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오만과 편견 - 한열무의 선택,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까칠부 2014. 12. 23. 04:51

이를테면 온라인게임에서 운영자와 싸우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스케일을 키우자면 감히 피조물이 창조주를 상대로 싸움을 건다.


싸움의 룰은 저쪽에서 독점하고 있다. 필요하면 공격력만 100만이 넘는 무기도 만들어낼 수 있다. 방어력이 1천만을 넘기면 어쩌겠는가. 아니 굳이 그럴 필요없이 계정을 삭제해버리면 아예 게임에 점속할 수도 없게 된다.


바로 그것이 조직과 싸운다는 것이다. 명령권과 인사권과 징계권이 모드 저쪽에 있다. 굳이 자기가 아니더라도 조직안에서 일단 명령만 떨어지면 따를 사람이 넘쳐날 정도로 많다. 앞으로 자신이 어떤 곳에서 어떤 일들을 하게 될 것인가도 나보다 먼저 저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아주 사소한 빌미로도 얼마든지 손발을 잘라내고 아예 조직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그럴만한 근거가 아직 없어도 그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 역시 저들일 것이다. 하루아침에 만렙이 초기화되고 애써 얻은 전설템들이 사라져 알몸이 되어 버린다. 이길 수 있을까?


묘하게 베테랑검사인 문희만(최민수 분)의 대사와 이제 겨우 수습에 불과한 한열무(백진희 분)의 대사가 겹친다.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도 잡을 수 없다.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서 할 수 있는 것들만이라도 해야만 한다. 잡아야 할 많은 사람들을 놓아주었지만 덕분에 잡을 수 있었던 또 많은 사람들을 잡을 수 있었다. 그게 정치다. 정치란 거래다. 선택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야만 하는 것들, 그러기 위해서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들에 대해서. 저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내주고 대신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갖는다. 죽을 수밖에 없다면 먼저 사는 건택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막다른 골목이다. 부장인 문희만은 오히려 피의자가 되어 검찰총장이 임명한 특임검사로부터 수사받는 처지가 되었고, 성접대동영상 원본을 건네지 않은 댓가로 민생안정팀은 해체를 명령받았다. 이대로 문희만이 구속되고 민생안정팀이 해체되면 더 이상의 수사는 불가능하다. 한별의 죽음도, 한 여성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고위층마약성매매도. 선택해야 한다. 아니 선택은 이미 결정되었다. 당장 민생안정팀의 존속을 결정하는 것은 정창기(손창민 분)를 앞세워 성접대동영상 원본을 건네받은 화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영을 피해 검찰국장 이종곤(노주현 분)을 노린다고 수사가 가능할 것인가. 그나마 가장 가능성높은 선택이기는 하지만 그조차 평검사 둘에, 수습 하나, 검찰수사관 셋으로는 절대 무리다.


현실을 직시한다. 어쩌면 구동치 자신도 지는 싸움에 너무 익숙해 있었는지 모른다. 져도 상관없다. 이대로 물러나도 상관없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포기하지 않고 수사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언젠가는. 혹은 누군가는. 하지만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기에 한열무는 너무 절실하다. 팀이 해체되는 것도,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도, 그가 바라는 검찰의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차라리 어른은 진실을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너무 쉽게 작은 위험에도 거짓을 말하고 만다. 그 솔직한 진심이 구동치보다 먼저 현실을 보고 그 현실과 손잡게 만든다. 문희만이 걸어간 길이었다. 문희만이 과거 겪었던 너무나 큰 절망과 좌절을 한열무는 시작부터 겪고 만다.


자기가 화영그룹으로부터 돈을 받고 있는 줄도 몰랐다. 자기가 쓰는 돈이 화영그룹의 돈인줄도 모르고 쓰고 있었다. 결국 화영그룹을 위해 그 사냥개가 되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짜 실세란 과연 누구인가. 무엇이 진짜 권력인가.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검찰내 유력한 라인 두 개가 모두 화영그룹의 지시를 받고 그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현직 부장검사를 날리고, 팀 하나를 해체시키고, 그리고 이내 다시 해체명령을 철회하고 존속을 지시하고 있었다. 화영은 불가능하다면 검찰국장 정도는 어쩌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확실한 증거와 정황만 확보된다면 검찰국장 이종곤 정도는 어떻게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역설이다. 검찰국장마저 이제는 사소하게 여겨진다. 물론 그조차도 민생안정팀에는 절망적이기까지 한 벽이다.


반전이다. 아니 반전이라기에는 복선이 충실하다. 한별과 강수(이태환 분)가 납치되어 있던 현장에 구동치도 함께 있었다. 중요한 증인 가운데 하나다. 빽곰과 처음 마주쳤을 때 구동치는 바로 그를 알아봤지만 강수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빽곰이 구동치를 알아보지 못한다. 심지어 당시 어떻게 강수가 도망칠 수 있었는지 정황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때마침 사건이 있던 공장에서는 두개골이 하나 발견되고 있었다. 지난회부터 중요한 증거인 넥타이핀을 바라보고 있던 중년인은 어쩌면 구동치의 아버지였을까. 사건은 전혀 새롭게 시작한다. 구동치와 강수와 연결된 정창기의 손에 동영상원본이 들어간 것이 어쩌면 더 큰 반전의 시작은 아닐까. 문희만의 요구와 의뢰는 그 계기가 되어 줄 수 있다.


할 수 있는 것만을 한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만이라도 하려 한다. 입체적인 인물이다. 화영을 노리고 사건을 구동치와 이장원(최우식 분)에게 배분했다. 조각으로 나뉜 퍼즐들이 마침내 화영을 가리킬 것을 기대했다. 화영을 잡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 사이에 있는 아주 작은 - 자기라도 잡을 수 있는 파편이라도 손에 넣으려 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임을 안다. 마냥 정의롭지만은 않다. 정의라도 살아남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다.


얼추 상황들은 정리되었다. 사건의 개요도 상당히 상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범인이 누구인가는 이미 너무 명확하다. 다만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며 마무리될 마지막을 기대할 뿐이다. 어떤 과정을 통해 무엇을 의도하고 드라마를 끝내게 될 것인가. 아마도 현실이거나, 아니면 불가능한 판타지에 불과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이미 충분한 설득력있는 전개를 보여주고 있었다.


매회 하나씩 감춰둔 패들을 꺼내보인다. 하나의 단서가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사건은 급진전을 이룬다. 그러면서도 전혀 흐트러짐 없는 것이 드라마의 올라운 점일 것이다. 감탄한다. 다시 하나의 감춰둔 패가 놀라운 반전을 이룬다. 마침 구동치가 빽곰이 가짜인 것을 알았다. 벌써 16회, 이제 슬슬 마무리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액션만 없는 것이 아니라 공간마저 한정되었다. 거의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인물들만이 드라마를 꾸려간다. 그런데 어느 드라마보다 긴장되고 흥미진진하다. 놀라울 뿐이다.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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