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 정의감과 열정, 그들을 막아서는 것들
사실 검찰수사관씩이나 되어 할 말은 아닐 것이다. 근대국가에 있어 법과 행정력은 최소한으로만 적용되어야 한다. 자칫 전근대에서와 마찬가지로 법과 국가의 행정력이 개인을 억압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판사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법으로 정한 것보다 더 큰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과연 정당하다 할 수 있겠는가. 감정적 판단과 법적 판단은 달라야 한다.
억울한 일을 당한 피해자의 입장을 십분 고려하더라도 그렇다고 그를 위해 또다른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과연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인지, 검찰이 수사하고 기소한 내용 가운데 잘못은 없는지, 설사 가해자가 확실하더라도 다른 고려해야 할 부분들은 없는 것인지, 그렇게 결국 처벌을 받게 되더라도 부당한 처벌을 받지 않도록 최소한의 처벌만을 판결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검사는 무죄나 감경사유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의 범죄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고.
전근대사회에서 범죄수사는 매우 단순했다. 용의자가 있으면 일단 잡아들이고 자백부터 받아낸다. 말로 해서 안되면 물리적인 수단을 동원한다. 흔히 말하는 고문이라는 것이다. 고문을 해서 자백하면 확실한 범인이다. 고문을 해도 자백하지 않으면 지독한 범인이다. 구동치(최진혁 분)처럼 거짓마로 피의자를 속여 자백을 받아내는 것은 그나마 명판관이라 불리우던 이들이 쓰던 매우 온건한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그조차도 수사관의 유인과 압박에 의해 피의자가 의도하지 않은 거짓진술을 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었다. 짓지도 않은 죄를 어쩔 수 없이 인정하고 억울하게 처벌받은 예가 그동안 너무 많았었다. 아니 지금도 아주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보다 엄정하고 치밀한 객관적인 수사가 필요한 이유다.
전근대사회를 배경으로 한 수사드라마가 드문 이유일 것이다. 수사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다. 혐의를 인지하고 용의자를 확보하는 것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대중의 여론이야 이 단계에서 이미 판결까지 다 내려지는 경우가 많지만 그러나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보다 확실한 객관적인 근거들이 필요하다. 당연히 용의자 쪽에서는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들을 숨기려 노력할 것이다. 자신의 죄를 감추려는 용의자와 어떻게 해서든 그 죄를 밝혀내고 처벌하려는 수사관, 더구나 이미 죄를 저지른 뒤이기에 불법적인 수단마저 서슴지 않는 용의자에 비해 법을 지켜야 하는 수사관은 합법적인 수단만을 사용할 수 있다. 그같은 비대칭구조가 수사드라마에 짜릿한 긴장감을 더하게 된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현직검사의 목숨마저 위협하는 가운데 권력의 외압으로 내일이면 대구로 내려가야 하는 검사의 안타까운 강직함이 더욱 마음조이게끔 만드는 것이다. 응원하고 싶어진다. 이입하며 공감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인 더 자신을 희생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퇴근시간도 따로 없다. 아예 검찰청에서 밤을 새며 오로지 범죄수사에 모든 것을 건다. 어찌되었거나 그것이 현실이고 원칙인 때문이다. 국회의원에게는 당연히 면책특권이 있다. 더구나 국회의원 쯤 되면 사법부 내에도 인맥이 적지 않다. 개인의 인맥으로 부족하면 정당이나 계파의 인맥은 더 막강하다. 결국 사법부도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직이다. 지금의 자리와 앞으로의 승진까지 걸려 있다면 인간으로서 유혹을 견디기가 쉽지 않다. 그런 것까지 감안해 수사해야 한다. 문희만(최민수 분)이 내린 정치적 판단은 최소한의 용의자를 수사하여 처벌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 저 위에서도 주윤창까지는 어떻게 납득하고 동의해 줄 것이다.
문희만의 과거가 흥미롭다. 국내굴지의 대기업을 상대로 싸움을 걸었었다. 심지어 청와대의 머리위에 앉으려는 거대한 힘을 상대로 법의 정의를 관철하려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었었다. 열정이 넘치는 그야말로 정의로운 검사였을 것이다. 능구렁이가 되었다. 선택할 줄 알게 되었다. 잡을 것은 잡고, 놓아줄 것은 놓아준다. 받을 것은 받고, 줄 것은 준다. 세월의 힘이었을까? 그럼에도 뇌물이나 협박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함은 그의 본질과 같은 것일 게다. 돌아갈 줄 알게 되었다. 잠시 숨을 고르는 법도 안다. 지혜는 얻었지만 용기를 잃었다. 구동치를 아끼는 이유다. 아직 구동치에게는 자신이 잃어버린 순수한 열정과 용기가 남아 있다. 그것을 지켜줄 방법을 찾는다. 이미 더럽혀진 자신이라도 구동치를 지켜주고 싶다. 모든 오욕은 자기가 쓴다.
정의로운 싸움이었다. 무모한 싸움이기도 했다. 자신들을 지켜야 했다. 살아남아야 했다. 그것이 죄가 되었다. 후회가 남는다. 정창기(손창민 분)가 방황하는 이유다. 문희만이 혼란스러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차라리 책임을 지겠다. 법적 책임이든, 도의적 책임이든, 죄가 없어서일수도 있지만, 그 죄가 점점 더 버거워져서일수도 있다. 부정한 의도로 그것이 이용되었기 때문일수도 있다. 타협하지 않는다. 굴복하지 않는다. 모든 진실을 밝히는 것이 구동치라면. 구동치에 의해 모든 것들이 명명백백히 드러나게 된다면. 어쩌면 그를 통해 의도하는 다른 숨은 뜻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매우 깊다. 무척 매력적인 캐릭터다.
문희만이 구동치를 지키기 위해 검찰국장 이종곤(노주현 분)과 담판짓는 그 순간 강수(이태환 분)는 브로커 박순배와 만나고 있다. 과거 잃어버린 기억들을 되돌려준다. 왜곡된 기억들이 강수의 선택을 일그러 놓는다. 의도는 분명하다. 구동치가 지금 하고 있는 수사를 자기 의도대로 흔들 수 있는 확실한 패를 심어 놓겠다. 또다른 갈등이 불거진다. 긴장과 위기가 고조된다. 과연 왜곡된 진실을 들은 강수의 선택은 무엇이고, 구동치와 한열무(백진희 분)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차장검사 오도정(김여진 분)과 선을 그으며 검찰청 내부정치도 긴장이 감돈다.
현실의 많은 것들이 그들의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 정의감도 열정도 넘치는데 현실은 그들을 꺾고 부수며 짓누르고 있다. 하지 말라 한다.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러나 해야만 한다. 그런 그들의 선배가 있다. 15년 전 문희만 역시 위험한 싸움을 시작했었다. 어느새 싸움이 커진다. 건드려서는 안되는 적이 그들의 앞을 막아선다. 그들의 싸움은 어떻게 될까? 긴장된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