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녀석들 - 살아있다고 믿고 찾으면 살아있더라구!
이런 드라마에도 써먹지 못할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실제 현실에서 일어났었다. 피해자가 납치되었음을 핸드폰으로 신고했음에도 정작 전화를 받은 담장자는 정확한 위치만을 묻고 있었다. 핸드폰을 통해 피해자가 폭행당하는 소리가 생생히 들리고 있었음에도 같은 질문만을 반복하며 한가롭게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전화가 끊기고도 피의자의 자백에 따르면 무려 6시간이나 피해자는 살아있었다고 한다. 2012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오원춘 사건이었다.
"피해자는 말야 살았다고 생각하고 찾으면 살고, 죽었다고 생각하고 찾으면 죽더라구!"
오구탁(김상중 분)의 이 대사 역시 얼마전 끝난 오원춘사건 피해자 유가족의 국가배상금청구 항소심 재판의 결과에 대한 드라마적인 일갈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경찰이 일찍 피해자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범인의 흉악성에 비추어 무사히 구출되었을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신고 및 수색의 지연에 대한 경찰과 국가의 책임을 과도하게 물을 수는 없다. 1억 8천만원의 국가배상금이 2130만원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러면 과연 경찰은 피해자가 죽을 것을 이미 알고서 신고도 수색도 늑장을 부렸던 것인가?
묻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범인의 빠루에 몇 번이나 가격당하고서도 피해자는 기적처럼 살아있었던 것이다. 의도한 것이다. 빠루로, 더구나 날을 세워 몇 번이나 있는 힘껏 머리를 가격했는데 살아있더라도 그렇게 정신까지 멀쩡한 채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살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찰에게. 조금만 빨랐다면, 아니 조금 늦더라도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하다못해 드라마처럼 기적이라도 바랄 수 있었을 것이다. 범인에 의해 산산히 해체되고 난 뒤에는 기적조차 기대할 수 없다. 흉악한 살인자들마저 느꼈을 그 감동과 뿌듯함은 과연 누구의 것이어야 했겠는가.
짜릿했다. 의도한 것도 알고, 작위적인 것도 알고, 너무나 뻔하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피해자가 '공장'에서 살해당하려는 순간 각자의 방법과 경로를 통해 오구탁과 세 명의 '미친 개들'이 현장에 모였을 때, 더구나 피해자가 살해당했다고 여긴 순간 범인들을 몰아치며 힘으로 제압하고 있었다. 원초적인 야만의 폭력이 인간성을 상실한 범죄자들을 일차적으로 응징하고 있었다. 조그만 더 빨랐다면. 조금만 더 일찍 도착했더라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상처입힌 흉악한 조직폭력배 박웅철(마동석 분)마저 용서하지 못하고 폭력으로 응징을 가할 때 그만 범인의 팔을 부러뜨리는 박웅철의 행위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짜여진 것처럼 - 기적이라기에는 너무나 극적으로 다시 살아나는 피해자. 그것이 현실이었다면. 그것이 실제 사실이었다면. 그렇게라도 피해자와 유가족, 그리고 시청자 모두를 위로하고 싶었을 것이다. 픽션이란 이런 점에서 때로 매우 자유롭다.
박웅철은 자기가 아는 변두리 건달 윤철주(박효준 분)을 미끼로 내세워 산 사람의 장기를 적출해 파는 장기밀매조직을 쫓는다. 오구탁은 장기밀매조직의 뒤를 봐주는 검사를 찾아 그를 위협해 그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장태수(조동혁 분)는 불법 대포폰을 판매하는 업자들을 뒤지며 현장에서 발견한 핸드폰의 실소유주를 찾는다. 조금 허술한 부분이다. 경찰이 이미 한 차례 조사를 마쳤을 텐데, 하기는 오구탁이 너무나 쉽게 찾아낸 냉장고 뒤의 시신을 보관한 냉장고도 경찰은 보지 못하고 지나치고 있었다. 이정문(박해진 분)은 납치가 일어난 현장 근처의 CCTV에 찍힌 공범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동선을 따라가 마침내 진범 양시철의 행방을 찾아낸다. 그나마 박웅철만이 자신의 지시를 따라 미끼가 된 윤철주에 대한 의리를 내보이며 사람다운 감정을 드러내고 나머지는 철저히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 기계처럼 오로지 범인만을 추적한다. 다른 여지란 없다. 너무 단촐해서 허무할 정도다. 이렇게 쉬운데.
굳이 '미친 개들'이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경찰의 무능함이다. 경찰의 인간다움이 아닌 뻔한 증거조차 찾지 못하고 지나치는 무능과 나태다. 조롱이다. 물론 박웅철처럼 무고한 민간인을 미끼로 내세울 수는 없다. 설사 경찰이고 자원했다 하더라도 위험을 감수해가며 미끼로 사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핸드폰을 통해 업자들을 뒤질 수는 있다. 수사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장면이다. 이정문처럼 특정인물의 심리나 동선을 쫓는 것도 수사기법의 하나다. 말했듯 너무 쉽다. 그러나 검사는 장기밀매조직의 뒤를 봐주고, 경찰은 흉폭해진 외국인 범죄조직에 대해 순찰조차 꺼리고 있다. 피해자의 신고에도 경찰은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절박함의 차이다. 단지 자유를 얻고자 하는 절박함이 '미친 개들'로 하여금 경찰의 역할을 대신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아쉽다면 아무리 봐도 굳이 경찰이 아닌 '미친 개들'을 통해 범인들을 찾아내고 제압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는 점일 것이다.
사실 가장 아쉬운 점이면서 드라마 '나쁜 녀석들'의 치명적인 단점일 것이다. 굳이 '미친 개들'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수사드라마의 정석을 따른다. 모두가 흉악한 살인자 출신이지만 정작 범인을 쫓는데 '미친 개들'이 사용하는 방법들이란 수사드라마에서 경찰들이 흔히 쓰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리 공중파보다는 제약이 덜하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방영되는 대중드라마로서 가지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일 것이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들로 팀을 꾸렸더라도 그들이 사용하는 수단까지 불법적인 것이어서는 안된다. 그 행위가 범죄가 되어서는 안된다. 인간이 아닌 짐승을 잡기 위해 짐승을 푼다는 것인데 정작 짐승더러는 인간이 되라 강요한다. 첫 회부터 느낀 위화감의 정체였다. 그래도 장태수가 사용하는 무심하도록 냉정한 액션은 과연 한국 드라마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을 것이다.
이정문의 뛰어난 두뇌를 활용할 순간이 찾아 온다. 지금으로서는 존재감조차 미미할 정도로 액션이 없다. 장태수는 차갑다. 액션마저 무심하고 냉정하다. 분노마저 침착하게 이성으로 한다. 반면 박철웅은 무모할 정도로 뜨겁다. 생각보다 먼저 행동이 앞선다. 계산하기에 앞서 몸부터 움직이고 본다. 뒤가 없다. 오로지 앞만 있다. 힘으로 눌러 억지로 따르게 한 윤철주임에도 그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릎쓴다.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장기밀매업자들의 범죄에 인간적인 분노를 드러낸다. 지금 당장은 오구탁과 함께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역할일 것이다. 박철웅이 뜨겁다면 오구탁은 미쳐 있다. '미친 개들'이란 오구탁을 일컫는 이름일 것이다. 그를 움직이는 것은 딸을 죽음에 이르게 한 범죄와 범죄자들에 대한 끝없는 증오일 것이다. 그는 현실에 살고 있지 않다. 증오에 살고 있다. 역시 캐릭터들의 개성과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에피소드가 필요하다. '나쁜 개들'이 진정으로 필요한 사건들이다. 캐릭터의 구성은 더없이 훌륭하다.
오원춘 사건이 알려지고 사람들 사이에 많은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었다.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닌 배후에 보다 큰 스케일의 다른 비밀이 감추어져 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묘사된 것과 같은 장기 및 인육의 밀매 역시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믿어지던 소문 가운데 하나였다. 드라마적인 재미를 위한 작가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피해자도 바로 살해당하지 않고 구출되기까지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드라마로라도 위로받기를 바라며. 기억을 떠올린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