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 - 어중간한 설내일이 아쉽다

까칠부 2014. 10. 15. 04:36

무언가 어중간하다. 차라리 아예 만화로 만들었으면. 리얼리티따위 무시하고 철저히 만화만의 고유한 과장과 왜곡을 충실히 살려 드라마를 현실과 유리시킨다. 드라마는 철저히 허구이며 드라마속 배경과 인물들은 오로지 드라마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존재들이다. 시청자가 자신의 현실을 투영할 여지 자체를 배제해 버리는 것이다. 제약 없이 마음껏 날뛸 수 있다.


아니면 보다 더 현실에 충실한 노선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만화에서의 과장되고 왜곡된 표현들을 현실을 기준으로 재해석하여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어쩌면 만화에서 보여지는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이 실제로도 현실에 있을 법한 모습들로 재구성된다. 실제 차유진(주원 분)을 비롯한 많은 인물들이 그렇게 현실과의 적절한 타협을 통해 한국인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개성적이지만 그 개성이 현실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래서 설내일(심은경 분)의 캐릭터가 더 아쉽고 안타깝게 여겨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상한 것도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비상한 것이 되어 버린다. 이상한 것도 상식에서 벗어나 있지만 비상한 것도 역시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기왕 상식을 벗어난 말과 행동들이 단순히 이상한 정도를 넘어서 어떤 비범함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큰 파격이 필요한 것이다. 적당히 이상한 정도라면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야겠지만 그것도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감탄과 존경의 대상이 된다. 조금 모자르고 어딘가 문제가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남다른 비범함이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독특한 개성으로 나타난 것이다. 바로 설내일에게 부족한 부분이다. 아주 조금 미치지 못한다.


단지 이상할 뿐이다. 단지 어리석고 엉뚱할 뿐이다. 차유진마저 감탄케 만드는 그녀의 놀라운 재능은 그렇게 그녀의 엉뚱함과 분리되어 존재할 뿐이다. 그나마 차유진은 상식적인 범주의 천재일 것이다. 놀라운 재능과 예리한 지성과 무엇보다 그런 것들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오만한 품성이 그린 듯이 두루 갖춰져 있다. 그런 점에서 연기하기도 이해하기도 무척 쉽다. 하지만 설내일은 일반의 상식을 벗어난 천재다. 누구도 그녀의 재능을 알지 못하고, 그녀 자신도 자신의 재능에 대한 자각이 없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그녀의 천재성을 평범함을 넘어선 그녀의 엉뚱함으로 표현해내야 한다. 피아노 연주를 알아듣기엔 대부분의 시청자는 음악에 문외한이다. 과연 지금의 설내일에게서 그같은 비범함이 느껴지는가.


설내일이 중심을 잡아주어야 한다. 차유진은 비범하지만 수동적인 캐릭터다. 홀로 고고히 존재하는 완결성이 그의 역할을 제한한다. 설내일의 강한 개성은 그같은 차유진의 완결성에 균열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그로부터 사건이 일어난다. 차유진의 캐릭터에도 색깔과 온기가 주어진다. 설내일과 함께 있을 때 차유진은 가장 풍부하고 다양한 표정을 보여준다. 행동에도 생동감이 느껴진다. 차유진의 캐릭터가 혼돈의 설내일에게 질서를 부여한다면, 설내일로 인해 차유진의 완고한 질서가 흐트러지고 만다. 거기에서 드라마는 만들어진다. 그런데 설내일의 강한 개성이 단지 평범한 이상함 정도로 머문다면 차유진의 짐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맞물려야 할 조각들이 자꾸 헛돌고 있다.


사실 매우 잔인한 분야다. 꿈만으로는 도저히 안되는 것이 있다.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수백만, 아니 그 이상의 사람이 모여 있어도 평범한 재능으로는 단 한 사람조차 감당하지 못한다. 유일락(고경표 분)이 차유진을 질투하면서 한 편으로 동경하는 이유일 것이다. 음악을 사랑하지만 음악으로부터 선택받지 못했다. 신을 사랑했으면서도 신으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카인의 질투였을 것이다. 죽이고 싶을 만큼 아벨을 사랑했다. 그토록 자신이 내쫓는 제자임에도 도강재(이병준 분) 역시 차유진을 의식하고 심지어 의도적으로 그를 방해하려고까지 한다. 차유진의 연주에 누구보다 솔직하게 감탄한다. 하기는 그런 분야이기에 설내일과 같은 정상에서 벗어난 캐릭터가 주인공일 수 있는 것일 게다.


아무리 이상해도, 아무리 정상에서 벗어난 모습을 하고 있어도, 혹은 무지하고, 혹은 엉뚱하고, 혹은 한참 모자른 듯 보여도, 그러나 재능만 있으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슈트레제만 역시 상식과는 한참 거리가 먼 말과 행동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거장이다. 세계적인 거장이기에 그의 모든 행동들은 이해되고 용서된다. 범죄가 아닌 한에는. 차유진의 유아독존적인 오만도, 설내일의 다른 차원에 사는 듯한 엉뚱함도, 그래서 용납될 수 있다. 아니 그조차도 재능의 증거로서 여겨진다. 천재이기에 생각도 행동도 남다르다. 설내일이 더욱 아쉬워지는 이유다. 조금은 더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 설내일에게는 그만한 충분한 재능이 있다.


만화를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 현실적인 부분에서는 적절히 타협하는 유연함도 보인다. 중견배우들의 안정된 연기와 무게감은 자칫 붕 뜰 수도 있는 드라마를 현실에 안착시키는 역할을 한다. 역시 드라마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주인공과 젊은 배우들이다. 분발하고 있지만 아직 아쉬움이 남는다. 제목이 '내일도 칸타빌레'다. 주인공의 이름도 설내일이다.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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