 겁먹고 숨은 모습을 자식에게 보이고야 말았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 역시 닫힌 공간에서는 잠들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묻게 된다. 자기가 약한 것을 솔직하게 인정한다고 뭐가 달라지는가? 자기가 어리고 약해서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매번 도망치고 숨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받아들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무엇이 있는가? 여전히 폭력은 반복되고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장재범(양익준 분)과 같이 폭력이 유전되는 경우도 나타나는 것이다. 약해서 맞는다. 어리기 때문에 맞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기 아닌 다른 사람도 어리고 약하다면 맞는 것이 당연하다. 강해져야 한다. 누구도 자기를 때리지 못하게 강해져야만 한다.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 장재범의 반복된 거짓말과 허세는 그런 영향일 것이다. 무죄인 것을 알면서도 굳이 살인전과를 강조한다. 그래서 뭐가 달라진다는 것인가?
결국 드라마 마지막회의 후반 장재범과 장재열(조인성 분),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차화연 분)와 박수광(이광수 분)의 부모들은 정신과의사의 도움을 받아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치료를 받는다.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공감하며 대안을 찾으려 노력한다. 혼자가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다. 함께 공감하고 도와줄 사람이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자기가 아직 어리고 약하다면 다른 더 크고 강한 누군가에게 기대면 된다. 원래는 부모가 그 역할을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부모 이외에도 다른 기댈 수 있는 사람을 찾아 그에게 부탁하면 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대상이 또다른 폭력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리 어리고 약해도, 스스로 전혀 강하지 못해도, 그러나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도록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몸이 아프고 병이 들었어도 굳이 숨거나 할 필요 없이 당당하게 드러냄으로써 치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준다. 사람 사는 세상이 야생의 정글은 아닐 테니까.
그래서 정신과 의사도 존재하는 것일 것이다. 그럼에도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을 것이기에. 차마 드러낼 수 없는 치명적인 아픔이나 상처가 있을 것이다. 인간은 결코 자기가 생각하는 것만큼 강하지 못하니까. 강해질 수 없으니까. 그냥 아무렇지 않게 정신과를 찾아가 솔직하게 털어놓고 도움을 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더 힘들어지기 전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그 짐을 덜어낼 수 있으면. 상처가 더 커지기 전에 약을 발라 덧나지 않도록 하는 것처럼.
그러나 감기걸려 집에서 좀 쉬려 해도 약한 정신력을 탓하는 강한 사회에서는 어쩌면 무리한 바람일 것이다. 박수광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먼저 자신이 견디고 이겨내는 것이 더 우선이다. 자신의 약함을 탓하게 된다. 상대가 강하지 못한 것을 비난하게 된다. 그래서 숨긴다. 그래서 감춘다. 아무렇지 않다. 난 아무렇지 않다. 그래 넌 아무렇지 않다. 억지로 강한 척. 당당한 척. 누군가 조금만 더 일찍 장재열에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줄 수 있었다면.
어쩌면 지해수(공효진 분)도 이영진(진경 분)또 그렇게 자신의 아픔을 치료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한다. 자기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못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자기가 저지른 잘못과 실수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억지로 부여잡고 버틸 필요 없다. 놓아버리고 그대로 자신을 맡긴다. 눈물은 그를 위한 가장 훌륭한 약이 되고 있을 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지난 과거와의 화해다. 내일로 나가기 위한 전제다.
마치 죽음 이후의 세계를 엿보는 듯 마무리의 전개가 매우 급하고 격하다. 1년이 아닌 영원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듯 너무나 이질적인 전개를 보이고 있다. 행복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은 알겠는데 갑작스럽게 중간과정이 생략된 느낌이다. 작가의 전작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는 차라리 죽음을 전제하는 것이 흐름상 옳았다. 지해수의 임신은 상당히 뜬금없었다. 통속적이지만 그만큼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납득해 본다. 그렇게 그들은 사랑하고 행복해졌다.
가장 힘든 일일 것이다. 자기가 자기를 용서한다는 것은. 타협하지 않고, 기만하지 않고, 오로지 솔직하게 진실한 자신과 대화하고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누구보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사랑해야 하는 것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다. 경계를 넘어선 느낌은 그래서였는지도. 의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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