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녀석들 - 감정과 정의, 개인의 이야기로 흐르는 이유
비로소 '미친 개들'이어야만 하는 사건을 맡게 되었다. 유미영(강예원 분)의 말처럼 고작 조폭두목을 구하기 위해 경찰력을 동원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보스 이두광이 제거되고 그 빈자리를 노린 조폭들간의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그로 인해 일어날 민간인의 피해와 불법행위의 처벌에 공권력을 집중해야지 단지 아직 체포되지 않았을 뿐인 조폭두목을 구하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한다는 것은 법과 보편의 가치에 대한 기만이고 배반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어차피 폭력조직 자체를 완전히 근절하지 못할 것이라면 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감독하는 것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한 방법일 것이다. 하나의 강력한 조직이 일정 지역을 지배하고 있다면 그 안에서는 새로운 조직이나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은 낮아진다. 개인이나 작은 조직이 여럿 있는 것보다 큰 하나 쪽이 경찰 입장에서도 책임을 묻기가 쉬워진다. 범법행위를 저지르더라도 일정한 선을 넘지 않도록, 그로 인한 사회적 피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대신 경찰이나 검찰이 직접 개입해야 하는 상황만큼은 알아서 스스로 막거나 예방한다. 다만 그런 것들을 공식화하기에는 범죄를 용인하고 방치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에 비공식적으로 모르게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를테면 범죄자들로 이루어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경찰내 특수조직 '미친 개들'처럼.
문제는 그렇다면 과연 폭력조직 동방파의 두목 이두광을 보호하기 위해 '미친 개들'을 동원하는 것이 경찰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경찰 자신이 판단하기에 이미 서울을 장악하고 있는 폭력조직 동방파의 두목 이두광이 건재해야지만 장차 일어날지도 모르는 폭력조직간의 전쟁을 막고 시민들의 안전과 질서를 지킬 수 있겠다는 결론이 내려졌기에 오구탁(김상중 분)에게 '미친 개들'을 동원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렇다면 그것은 경찰에 의한 비공식적 임무라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오구탁이 '미친 개들'에게 이두광을 구하라 명령을 내린 것은 다름이는 '미친 개들'의 멤버 박웅철(마동석 분) 개인의 부탁에 의한 것이었다. 박웅철이 먼저 오구탁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하고 오구탁에 그에 경찰로서 이유를 붙였다. 유미영이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다. 더구나 오구탁은 박웅철을 구할 때도 이두광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연락받고 있었다.
하기는 '미친 개들'을 결성한 이유부터가 오구탁 개인의 사연에 기대고 있다. 어째서 박웅철이고, 정태수(조동혁 분)이고, 이정문(박해진 분)인가? 경찰 내부에서 비공식적으로나마 논의를 거쳐 결정된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오구탁 개인이 개인의 의지로서 결정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오로지 오구탁과 서울경찰청장 남구현(강신일 분)만이 안다. 그리고 이제 드라마는 아예 '미친 개들' 구성원 개개인의 이야기로 흘러가려 하고 있다. 이두광의 구출은 박웅철 개인을 위한 이야기였다. 조직폭력배로서의 남은 의리이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반드시 끊어야 할 과거의 족쇄였다. 박웅철의 이야기와 이정문의 비밀이 서로 얽힌다. 다음은 정태수다. 정태수 역시 이정문을 죽이려 하는 누군가로부터 제안을 받은 바 있었다. 그렇다면 이정문을 둘러싼 음모와 비밀은 과연 무엇인가? 역시 경찰이 추구해야 할 법과 사회의 질서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지 오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개인의 인정과 보편의 정의에 대해서. 차라리 동정하기를 바란다. 공감하기를 바란다. 자신의 이야기이기를 기대한다. 범죄를 수사하다 말고 수사관 개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새 범죄수사보다 수사관 개인의 이야기가 더 중요해진다. 엄정한 법의 집행을 위해서가 아니다. 사회 보편의 가치와 질서를 지키고자 범죄자를 쫓는 것이 아니다. 재판정에서 치밀한 법리와 객관적인 수사를 통해 범죄사실을 입증하려는 검사보다 흉기를 들고 난입하여 피의자를 난도질하는 피해자의 가족에 더 쉽게 공감하고 이입하게 된다. 개인의 통쾌함이 곧 정의다. 개인의 후련함이야 말로 정의의 실현이다. 경찰이지만 오구탁이나 남구현이나 보편의 법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복수를 위해 그들은 경찰로서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서슴없이 행동에 옮긴다.
유미영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일 것이다. 압도적이라 해도 좋을 배우들의 열연 가운데 강예원의 연기만이 유독 허전하고 불만스럽게 여겨졌다. 경차로서 과정 또한 중요하게 여기고 싶은 유미영과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오구탁, 남구현의 본질적 충돌이다. 가치의 충돌이기도 하다. 과연 '미친 개들'은 이대로 좋은 것인가. 오구탁과 남구현의 방식 또한 지금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답답하지만 때로 원칙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더욱 드라마가 '미친 개들' 개인의 이야기로 흘러가려는 지금 누군가 반대편에서 균형을 맞춰줘야 한다. 강예원에게는 너무 무거운 짐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대로는 처음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저 범죄자 개인을 위한 신파로 흘러갈 위험이 있다. 어찌되었거나 그들은 많은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한 범죄자들이다. 이정문에게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들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형도 다 마치지 않은 범죄자를 위해 건넬 동정은 없다.
이정문의 캐릭터가 갈수록 희미해지고 묻혀가는 이유일 것이다. 냉정한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선다.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충동과 직관에 의지한다. 머리 좋은 이정문은 필요없다. 짧은 봉 하나로 조직폭력배들을 몰아붙이는 싸움 잘하는 이정문이 필요하다. 냉혹한 킬러일 정태수 역시 자주 감정을 앞세우고는 한다. 오구탁은 그나마 미쳐 있다. 딱 박철웅 정도가 적당하다. 정태수, 이정문보다 박철웅 둘이 더 효율적이다. 그래도 이정문 개인과 관련한 여러 장치들과 비밀들이 드라마를 끌어가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 준다. 과연 다음주에는 이정문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보여지게 될까? 낭비가 심하다.
처음의 충격에 비해 갈수록 실망만 커지고 있다. 기대가 워낙 컸던 탓인지도 모른다. 그다지 냉정하지 않다. 그다지 철두철미하지도 않다. 말이 너무 많다. 감정이 너무 넘친다. 어쩔 수 없는 대중드라마다. 정교한 트릭이나 추리보다 원초적인 야만의 폭력에 더 이끌리고 만다. 인간은 이성보다는 아무래도 본능에 더 가깝다. 처음의 섬뜩하기까지 하던 액션의 연출마저 이제는 많이 시들해진 듯하다. 재미는 있다. 그러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 아이러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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