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 착한 주인공의 함정, 선조만 보이다!
이제야 의도를 알겠다. 류성룡(김상중 분)은 한 점 사심없이 오로지 나라와 임금과 백성만을 생각하는 인물이어야 했다. 그래서 정철(선동혁 분)과 함께 광해군(노영학 분)을 세자로 세울 것을 건의하기로 약속했으면서 정작 선조(김태우 분) 앞에 나가 침묵함으로써 정철을 함정에 빠뜨리고 만 행위 역시 오로지 우국충정의 발로여야 했던 것이었다. 이산해(이재용 분)가 아닌 송익필(박지일 분)로부터 건저의가 시작된 이유이기도 했다. 불순한 의도로 정철은 건저를 건의하려 했고 류성룡은 그것을 알고 그를 막아선 것이다. 참 단순하지 않은가.
덕분에 귀인 김씨(김혜은 분)의 캐릭터가 우스워졌다. 그토록 영민하고 의심까지 많은 선조를 가까이에서 모시며 중요한 정치적 조언까지 하는 여장부였을 것이다. 그런데 고작 동생 김공량이 찾아와 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선조를 찾아가 눈물까지 흘리며 연기를 한다. 최소한 그 순간 동생에게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었는가부터 묻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과연 동생의 말이 사실인가? 사실이 아니라면 어떤 의도가 자신에게 이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일까? 귀인 김씨가 그토록 영리하여 선조의 총애를 받고 있다면 이산해 역시 그 부분까지 고려해서 계획을 세웠어야 했을 것이다. 아마 중간이 생략되었을 것이다. 귀인 김씨와 이산해 사이에 어떤 교감이 오갔고 그 결과 냉철한 정치적 판단에 의해 귀인 김씨가 눈물을 흘리며 선조를 찾아갔던 것이었다. 선조 역시 그것을 자신을 위한 또 한 번의 기회라 여긴다.
류성룡도 정치가였다. 우의정이란 단순히 능력만 뛰어나다고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하나의 정파를 이끄는 위치에 서기 위해서는 그만큼 상대정파와의 정치싸움에서도 능력을 보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굳이 이산해와 사전에 교감하지 않았더라도 건저를 건의하는 자리에 이산해가 나타나지 않은 정황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그 의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의정부의 세 수장이 뜻을 하나로 모아 건의하는 것이 아닌 건저가 어떤 위험을 내포하는지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와는 달리 아직 정여립과 관련한 옥사가 이어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서인을 꺾어야 더 이상 동인이 피흘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다만 자신과 상의없이 그같은 일을 꾸민 것과, 다시 서인의 피를 볼 경우 정국이 경색될 것을 우려하여 정철을 죽이자는 이산해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서인을 제거한 이후 조정에서의 주도권을 두고 퇴계학파의 류성룡과 남명학파의 이산해가 충돌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드라마에서 주인공이 그같은 선명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 그다지 인기가 없다.
류성룡은 오로지 우국충정만을 생각하는 순수한 인물이고, 그 밖에 악역은 정철을 비롯한 서인과 이산해가 도맡게 된다. 개인의 인품이야 어찌되었거나 선조에 대해서만큼은 오로지 충신이었던 정철이 선조를 몰아낼 계획에 동의하고, 율곡 이이마저 그 실천하는 모습에 감탄했던 우계 성혼(김효원 분) 또한 그 의논에 동참하고 있었다. 하기는 이산해 역시 정치가로서 능수능란하게 권모술수를 사용하던 모습에서 단지 상황을 이용하려는 모습으로 순화되고 있다. 정철이 건저의 논의를 제안하자 타당한 근거를 내세워 반대하는 모습도 보인다. 모든 잘못은 서인에게 있다. 선악이 분명해야 드라마가 재미있다지만 너무 나간 것은 아닐까.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이산해가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나며 정철은 다시 조정으로 돌아온다. 이마저 선조와 광해군 사이의 갈등의 원인으로 활용하려 할까?
우려와는 달리 '징비록'에 기술되어 있는 김성일의 변명을 사실로 전제하고 드라마로서 재구성하려 하고 있다. 김성일 또한 토요토미 히데요시(김규철 분)의 전쟁을 일으키고자 하는 의도를 간파하고 있었지만 성급하게 그 이야기를 수령들에게 전한 황윤길과는 달리 민심의 동요를 우려하여 침묵하고 있었다. 벌써부터 백성들이 일본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에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피난길에 나서고 있었다. 황윤길의 보고를 채택하여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자 곳곳에서 백성들의 원망을 전하는 상소가 빗발치고 있었다.
하기는 전쟁이 날 거라고 미리부터 사방에 떠들며 요란을 떨어대는 것은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다. 겉으로는 평온과 안정을 가장하고 안으로만 아무도 모르게 전쟁준비에 속도를 더한다. 더구나 국민국가 이전의 전제왕조국가다. 아직 백성들에게는 조선이 내 나라라는 인식이 희박했다. 조정과 함께 목숨을 걸고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는 결심보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살리겠다는 개인적인 본능이 우선한다. 임진왜란 때까지 의병은 어디까지나 사대부를 중심으로 일어난 양반의병이었다. 그 구성원 대부분도 지휘관이 도망치면서 흩어진 갈 곳을 잃은 관군들이 대부분이었다. 백성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파트너가 아니다. 나라가 지켜주어야 하는 대상이다. 철저히 타자로서 백성의 마음을 걱정하고 어루만진다.
원래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에서 엄연히 왕이 있음에도 신하들이 자기들끼리 편을 나누어 다투는 이른바 붕당은 역적에 준하는 큰 죄로 여겨졌었다. 신하의 본분은 다름아닌 왕을 바르게 보필하는 것인데, 자기들끼리 무리를 지어 먼저 의논을 결정하는 것은 왕을 넘어서려는 참람한 행위에 다름아니었다. 모든 의논도 결정도 왕이 한다. 선조가 붕당을 불편하게 여기는 이유다. 동인과 서인을 나누어 당인들끼리 먼저 의논을 나누고 그 결과만을 선조에게 보고하고 그것을 강요하려 한다. 의논도 결정도 오로지 왕인 선조 앞에서 선조의 허락 아래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한 편으로 조선의 국교인 성리학은 군자들이 모여 소인을 배척하고 바른 논의로써 나라를 올바로 이끌어야 한다는 '군자당'의 논리를 설파하고 있었다. 이산해와 송익필이 서로의 당을 일컬어 소인이라 비하하며 치를 떠는 이유일 것이다.
과연 나라를 이끌어가는 주체는 누구인가? 나라의 주인은 이견의 여지 없이 왕 선조다. 하지만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은 왕 자신인가? 아니면 왕을 바르게 보필해야 할 책임을 가진 사대부들인가?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사대부는 단지 그를 보좌할 뿐인가? 오히려 주도적으로 왕이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가? 결국 이산해나 송익필이나 입장은 같다. 그것이 조선 사대부들의 일반적인 가치관이었다. 그래서 붕당이 생겨났다. 당론이 만들어지고 그에 의해 당인들의 입장이 결정되었다. 류성룡만 다르다. 한국드라마에서는 아무래도 왕권이 곧 선이라 간주되는 경향이 강하다. 류성룡은 주인공이며 따라서 선인이어야 한다. 모든 것은 왕에게서 나와서 왕에게로 돌아간다. 신하는 단지 그것을 잠시 위임받아 나라와 백성을 위해 쓸 뿐이다. 붕당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그는 장차 남인의 영수가 될 몸이다.
아직까지 주인공은 류성룡이 아닌 선조다. 또다시 이미 관습이 되어 버린 왕권과 신권논쟁의 함정에 빠져버린 탓이다. 왕의 나라를 세우려는 선조와 사대부의 나라를 지키려는 서인과 이산해, 그리고 유일하게 선조의 편에 선 주인공 류성룡. 선조의 고민이 곧 류성룡의 고민이다. 다만 방법에서 서로 차이가 있다. 선조는 왕이고 류성룡은 신하이며 사대부다. 결국 그 차이가 결정적으로 드러나게 되었을 때 류성룡 역시 주인공으로써 선조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 것이다. 악역이 있어야 드라마가 재미가 있다. 정철이든 송익필이든 악역으로써 그 무게감이 선조나 류성룡에 비해 너무 떨어진다. 차라리 이산해가 악역이 된다면 더 볼 만 하겠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쪽 진영이 더 흥미로운 이유일 것이다. 결국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일본군이 조선에 상륙해야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지게 될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역사적인 사실과 진실에 대한 치밀함이나 치열함에서는 당연히 전작 '정도전'보다 한참 떨어진다. 역사를 거울삼아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도 '정도전'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드라마적인 재미조차 이인임이라는 걸출한 악역의 존재로 말미암아 매회 긴장을 놓지 않았던 전작에 비하면 심심하다 할 정도다. 다만 보기에 쉽다는 장점이 있다. 김태우의 신들린 듯한 연기가 선조라고 하는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가 선조라고 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통해 어렵지 않게 보이고 들린다. 아직은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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