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피노키오 - 언론과 피노키오, 진실만 말한다 믿기 때문에!

까칠부 2014. 11. 21. 03:51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수 있을까. 최달포(이종석 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최인하(박신혜 분) 자신 역시 아직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 것인지, 무엇이라 말해도 그것은 참도 거짓도 아니다. 피노키오인데 그것까지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더 분명해졌을까? 어째서 피노키오인지. 어째서 기자인 것인지. 자신도 확신이 없으면서, 아니 확신은 커녕 사실여부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판단조차 할 수 없는데 전제하고 단정짓고 결론부터 내리고 본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고 믿는다. 설마 피노키오인데 거짓말을 했을까? 설마 언로인데 거짓을 보도했을까? 그러나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 반드시 진실이라는 근거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 이전 어느 피노키오가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말하고 있다. 종교를 깊이 믿고 있는 어느 피노키오는 신은 존재한다며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말은 사실일까? 거짓말임을 나타내는 어떤 증상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아직 알지 못하고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사실들에 불과하다. 판단할 수 없다. 오직 믿음만이 그 진실성을 담보한다. 진실은 사실인가? 사실이 곧 진실인가? 그래서 거짓말 한 마디 않고도 얼마든지 사람을 속이고 농락할 수 있다. 13년 전 당시도 검경이나 언론 누구도 거짓말같은 건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도 진실도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기자가 필요한 것이다. 언론이 필요한 것이다. 드러난 사실만을 그대로 전할 것이라면 굳이 기자나 언론이 있을 필요따위는 없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아무데라도 써붙이면 된다. 이런 것이 있다. 이런 내용들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들을 혹은 가만히 앉아서, 혹은 직접 찾아가서 읽으면 그만이다. 거기에는 어떤 비판도 검증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기는 그런 대표적인 예를 지금시대를 사는 자신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인터넷이다. 게시판이다. 검증되지 않은 사실들이 개인에 의해 아무렇지 않게 쓰여지고 또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가는. 일부러 조작되거나 왜곡된 내용을 올림으로써 사람들의 판단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경향도 적잖이 보인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사실을 판단하려면 적절한 비판과 검증절차가 필요하다. 언론의 역할이다.


13년 당시 화재현장에서 현장소장의 증언처럼 소방대장과 대원들에게 공장내부에 남아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피노키오 증후군인 남성이 사고 뒤에도 살아있는 기호상을 보았다고 신고했다면 과연 그가 목격한 그 사람이 기호상이 맞는 것인지. 무엇보다 기호상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면 기호상이 과연 어떤 인간이었는지, 소방관으로서 어떠했는지 살펴보려는 노력 정도는 있어야 했을 것이다. 어린 최달포는 그래서 울부짖고 있었다. 아버지 기호상이 얼마나 자신의 대원들에게 애착을 가지고 있었는지. 대원들의 신상을 일부러 적어서 집안 곳곳에 붙여놓고 외우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러 사실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미 내려진 결론만을 서둘러 경쟁해가며 확정지으려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언론의 보도를 대부분의 대중들은 믿었다. 언론의 보도이기에.


하필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건드려서는 안되는 아픈 곳을 찔리고 말았다. 아버지가 13년만에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차라리 보도된 모드 내용이 사실이더라도 아버지가 살아있는 것을 보았다는 증언 역시 사실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죄인이 되었어도, 그래서 그로 인해 어머니와 자신들이 그토록 고통받았어도, 그래도 아버지만은 살아있었으면. 그러나 아버지마저 참혹한 주검으로 발겨되고 말았다. 희망이 사라졌다. 어머니는 스스로 최달포와 함께 바다로 뛰어들었고, 형제들은 서로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다. 모두 죽고 뿔뿔이 흩어진 가족과 이름마저 잃어버린 자신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폭주하기 시작한다. 그녀를 보았다. 최인하의 어머니이고 한 그 지독했던 여기자 송차옥(진경 분)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런 최달포를 마주보고 있었다는 것이 최인하의 불운이었을 것이다. 최인하는 어쩌면 본능적으로 송차옥의 변호를 해주려 하고 있었다.


최인하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 만큼이나 송차옥을 증오한다. 그래서 최인하에게까지 책임을 지우려 한다. 잠시 잊고 있었다. 최인하가 송차옥의 딸이라는 사실을. 아니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최인하는 최인하, 송차옥은 송차옥이다. 사람의 감정이란 그리 쉽게 마음대로 정리되지 않는다. 혼란 속에 최달포의 억눌러왔던 증오가 터져나오고, 그런 최달포의 모습에 잠잠하던 최인하는 자신이 혼란에 잠기고 만다. 언제나 자기편이었으면 했다. 자기도 알지 못하는 자기의 감정이 답답하기만 하다.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단지 거짓말을 하지 못할 뿐이다. 믿을 수밖에 없었다. 역설을 최인하는 자신의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돌아서고 나면 그들은 다시 얼마나 먼 길을 서로 엇갈리게 될까? YGN의 신입기자채용 이슈에 맞설 MSC만의 이벤트를 구상하며 송차옥은 자신의 딸 최인하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비로소 아버지와 아들이 되었다. 서로 감추고 있었다. 아버지가 걱정되어서. 이번에는 아들이 걱정되어서. 거짓처럼 진심을 나누었다. 진심으로 거짓된 관계를 이어갔다. 친아버지가 아니었다. 친아들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친아들을 연기했다. 친아버지를 연기하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거짓된 관계다. 그렇다고 서로에 대한 진심까지 거짓이었는가. 최인하에게 최달포란 여전히 '너'일 뿐이다. 최달평(신정근 분)는 최달포에게 역시 '아저씨'일 뿐이다. 그러나 최공필(변희봉 분)에게 최달포는 아들이었고, 최달포에게도 최공필은 아버지였다. 지금까지의 거짓된 연기를 벗겨냈을 때 남은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서로를 향한 진심이었다. 역시 거짓과 진실이 뒤섞인다.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일까?


오히려 거짓말을 하지 못해서. 그러나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고 그 말이 항상 진실인가? 진실이더라도 그것이 과연 실재하는 사실인가? 언론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항상 사실만을 보도해야 한다. 진실만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게 믿는다. 그 믿음을 이용한다. 기자는 거짓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기자는 진실을 취재하고 세상에 알린다. 진실의 무게에 대해서. 그 말 한 마디의 가치에 대해서. 없는 사실마저 추론하여 채워넣었을 때 그 리포트가 가장 듣기좋은 알찬 리포트가 된다. 사실만으로는 재미없다. 그래서 최인하와 최달포 두 사람이 만들어갈 새로운 기자의 모습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작가는 이들에게 어떤 역할을 맡기려 하는 것인가.


진실보다 더 훌륭한 거짓의 도구는 없다. 의심없이 믿어 버리기 때문이다. 단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진실만을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속이는 데에는 굳이 거짓말도 필요치 않다. 믿고 싶은 거짓말과 믿고 싶지 않은 진실, 무엇이든 가장 듣기 좋은 그것이 반드시 진실이어야 한다. 주제가 무겁다. 드라마는 가볍다. 즐겁게 볼 수 있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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