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마르크스와 잉여가치론...

까칠부 2015. 3. 4. 03:42

간단히 예전 취직하려 면접보러 다닐 때 어느 인사담당자가 그런 말을 했었다.


"최소한 월급으로 받는 세 배 이상의 수익을 내야 돈 값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말 뜻을 가만히 살펴보면 각자가 실제로 올린 이익 가운데 단지 3분의 1만을 월급으로 받아야한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어차피 사무실 임대비, 각종 기자재 구입비 및 감가상각, 소모물품과 전기요금을 비롯한 각종 공과금은 고정비용일 것이다. 어떻게 아끼려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빌딩 주인도 아닌데 임대료를 깎아달랄 수도 없고, 책상 사면서 깎아달라는 것도 어느 정도다. 전기요금, 수도요금은 인정사정 없다. 그나마 소모품은 일하는 사람 다그쳐서 조금은 줄일 수 있겠다. 어디서 돈을 남겨먹겠는가?


더구나 기왕에 월급을 주기 시작한 것 월급 역시 고정비용이라 할 수 있다. 월급까지 고정비용으로 두고 이익을 더 남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직장생활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알 것이다. 하나라도 더 시키고, 1분이라도 더 일시키려 한다. 잔업에, 야근에, 철야에, 어떻게든 수당 안주려고 온갖 편법을 동원한다. 그 이전에 잘리기 싫으면 수당 그런 것 없이 자발적으로 남아서 일한다. 그렇게 해야 겨우 유지가 된다.


대개 사양산업들이다. 인건비가 싼 저개발국으로 가서 인건비로 뭔가 남겨먹으려는 산업들은. 아무라도 생산할 수 있는 정도라면 이제 경쟁은 포화되어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유지가 안된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이른바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산업들일 텐데, 이 경우도 생산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소수 고급인력에 대해서만 충분한 급여를 지급한다. 애플이 성공했다고 애플의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노동자들에게까지 그 이익이 돌아가지는 않는다. 생산으로부터의 소외다.


더불어 마르크스가 미처 계산하지 못한 것 가운데, 그러면 어째서 기자재와 설비에 대한 비용은 고정으로 빼는가? 다른 자본가와 관계가 있으니까. 자본가 사이에는 우열이 없다. 이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자본가와 자본가 사이에도 힘의 우열을 이용한 착취가 가능하다. 물론 하청기업에 대한 원청기업의 착취는 하청기업 노동자의 저임금과 고용불안, 그리고 임금체불을 통해 가능해진다. 그렇게 해도 경쟁이 안될 정도로 경쟁력을 잃게 되면 자본주의 경제는 무너지게 된다.


미국의 제조업위기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남들 다 생산할 수 있는 제품들을 높은 임금까지 감수해가며 생산하려다가 이내 한계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같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한 것이 새로운 산업들이다. 한국의 자본주의에 대한 경고는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대기업들의 수익률이 갈수록 낮아지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중국의 추격이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도.


잉여가치와 노동가치의 비례관게에 대해서도, 노동의 숙련도와 질이 높아지면 그만큼 높은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반대로 숙련도와 질이 떨어지면 낮은 임금만 지불해도 된다. 대량생산이란 바로 그것에 근거한다. 숙련노동자가 필요없을 정도로 단순한 공정을 통해 효율을 극대화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에 아무나 대신할 수 있는 노동력만을 값싸게 고용한다. 우리사회의 비정규직들이다. 전문적인 경험이나 기술이 필요없는 단순 잡무를 위한 자본주의의 희생양들.


여전히 저임금만이 유일한 경쟁력이다. 다른 대안을 찾아내지 못하고 여전히 낮은 임금에만 매달리고 있다. 마르크스의 이론과 가장 잘 부합되는 모델은 그런 점에서 이 나라 대한민국이 아닐까? 그 결과 노동자들은 수입이 줄어서 더 이상 소비하지 못하고, 소비를 못하므로 기업의 이익률은 갈수록 떨어져가고, 불경기가 더욱 노동자의 임금을 옭죄고. 차이라면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그같은 고민과 논의조차 막고 있다는 것. 

나라를 위해서. 경제를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하여튼 여전히 월급 올려줄 생각은 않으면서 그리 태연히 말한다.


"더 이상 달리 투자할 여력은 안되고 기존에 있는 사람들이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인간도 소모된다. 노동력도 소모된다. 요즘 실수가 잦다. 피곤하니 어쩔 수 없다. 그런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따르지 않는 이를 따돌리는 것도 노동자 자신이다. 흥미로울까?


잉여가치론이 다른 게 아니다. 바로 일상에서 흔히 보는 것들이다. 더 적은 수의 노동력만을, 혹은 더 값싼 노동력만을, 사람을 쥐어짜서 더 큰 이익을 남긴다. 물론 기존의 설비와 투자에 따른 이익은 별개다. 그렇더라도 일단 노동자를 쥐어짬으로써 더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


후발국가일수록, 자본주의가 한계에 이르러 있을 수록, 결국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은 맞아들어갈 수밖에 없다. 남들 안하는 것. 남들은 할 수 없는 것. 먼 이야기다. 늘 느끼는 거지만.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