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 - 조용한 막장, 마침내 자신의 모습을 보다!
뭔가 정신없다. 굴지의 게임회사를 배경으로 게임개발자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어느 순간 미국에서 온 한 아이의 부모를 찾아주는 이야기로 넘어가더니, 이제는 어느 시골에서 전원생활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주홍빈(이동욱 분)의 옛연인 김태희의 죽음을 전해듣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 길지 않았을까.
장면과 장면은 휙휙 빠르게 넘기면서도, 정작 하나의 장면에서는 쓸데없는 사족들이 많다. 좋게 말하면 디테일에 충실하다. 주홍빈과 손세동(신세경 분)이 시골장터에서 장을 보는 모습이 그렇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저것 좀 보라'며 달려가고 보는 손세동과 못마땅해하면서도 그런 손세동을 쫓는 이동욱의 모습을 따라가는 사이 시골장터의 풍격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속옷을 사는데도 단돈 천원이면 충분하다. 사야 할 것도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다. 과연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필자로서는 아직 판단하기가 어렵다.
말했듯 분명 사족이다. 물론 아주 필요없는 장면들은 아니다. 그러나 굳이 없어도 되는 장면과 내용들이 적지 않다. 대충 건너뛰어도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그러나 바로 그런 장면들을 통해 손세동의 밝고 당찬 성품을 보여준다. 꿋꿋한 생활력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만 같던 주홍빈의 의외의 허술한 모습도 보여준다. 그동안도 소소하게 몇 번 있기는 했었지만 그러나 전원이라는 낯선 환경으로 인해 그러한 그틀의 캐릭터가 보다 선명하게 극대화되어 보여진다. 당장 인적도 드문 어두운 시골의 밤길에 반딧불이에 놀라 주홍빈은 손세동을 끌어안고 있었다.
드라마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서사구조보다는 인물들의 캐릭터와 이미지의 묘사에 더 주력한다. 어머니가 닭을 잡으며 허공으로 흩뿌려진 깃털이 주홍빈과 창이 있는 곳까지 날아간 장면도 매우 장식적이다. 주홍빈이 손세동을 끌어안고 기대고 있을 때도 너무나도 티나는 CG가 반딧불이처럼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주홍빈의 몸에서 칼이 돋는다. 주홍빈의 기분상태에 따라 비가 내리고 번개가 친다. 주장원(김갑수 분)과 만나러 나온 윤여사(이미숙 분)의 고풍스러운 머리스타일은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작가와 감독에 의해 의도된 한 편의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보여지는 것이 바로 드라마가 추구하는 것이다.
조용조용히 막장이다. 하기는 굳이 목소리를 키울 필요도 없다. 몸에서 칼이 나온다. 비가 내리고 번개가 친다. 그런데도 주홍빈 목소리가 제일 크다. 가장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며 말하고 행동한다. 스치듯 말한다. 주홍빈의 아버지 주장원이 주홍빈의 옛연인이자 김창(전유근 분)의 어머니인 김태희를 폭력배들을 사주에 폭행케 했다. 어쩌면 김태희의 이른 죽음도 그와 관계가 있는 것인지 모른다. 윤여사는 성이 다른 주홍빈의 이복형의 생모였다. 주홍빈이 태어나기 전 주장원은 윤여사를 통해 자신의 성조차 줄 수 없는 첫아들을 얻었다. 그토록 주홍빈에게 극진하던 윤여사가 그 사실을 빌미로 주홍빈의 집을 요구하고 나선다.
아버지는 아들의 여자를 폭행하도록 사주하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증오하며, 아버지의 또다른 아들의 어머니는 아들의 집을 노리고 있다. 아버지의 또다른 아들이 돌아오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손세동은 밝고 씩씩하기만 하다. 주홍빈의 주위는 괴기로울 정도로 어둡고 일그러져 있는데 손세동의 주위만이 밝고 바르다. 오히려 솔직하게 진심을 털어놓지 못하는 주홍빈과 그의 주위사람들에 비해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고 속엣말을 남기지 않는다. 구원이다. 주홍빈이 손세동에게서 김태희의 냄새를 맡은 이유일 것이다. 김태희의 어머니가 손세동을 딸이라 착각하는 이유다. 연기로 자욱한 가운데서도 사람은 본능적으로 숨쉴 곳을 찾아내는 법이다. 그만큼 손세동은 당차고 꿋꿋해야 한다. 여리더라도 약하지는 않다.
주홍빈이 마침내 날카로운 칼이 돋아나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김태희의 죽음을 전해들은 그곳에서. 어디론가 멀리 자기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버렸다 믿었던 김태희가 이제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바로 그 자리에서. 괴물이 된다. 아니 괴물이 되어 있었다. 자신만 알지 못했다. 초능력자는 아니다. 초능력이란 현실에서 또한 장애이기도 할 것이다. 병은 치료해야 한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손세동이 보려 한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놀았을 때 손세동이 문을 열고 주홍빈을 보려 한다.
주홍빈을 대하는 손세동의 태도가 지나칠 정도로 산뜻하다. 이성을 대하는 최소한의 수줍음이나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한 편으로 몇 번 만나지 않은 사이에 이렇게까지 스스럼없다. 문을 사이에 두고 결코 남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주홍빈의 비밀과 마주한다. 주홍빈은 몇 번이나 손세동에게서 죽은 김태희를 겹쳐보고 있었다. 김창이 두 사람 사이에 매개 역할을 하고 있다. 변화는 운명처럼 찾아온다. 그것이 드라마다. 과연 다음 장면은 무엇일까? 손세동이 보게 될까? 아니면 주홍빈이 지키게 될까?
그다지 친절한 드라마는 아니다. 작가의 의도가 앞선다. 들려주기보다는 들으라 떠미는 느낌이다. 하지만 때로 드라마에 자신을 맞춰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보여주는대로 보고 느끼라는대로 느낀다. 색다른 드라마를 색다르게 즐기는 방법이다. 상당히 독특하다. 아직은 새롭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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