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 - 기승전사랑, 칼과 갑옷을 모두 벗다!
또 드라마 하나가 이렇게 지나간다. 차라리 기괴하고 이상할 때가 좋았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모르겠는데 그것이 오히려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멀쩡한 사람 몸에사 칼이 돋아나고, 초능력이 생기고, 그리고 그를 둘러싼 음모가 펼쳐지고. 게임도 만든다.
하지만 결국 사랑이었다. 기승전사랑. 기승전연애. 한순간에 초능력은 사라지고, 과거의 사랑 역시 정리해 버리고,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향해 올곧게 나아간다. 오해하고, 질투하고, 그래서 다투고, 그러면서 사랑은 깊어지고. 벌써 키스까지 한다. 손세동(신세경 분) 역시 주홍빈(이동욱 분)에게 아주 마음이 없지는 않다. 어쩌면 손세동의 감춰진 진심은 벌써부터 주홍빈을 향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일까?
'아이언맨'이라는 제목의 뜻을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 주장원(김갑수 분)이 아들 주홍빈에게 말하고 있었다. 자기가 바뀔 거라 생각지 마라. 자기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후회를 남기고서도 그것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인정하는 순간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은 철저히 부정당하고 말 것이다. 그토록 옳다고 여겼었고, 그래서 완고하게 지켜왔던 자신의 삶과 방식들이 철저히 부정되고 말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은 젊은이들의 특권이다.
과거에 얽매이고 있었다. 과거의 사랑에. 과거의 상처에. 과거의 증오에. 그래서 몸에서 칼도 돋아나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단단한 현실의 벽이 그로 하여금 초현실의 힘을 갈구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지금의 자신을 지키고 싶다. 하지만 죽은 김태희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잊고 보내주어야 한다는 김태희 어머니의 말은 그런 그의 굳은 결심에 균열을 일으키고 만다. 그것만이 이미 세상에 없는 김태희를 위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영원히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자신이 사랑한 사람이 바라는 것이었겠는가. 그것은 단지 살아있는 자신의 미련이고 집착에 불과한 것이었다.
비로소 처음으로 아들 창과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다. 그녀가 남기고 간 자신의 분신임에도 오로지 그녀를 찾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여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와 자신의 아이가 바로 앞에 있는데 정작 엄마인 그녀의 모습만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제대로 보려 하지 않았다.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몸에 돋아난 칼들처럼 감당하기 힘든 모든 상처와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애써 두른 강철의 갑옷이 도리어 누군가를 해치는 흉기로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손세동의 한 마디에 그 갑옷을 벗어던진다. 처음으로 벽을 허물고 진지하게 창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한다. 여전히 주홍빈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 주장원과 비교된다.
아마도 더 먼 시간을 돌아와야 했을 테지만. 더 먼 길을 이리저리 헤매며 힘겹게 도달해야 했을 결론이었을 테지만. 그래서 더 이상 초능력은 필요 없다. 더 이상 날카로운 칼도, 단다한 갑옷도 필요 없다. 말랑해진다. 대놓고 질투하고 떼까지 쓴다. 누가 보더라도 그것은 손세동더러 자신을 보아달라는 투정이다. 몰랐다기보다는 주홍빈을 믿지 않았다. 설마 주홍빈과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고는. 자기를 마음에 둘 것이라고는. 윤여사(이미숙 분)와 주장원과의 과거는 어쩌면 그들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 될 지 모른다. 손세동은 미묘하게 자기에 대해 가혹한 것이 있다.
이젠 별 의미가 없어졌지만 상당히 의미심장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새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물 너머로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비새는 천장은 그녀의 우울한 현실이다. 게임은 그녀의 꿈이다. 우울한 현실 너머의 꿈을 쫓는다. 손세동이 게임개발에 집착하는 이유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며, 그녀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꿈이었다. 이제는 주홍빈이 생겼다. 게임보다는 부자다. 여자의 자아실현은 잘난 남자와의 결혼에 있다. 아니기를 바라지만. 아직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사랑만 하기에는 너무 많다.
경영자의 마인드와 개발자의 마인드는 다르다. 아마 개발자 가운데서도 디자이너는 또 다른 사고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기능에 충실한다. 프로그램이 어떻고, 그래픽이 어떻고, 캐릭터나 게임으 스토리가 어떠하며, 음악은 또 어떻다. 하지만 정작 게임을 즐기는 유저는 그런 세세한 부분들에 관심이 없다. 오로지 이 게임을 통해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재미가 무엇인가, 그 한 가지에만 관심이 있다. 단 하나의 문장만으로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무엇을 소비자인 유저들에게 어필하고자 하는가. 무엇이 소비자로 하여금 이 게임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인가. 사실 많이 부딪히는 부분이다. 게임만이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 주홍빈은 경영자다. 오랜만에 흥미로웠다.
그나마 드라마의 전환이 무척 자연스럽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뜬금없지만 7회라는 한정된 분량 안에서 굳이 지금까지의 내용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무리없이 주홍빈과 손세동 사이의 언젠가는 시작했어야 할 노골적인 사랑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있다. 단초는 있었다. 다만 그 속도를 좀 더 빨리 했다. 지금까지의 저조한 시청률에 대한 반성이기도 할 것이다. 확실히 재미있지만 상업드라마로서는 무척 이상한 드라마였다.
이대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여전히 몸에서 칼도 나오고, 남다른 초능력도 보여주고, 그리고 괴기스럽기까지 한 암울한 분위기도 유지하고. 여전히 어디로 갈 지 알 수 없게 긴장케 한다. 단지 새로운 변화를 위한 잠시의 숨고르기일 뿐이다. 많이 아쉽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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