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 드러난 박만근의 정체, 힘이 빠지다
너무 뻔해서 웃음까지 나온다. 흔한 클리셰다. 적은 내부에 있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누군가가 알고 보니 음모를 꾸미는 주체였다. 하지만 왜? 무엇때문에? 어떻게?
화영그룹 정도의 대기업에서, 그것도 이사로 등재되어 있는 이가 검찰청에서 평검사로 근무한다. 이제는 부부장검사다. 이사로서 해야 할 일들이 있을 것이다. 설사 그것이 검찰과 관련한 비밀스런 업무라 할지라도 이미 검찰 내부에는 버림받은 뒤에도 여전히 화영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고 있는 이종곤(노주현 분)과 같은 이들이 깊이 뿌리내린 상태였다. 과연 이종곤이 최광국(정찬 분), 아니 박만근 한 사람을 두려워해서 화영의 충실한 하수인이 되어 있었겠는가. 박만근이 검찰청에 없다고 화영을 등지려 하겠는가 말이다.
검사로서 단 한 번도 지각도 결근도 하지 않았다. 검사의 일이 결코 적지 않다. 검사로서 자기의 일을 하면서 화영그룹의 이사로서 주어진 업무 또한 처리한다.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효율의 문제다. 검사의 일을 하는 동안에는 화영그룹의 일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지금도 부부장검사에 불과한데 화영그룹과 관련한 사건만을 맡아 처리할 수도 없다. 낭비다.
검사로서 해야 할 일들만 아니라면 최광국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화영그룹의 일에 할애할 수 있을 것이다. 검사로서 충실한 만큼 화영그룹의 일에 소홀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화영그룹의 입장에서 손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사라는 신분도 그렇도, 더구나 일의 특성상 그룹차원에서 상당한 지원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그같은 비효율을 감수할 만큼 검사라는 신분에 어떤 이점이 있는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남은 한 회에서 그 부분에 대해서까지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을지 기대하는 바가 크다. 도대체 무엇일까? 반전으로서는 흥미롭지만 전체의 구성에 있어서는 헛점이 너무 크다.
차라리 지금까지처럼 화영그룹의 이사라는 신분이 너무 대단해서 일개 부장검사 정도로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기소를 하지 않는 한 얼굴조차 한 번 보기 힘들더라는 정도가 적당했을 것이다. 오히려 박만근의 손발이 되어 문희만(최민수 분)과 구동치(최진혁 분)를 압박하는 각계의 유력인사들에 집중한다. 어느새 문희만과 구동치 자신은 물론 그들의 주위까지 압박해 들어오는 실체를 통해 그 힘의 크기를 느끼게 한다. 하기는 남은 분량이 이제 겨우 한 회다. 흔히 쓰인다는 것은 그만큼 검증이 이루어졌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악역으로 인해 긴장 역시 실체를 가지게 된다. 직접 마주하고 대립하며 갈등을 고조시킨다.
잦은 회상장면도 그렇고 막바지에 이르러 힘이 떨어지는 듯한 인상이다. 너무 복잡하게 꼬아 버렸다. 아무리 복잡하게 얽힌 방대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마지막에는 보다 단순한 구조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여전히 복잡하다. 직관적이지 않다. 간명하게 정리되지도 않는다. 박만근의 정체야 말로 얽히고 꼬인 모든 것들을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느 열쇠가 되어주어야 할 텐데, 오히려 박만근의 정체가 밝혀짐으로써 새로운 갈등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박만근 없이도 충분히 15년 전의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음에도 마지막회를 앞두고 군더더기를 남기고 말았다. 과연 마지막회 한 회만에 모든 것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끝낼 수 있을 것인가.
수미일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마 전체의 구도는 이미 시작단계에서 작가의 머릿속에 그려져 있었을 것이다. 누가 진짜 배후인가? 어떤 것이 진짜 과거의 진실인가? 어떻게 과거 사건은 일어났고, 어떤 과정을 통해 그 실체에 접근해 갈 것인가? 다만 방식의 문제였다. 역시 촉박한 일정이 한 번 잘못 딛은 걸음을 다시 되돌리지 못하고 만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긋났을까? 그래도 직전까지는 여전히 필자가 좋아하던 '오만과 편견'이었다. 현실의 여건에 탓을 돌리고 싶은 것은 그 만족을 잃고 싶지 않은 때문일 것이다.
끝이 다가올수록 한열무의 존재가 희미해진다. 더 이상 사랑할 여유가 사라지니 검사로서 아무 능력도 보여주지 못한 한열무의 역할 또한 사라져버리고 만다. 구동치의 옆에는 한열무가 아닌 문희만이 있다. 한열무의 옆에도 구동치가 아닌 문희만이 바짝 다가와 있다. 유광미(정혜성 분)는 그나마 검찰수사관으로서 능력과 열정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사건이 이장원(최우식 분)과 그녀를 이어주는 매개가 된다. 한없이 사랑스럽던 모습이 이제는 단점이 되어 돌아온다. 끝내 검사가 아닌 피해자의 가족으로, 구동치의 연인으로 남고 말았다.
박만근과 문희만, 구동치가 정면으로 마주하는 장면에서의 긴장감만이 남는다. 드디어 마지막 보스가 나타났다. 감히 상대할 엄두도 나지 않는 괴물이다.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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