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어게임 - 적나라한 욕망의 콜로세움에서...
"그게 쉬우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금 이따위일 리가 있겠어?"
남다정(김소은 분)이 처음은 아니다. 마르크스가 처음으로 시작한 것도 아니다. 이미 수천년 전 맹자는 정전제를 주장하고 있었다. 그보다 더 전에 공자는 각자가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의 역할에 충실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이상사회를 꿈꾸고 있었다. 역사상 수많은 철학자, 사상가, 종교지도자들이 하나같이 인간의 욕망을 경계하며 모두가 공존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인간이 사는 세상이란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모든 백성에게 고루 땅을 나누어주어 자기 땅에서 농사지어 먹고 살 수 있도록 하겠다. 북위 효문제에게서 시작된 균전제의 이상은 그러나 남북조를 통일한 수당대에 이르러 전국적으로 확산된지 불과 백 여 년 만에 그만 흐지부지 무너지고 말았다. 모두가 함께 생산수단을 공유하며 함께 일해서 함께 생산하여 함께 나눈다는 공산주의의 이상 역시 혁명이 성공하고 불과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헛된 꿈으로 끝나 버리고 말았다. 모두가 똑같이 골고루 나누려 해도 인간의 욕망이란 결코 모두가 같을 수 없다. 누군가는 아주 조금만 있어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테지만, 누군가는 그 모든 것을 가지고도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기는 그래서 라이어게임일 것이다.
더 큰 욕망을 위해 서로를 속인다. 양심을 속이고, 인정을 짓밟고, 진실을 조롱한다. 누가 더 효과적으로 상대를 속이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된다. 그나마 현실보다는 낫다. 현실에서는 여기에 폭력이 더해진다. 어떤 논리도 가치도 필요없이 오로지 야만적인 폭력에 의해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 절박할수록. 더 간절할수록. 남다정이 쉽게 다른 사람들에게 속아넘어가는 이유일 것이다. 남들보다 가진 욕망 자체가 크지 않으니 굳이 남을 속여야 할 이유도 남을 경계해야 할 이유도 없다. 2억 5천만원이라는 큰 돈보다 당장 그로 인해 불편해질 자신의 인정과 양심이 더 신경쓰인다. 그에 비하면 태연히 참가자 전원을 속이고 있던 제이미(이엘 분)의 욕망은 얼마나 적나라한가.
하우진(이상윤 분)과 강도영(신성록 분)은 관조자다. 그들은 그 진실을 안다. 모든 진실을 꿰뚫고 참가자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지만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의 존재가 하우진을 인간이게 만든다. 그로 하여금 라이어게임의 진흙탕에 뛰어들도록 만든다. 사실 게임에 있어 치트적인 존재일 것이다. 모든 게임의 룰과 원리를 안다. 그래서 그의 곁에는 남다정이 있다. 정확히 남다정을 위해 하우진이 존재한다는 쪽이 더 옳을 것이다. 게임의 어떤 룰과 원리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다. 어떻게 보면 가장 마이페이스다. 모두가 욕망에 휘둘리는데 남다정만이 초연하다. 어머니의 존재는 하우진과 남다정을 이어주는 단단한 매개가 될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초월자는 강도영 한 사람만이 남는다.
과연 강도영의 목적은 무엇일까? 과연 무엇을 위해 강도영은 이같은 기상천외한 게임을 기획하고 방송으로 내보낼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이 시대를 위한 콜로세움을 건설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로마는 콜로세움을 건설하며 망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망할 때까지 가보는 것이다. 철저히 방관자와 같은 모습이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참가자들을, 그리고 시청자들을, 그들을 포함한 이 사회 전부를 몰아가려 한다. 어쩌면 상당히 종교적인 묵시의 느낌도 주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파멸일까? 아니면 구원일까? 비밀스런 의도를 감춘 불길한 존재가 순수한 영혼을 제물로 삼아 인간을 시험한다. 선택은 인간이 하고 댓가도 인간이 치른다. 가장 낮은 곳에서 돌아온 하우진이 남다정에게 손을 내민다.
참 적나라할 것이다. 자신의 승리가 확정된 순간 제이미가 보인 천박할 정도로 노골적인 모습들에서. 다시 재투표를 앞두고 욕망을 두고 자신이 배신한 대상들과 거래를 한다. 더구나 게임은 내부의 룰과 원리에 의해서만 진행되지 않는다. 외부의 권력이 개입한다. 장부장(최진호 분)의 의도가 개입하며 원래는 탈락해야 했을 제이미가 다시 게임에 참가하게 된다. 그 부당함과 불공평함, 그 모순과 부조리들. 그럼에도 탈락하기 싫어 게임장소를 나서는 잔류자들에게 비루하게 아우성치며 손을 내민다. 그들은 이미 게임의 일부다.
조달구(조재윤 분)가 갈등하던 끝에 남다정의 가방을 집어들고 문을 나서는 장면에서 인간이란 어쩌면 이토록 욕망에 약한가. 남다정을 동정하고, 어쩌면 사랑하고 있을 테지만, 그러나 그에게 가해진 잔혹한 폭력은 그를 더욱 궁지로 내몬다. 자신에게는 돈이 필요하고 남다정에게는 그 돈이 있다. 더구나 아무런 경계심 없이 마음놓고 잠들어 있다. 원래 욕망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현실이 인간의 욕망을 이끌어낸다. 어쩌면 강도영이 의도하는 것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남다정처럼 강하지 못하다. 원작보다 나아진 점이다. 착하고 순진하지만 그러나 약하지도 어리석지도 않다. 오히려 누구보다 강하다.
콜로세움에서 싸우던 것들은 당시 로마인이 살던 세계에 존재하던 것들이었다. 맹수와 전쟁포로들과 혹은 그리스도교도들. 아직 로마시민들로 구성된 로마의 군단이 지중해 세계를 휩쓸던 그때 로마의 시민들이 느끼던 야성을 되돌린다. 단지 구경꾼으로 남을 것인가. 다시 나가 전사가 되어 싸울 것인가? 그들이 사는 곳이 정글이고 지옥이라면.
인간이 욕망을 버릴 수 있을까? 욕망을 버리고 남다정처럼 남을 위해서 자신을 양보하고 희생해가며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남다정을 응원하고, 한 편으로 남다정을 질투하고 증오하는 그 마음들이야 말로 또다른 현실일 것이다. 현실은 지옥이지만 그래서 인간은 구원을 찾는다.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리석지만 때로 믿고 싶어지는 이상이 있다.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