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지 않은 여자들 - 김현숙의 절규 '내가 뭘 잘못했는데!'
중국 고대에 천리마를 알아보는 안목이 뛰어났던 명조련사로 백락이라는 이가 있었다. 한유는 과연 천리마는 항상 있어왔으나 항상 백락과 같은 이가 있었던 것은 아니므로 백락이 있고서야 비로소 천리마가 있는 것이라 말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장자는 백락이야 말로 천리마를 만들겠다고 말들의 본성을 억누르고 괴롭히며 수많은 말을 죽게 한 죄인이라 비난한다. 결국 백락으로 인해 말들이 얻은 것은 주위의 눈치를 살피고 사람의 눈을 속이는 지혜 뿐이다.
하기는 당장의 가난에서 벗어나기도 급급하던 시절 학생들을 일일이 바르게 가르치고 길러낼 여유같은 것은 없었을 것이다. 당장 쓸 수 있는 인력만을 걸러내는 것도 버거웠다. 당장 바로 쓸 수 없다면 과감히 버려야 했다. 행군을 할 때도 급하게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는 경우에는 다소간의 낙오도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한다. 결국 한유와 장자의 말을 더하면 백락은 평범한 말들 가운데 어쩌면 섞여 있을 천리마를 찾아내기 위해 평범한 말들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강요함으로써 견뎌내지 못한 약한 말들의 죽음을 댓가로 천리마를 찾아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백락은 천리마를 찾아내고 길러낼 줄 안다.
오래전 이야기도 아니다. 아주 최근에도 그와 관련한 뉴스가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고 있기도 했었다. 실력이 부족하면 도태시킨다. 자격도 안되는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귀중한 노력과 시간을 쓰는 것은 낭비다. 그를 위한 자원과 비용까지 모조리 될 것 같은 아이들을 위해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학부모들도 적극 찬성하며 지지한다. 아니 자기가 낳은 자식임에도 학부모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과감히 버리고 포기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이 사회는 자격을 갖춘 이들만이 당당히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그렇게 학교는 물론 부모로부터도 버려진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섬뜩했다. 그토록 단호한 분노와 원망을 드러내며 자신있게 걸었던 전화였다. 그러나 정작 수화기 저편에서 당시 담임이었던 나현애(서이숙 분)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 순간 김현숙(채시라 분)은 굳어버리고 만다. 말 한 마디 꺼내지 못하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다. 잊고 있던 공포가 되살아난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과 절망감이 다시 기억과 함께 떠오른 것이다. 그렇게 길들여진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아무것도 꿈꾸지 못하도록. 모든 것은 너의 죄다. 자신의 탓이다. 남편 정구민(박혁권 분)을 사랑하면서도 차마 표현하지 못하고 지레 포기하고 마는 비루한 열등감이고 저열한 체념이 그녀의 삶을 옭죈다.
그러고 보면 겪어 본 적 있다. 요란하고 산만하고 변덕스럽다. 과격할 정도로 자의식을 드러내다가 사소한 일로도 쉽게 체념하고 포기해 버린다. 자의식이 강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상처조차 견디지 못할 정도로 누구보다 약한 것이다. 그런 자신을 감추고자 일부러 강한 척, 대범한 척, 유쾌한 척, 허세를 부려댄다. 습관적인 거짓말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갑옷이고 방패다. 도박은 그런 점에서 아무 사소한 정도의 일탈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나마 도박으로라도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 자신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다. 단지 가족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집까지 모르게 담보로 잡혀 전재산을 투자했다가 날리고 있었다. 김현정(도지원 분)의 말처럼 그 역시 범죄다.
의외의 부분을 건드리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교육현실을 비판한 작품들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교육이 이루어지는 당시에 집중하지 이렇게 수십년이 지난 이후까지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김현숙의 컴플렉스는 딸 정마리(이하나 분)를 억압하고 구속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부모세대의 좌절과 열등감이 자식세대에 대한 강요와 강제로 나타나는 것과 유사하다. 잠시의 여유조차 없이 무조건 공부만을 할 것을 강요한다. 공부해서 성공할 것만을 기대한다. 그 사이 정하나 개인의 행복은 지워진다. 교수라고 하는 평생의 목표가 좌절되었을 때 그녀에게 남은 자신의 삶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여전히 엄마 김현숙은 자신의 기대를 배반한 딸에 대한 원망만을 토해낼 뿐이다.
나현애는 어쩌면 그런 점에서 그같은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 자체를 구체화한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렵게 대학까지 마치고 교사가 되었다. 성공해야만 했다. 여유따윈 없었다. 뒤도 옆도 돌아보지 말고 오로지 앞만 보며 달려야만 했었다. 김현숙도 불쌍하지만 그런 자신의 처지가 더 불쌍하다. 그녀가 쓰고자 하는 소설은 그녀 자신을 위한 연민이며 변명이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버리며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들 자신의 윗세대를 보여주고 있는 듯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을 얽매고 있다. 악역인데 그래서 가엾다. 그때는 그것이 정의라 여겼고, 지금도 그렇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미움과 연민이라는 이중적 감정을 이처럼 입체적으로 그려낸 드라마가 또 있을까? 자신의 남편을 빼앗아간 여자에 대한 증오를 드러내다가, 체념과 절망 속에 시들어가는 같은 여자에 대한 연민을 내보인다. 기껏 집으로 초대해 배려하는 것 같더니 순간순간 독이라도 바른 듯 독설을 쏘아붙인다. 그런데 그런 모순된 감정들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녹아있다. 연민하면서 증오한다. 증오하면서 연민한다. 인간의 감정이란 그럴 것이다. 누구를 미워하고 좋아하는 감정을 그렇게 딱 잘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천연덕스럽다. 김혜자인지, 아니면 강순옥인지. 소름이 돋는다. 이런 대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구나.
실패라고는 모르는 것 같았던 김현정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진행하던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그동안 받아오던 협찬까지 모두 끊긴다. 처음 겪는 좌절이었을 것이다. 과연 좌절이라고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그녀가 지금의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내게 될까. 그녀의 자기중심적인 성격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길까? 이문학(손창민 분)과 인연이 이어질 듯 하다. 나현애가 아직 미혼인 이문학의 유산을 노리고 있다. 악연이 그렇게 서로 얽힌다. 김현정과 이문학을 매개로 김현숙과 나현애가 다시 만난다. 과연 그들은 다시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까?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데 무조건 반성문부터 쓰라 한다. 자신도 납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강제에 의해 반성문이라는 것을 써야 했다. 담임이던 나현애와 담당검사의 모습이 서로 교차한다. 이해시키고 납득시키기 전에 억압하고 강요부터 하는 권위주의적인 현실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반성문을 거부한다.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 어떻게 반성해야 하는지. 그것을 먼저 들려주었어야 하는 이들이 있다. 무겁게 내리누른다. 자신들의 이야기다. 시리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398