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드 지킬, 나 - 재벌과 현대의 신화, 진부함이 보편이다
이야기속 영웅들은 모험을 마치고 돌아오면 사람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오르고 했었다. 그리고 그런 영웅들의 곁에는 항상 아름다운 공주가 함께하고 있었다. 어쩌면 인간의 본능이 시키는 자연스러운 동경이라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용감하고 정의로운, 무엇보다 누구보다 강한 힘을 가진 존재가 누려야 할 너무나 당연한 보상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시대물을 즐겨보는 이유일 것이다. 아닌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대물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소재가 다름아닌 권력을 사이에 둔 치열한 암투일 것이다. 그래서 그 배경 역시 압도적으로 왕이 머무는 궁궐이 다수를 이룬다. 왕과 신하가 힘을 겨루고, 혹은 왕을 사이에 두고 여인들이 서로 경쟁하며 다툰다. 그리고 그러한 싸움의 끝에 최후의 승자는 모두가 바라는 영광되고 고귀한 자리에 오르게 된다. 실제 그런 역사가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그런 장면들을 보여준다. 그런데 현대사회에는 왕도, 귀족도, 공주도, 장군도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도 되는 사람이에요, 나는!"
힘이란 곧 욕망이다. 더 많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다. 더 무거운 것을 들고 더 큰 사냥감을 잡을 수 있다. 용과 괴물들과 싸워 물리칠 수 있다. 권력자의 고귀한 혈통이란 그 자체로 영광이고 명예였다. 세상을 뒤집을 힘을 가진 영웅들이 혈통에 굴복하여 서로 충성을 경쟁한다. 그리고 이제 보다 평등해지고 솔직해진 현대사회에서 욕망이란 욕망 그 자체를 뜻하게 되었다. 돈이란 욕망을 계량하는 단위다. 인간의 욕망이 그 욕망을 소유한 자신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허락한다. 모두가 동경하고, 부러워하며, 그래서 질투하는 그 힘을 그들은 가지고 있다. 그래서 또한 그들은 행복해서는 안된다.
권력이 혈통에 의해 세습된다면, 자본은 역시 상속이라는 제도에 의해 혈통을 쫓아 물려진다. 자본은 곧 권력이고, 기업은 자본을 움직이는 현대의 궁정이다. 자본을 소유했거나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젊은 주인공은 곧 현대사회의 영웅일 것이다. 고난속에서 영웅이 일어나듯 이미 많은 것들을 가진 주인공이기에 더 외롭고 더 소외되어 있다. 그들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면서도 한 편으로 시기하는 대중에 의해 그들은 더욱 불행해야 하고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겨야 하고 성공해야 한다. 그들을 구원하는 것은 평범한 모성이며 아름다운 공주다. 과거의 괴물들은 이제 괴물과 같은 인간으로 바뀐다. 단순히 신데렐라의 신분상승만을 바라서가 아닌 것이다. 그야말로 현대의 영웅이야기다. 굳이 신데렐라의 이야기에 이입할 필요가 없는 남성시청자들마저 그런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중인격이라는 마녀의 저주와 아버지로부터 버림받는 고아의 신세, 그리고 그의 자리를 호시킴탐 노리는 악의 존재까지. 운명을 두려워하며 숨어있던 주인공에게 운명이 가리킨 한 여성이 나타나 그를 세상으로 이끈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금지하며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던 그를 구원으로 이끌게 된다. 왕의 자리를 둘러싼 음모와 그에 희생당하는 불운하며 불행한 주인공, 그리고 마침내 그를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을 반전. 식상하지만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호화스럽고 사치스런 일상들이 비루한 일상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게 해준다. 억울하게 왕위에서 쫓겨난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가난한 백성들의 동정처럼 그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처럼 여기게 된다. 현대의 영웅이야기는 그렇게 재벌이라는 이름을 빌어 만들어진다.
하필 경쟁방송사의 드라마와 다중인격이라는 소재가 겹친다. 인격이 둘인가, 여럿인가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대기업을 배경으로 경영권 승계를 둘러싸고 암투를 벌이는 부분도 비슷하다. 두 드라마의 유사성이라기보다는 한국드라마 전반의 유사성일 것이다. 마녀의 저주로 인해 개구리가 되어야 했던 왕자처럼 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 어울리는 또다른 저주로서 다중인격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리고 영웅이야기에 어울리게 두 드라마의 주인공들 모두 카리스마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 현빈(구서진 역)과 한지민(장하나 역) 모두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배우들일 것이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멈추게 만든다. 주연의 힘이다.
또다시 재벌인가.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런 재벌이야기들을 본다. 단지 약간의 설정만 바뀌었을 뿐임에도 여전히 드라마에 자신을 이입한 채 함께 울고 웃고 화내고 떠든다. 진부하다는 것은 그만큼 보편적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반복해서 소비할 수 있는 이미 일상이라는 뜻일 것이다. 대중적이란 통속적인 것이다. 그것이 드라마다. 또다시 보게 만든다. 재미있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